기행/해외여행

광개토대왕비

시인김남식 2014. 6. 15. 09:14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 솔새김남식

 

광개토대왕비는 중국 집안(集安)시에 있으며 중국명으로 지안시를 가리킨다.

단둥에서 거리는 314km로 버스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대련에서는 9시간이 소요되는 장도의 길이다

 

 

 

집안시는 압록강을끼고 있는 국경 도시 북한과 강을 통하여 맞닿아 있으며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이 있던 곳이다.

.

 

 

집안시는 인구 20여만으로 절반 이상이 조선족이었으나

동북 공정이 시작된 2004년 부터 고구려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중국에서 이주시키면서

한족(화교)으로 대체 했다고 한다.

 

 

현재는 조선족 인구는 지안(집안)시 전체 인구의 10% 가 안 된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어느 시골처럼 느껴지는 농촌 마을

 

 

이곳 역시 한국사람들만 다녀 가는 곳이기에 주차장 상가에는 영어나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 간판 이있다

 

 

 

입장료는 100원이다 우리나라돈 18000원 너무 비싸다

 

 

 

 

 

 

 

유네스코 등재로 인해서 그런지 경관도 좋고 공원 내부는 아주 말끔하게 잘 정돈 되어 있었다

 

 

 

광개토대왕비는 1982년에 중국 당국에 의하여 새로 건립된 단층의 유리로 된 사각 건물 속에 있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는 표지석

 

 

건물안에서는 사진 촬영을 못 하도록 중국공안원이 지키고 있었으며 밖에서는 공산당 직원인듯한 사람이 

감시 하는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한국으로 무언가 자료가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중국 당국 인것 같다.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를 중국에 뺏았기고도 모자라 중국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100元씩을 받아서

지금은 주머니를 챙기고 있는 꼴이 되었는데 언제쯤 우리가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 가장 위대한 고구려의 왕으로

칭송받는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로서 높이가 6.39m에 이르고

무게가 37톤으로 추정되는 세계적 규모를 지니고 있다.

 

 

이 비는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사후 2년)이 세웠으며 높이만 3층 건물과 맞먹고

방추형의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비석은 너비는 1.46미터, 1.35미터 2미터 1.48미터로

각 면이 다른 크기와 문양을 지니고 있다.

 

 

광개토대왕비를 땅에 비석을 고정시켜 주는 대석과 비문을 새겨진 비신으로 되어 있으며

대석은 길이 3.35m, 너비 2.7m의 불규칙한 직사각형이고

두께는 약 20cm이나 고르지 않으며 비신에는 총 1775자의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고 한다

 

 

유리벽안에서 공안원이 찍지 말라고해서 유리벽 밖에서 촬영한 광개토대왕비 

 

 

비문의 내용은 고구려 건국 과정과 광개토대왕의 대외 정복사업과 업적, 수묘체계 등 세 부분으로써

그 내용은 민생을 편안하게 보살핀(平安) 하늘과 같이 큰왕(好太王)의 업적을 기록한 기념비 라는 뜻이라고 한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광개토왕의 시호(諡號)를 따라

중국에서는'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 부른다.

 

 

그리고 공원 길을 따라서 태왕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서울에도 천리먼길 이곳 중국 지안시에도 토기풀등 자연 초목들은 똑같이 피어있는 것을 보니 맴이 그냥 그렇다

 

 

그 옛날 조국을 떠나 이곳에 살았던 선열들이 생각 나기도 하고...

 

 

광개토대왕릉으로 가는 길에 예쁘게 서 있는 느릅나무 

느릅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활엽수로 껍질은 한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광개토 대왕릉에는 감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광개토대왕릉 묘실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고 철문 안에는 왕을 모신 자리에는 두개의 관이 있다

 

 

중국에서는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으나 고분의 유품이 오래전

모두 도굴당하였기 때문에 추측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를 좀더 논리적으로 학술적으로 연구해야하는데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는 중국과 소극적인 우리나라

더 오랜 세월이 지나면 이 유물도 없어지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무덤을 쌓아올린 자갈과 돌로 그당시 이 정도 능을 쌓으려면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중국쪽의 산은 푸르지만 여기도 북한의 산은 화전으로 인하여 나무가 없는 헐벗은 山 이다

 

 

광개토대왕비와 능이 있는 지안시 역사에서 배운 옛 지명은 국내성이다

국과 쌍벽을 이루며 동북아의 패권을 다투던 고구려인들의 숨결이 있는 곳으로

광개토대왕이 시퍼런 칼을 휘두리며 호령하던 고구려 북방의 옛 영토이다 

김유신, 김춘주를 삼국통일 위업을 달성한 영웅이라 배웠지만 

왜 삼국이 연합해서 당의 침략을 격파하지 못 했을까? 
찬란했던 고구려의 후예 230년 발해 역사에서 고려와 연합하여 왜 옛 북방 영토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중원을 지배할 야망과 의지을 불 태우지 못 했을까?

 

 

세계사는 어느 제국도 왕국도 영원히 존재하지 못했기에 어느 시기가 도래하면

역사의 필연의 법칙아래 중국도 일본도 미국도 무릎을 꿇을 것이다.

수나라 백만 대군을 살수에서 승리한 을지문덕 장군

백제 근초고왕이 요서 산둥반도에서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북진을 외치며 울렸던 북

광활한 영토와 13억 중국은 부정 부패와 수많은 소수 민족들이 언제인가는

독립을 쟁취 할 시기가 도래 하면 드디어 중국은 몰락 할 것이다.

그때 우리 영토의 백배가 넘는 중국 3성을 찾아야 한다 

 

.

구글지도를 검색해 보니 집안시가 정확히 보였다 

 

 

 Royal Philharmonic Orc -  Hooked on Marching 행진곡 메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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