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요칼럼

소양강 처녀 김태희

시인김남식 2013. 2. 23. 20:56

소양걍 처녀 - 김태희

 

소양강에 단 한번도 와보지 않았어도 소양강 처녀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해질녘의 소양강 강변에서 떠나간 님을 기다리는 여심(女心)을 노래한 .

소양강 처녀는 소양강 보다 더 유명하다.

오래 기억되기는 커녕 한마디 불려지지도 못한채 묻혀버린 수많은 노래의 운명과 비교하면

소양강 처녀는 정말 행운의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소양강 처녀의 노래는 매우 쉽다.

그저 가슴에 와닿아 목청껏 불러제끼면 그것이 가요의 맛이 아닌가.

남여를 불문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어느 한 군데라도 어렵게 넘어가는 부분이 없고

소양강 처녀가 특별한 사연이나 줄거리를 가진 노래말이 아니면서도 가슴에 와닿는 것은 우리들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그리움의 연정 을 살살 흔들어 놓기 때문이 아닐까?


소양강 처녀는 반야월작사 이호작곡 김태희 노래로 온 국민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다

 

당시 작사가 반야월 사무실에서 잔무를 봐 주며 노래를 배우던 열여덟살 윤기순은

한국전쟁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와 고된 일에 지쳐 병치레가 잦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여섯 명이나 되는 동생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형편이지만 당시 유망 직업이었던 전화 교환원이 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하여 우연히 신문을 보다 음반을 취입해 준다는 광고를 보게 된다.

딸이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 죄송스러웠던 아버지가 사무실 직원을 춘천으로 초대해

소양강가에 있는 처녀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갈대가 무성하고 강가에는 자갈밭 까지 쫙 펼쳐진 경치 좋은 곳으로 돌아올 때 쯤에는

물안개가 가득 피어올라 운치를 더했다고 하는데 소양강의 그림 같은 풍경과 함께 윤씨의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에 감명을 받아 시상을 떠 올리게 됐다고 한다

 

 

그때 반야월에게 시상을 안겨준 <소양강 처녀>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윤기순(64) 씨는 

이후 야간업소에서 가수로 일하며 서울과 전국 각지를 떠돌다가

2006년 다시 고향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 집다리골 휴양림에 정착해 민박집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소양강 처녀라는 가사를 1969년 봄 반야월은 오아시스레코드사를 방문하여

신곡으로 쓰라고 내어 주자, 문예부의 상담역이던 작곡가 이호가 작곡하겠다고 자청했다.

노래에는 가수 지망생 중에서 김태희가 선택 되었고 어쨌거나 소양강 처녀는 대 히트를 했다.

김태희는 소양강 처녀로 1970년도 가요 신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톱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와중에서도 1O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 가요계를 놀라게 했다.

 

 

소양강 처녀 가 세상에 나왔을때 춘천지역에서는 가사를 놓고 말이 많았다 한다.

두견새는 산새인데 물가에서 우는 물새냐 

더군다나 2절에서 동백꽃 피고지는 계절이 오면 이란 첫 부분은

강물이 꽁꽁 얼어붙는 소양강가에서는 구경 조차 할수 없는 꽃으로

중부지방 산쪽에서 자라는 동백나무와 흡사한 생강나무를 지칭한 것으로 

동박꽃으로 부르는 사투리를 이 지역 정서를 살리기 위하여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  

 


1.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나는 어쩌나
아~그리워서 애만태우는 소양강처녀

 
2.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오시면 나는나는 어쩌나
아~그리워서 애만태우는 소양강처녀
 
3. 달뜨는 소양강에 조각배 띄워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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