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목숨을바꾼 기구한 삶의 주인공 여간첩 김수임 솔새김남식
해방후 혼란스러운 미군정시절 북한의 초대 외무장관을 지낸 이강국(1906~1955)을 월북 시켰다는 이유로 사랑과 목숨을 바꾼 어쩌면 참 바보같은 여자 일수도 있는 비운의 여자 였다. 남자의 혼에 빠져 자신이 죽는 줄 모르고 사랑에 참 어리석은 여자였다. 사랑과 목숨을 바꾼 기구한 삶의 주인공 그가 바로 여간첩 김수임(1911~1950) 이었다 특별한 간첩 활동을 하지 않했는데 당시 뉴스 제목은 여간첩 김수임 사건이라 대서 특필 했으며 그녀를 한국의 '마타하리'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녀는 6.25사변이 일어나기 3일전 수색의 모래 백사장에서 39살에 총살형으로 일생을 마치게 되는데...... 그런데 전숙희(1919~2010)씨는 "사랑이 그녀를 쏘았다 (2002년 정우사 발행)" 라는 책에서 김수임 이야기를 다룬 小說에서 그녀의 억울한 삶이 재조명 되었다 그 당시 김수임은 보기 드문 엘리트로 억울한 그녀의 죽음은 세계적인 톱뉴스였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을 받아 드리지 못한 그녀 이기에 그는 이렇게 절규 했다고 전한다. 이라고 말하며 평생을 사랑에 목말라 했던 외로웠던 고아 소녀라고 전숙희씨는 2008년 한 방송 토크 프로에서 들려 주었다. 역사가 빚은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며 “ 당시 해방공간 청춘의 나이에서 지켜본 마지막 세대로서 김수임 이야기를 반드시 남겨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고 전숙희씨는 말했다. 광복후 경북 안강에서 아이 넷을 낳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고있는 전숙희씨를 모윤숙이 미군정 때 영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불러냈고 그래서 윤숙 언니랑 20년 넘게 친한 사이였던 수임 언니를 그때 소개 받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렇다할 진실 규명은 이루지지 않은채 김수임의 일생을 그린 소설은 여러번 출간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로 연출되어 세간에 많이 알려젔다 그가 죽은지 꼭 20년만인 1971년 겨울 mbc라디오 연속극으로 처음 방송 했을때 하루도 빼지 않고 들었다 1971년 2월1일 월요일 (日記전문) 김수임 기구한 운명의 장난은 그렇게 그의 일생을 허무하게 만든것 같다. 고아로 태어나 외롭게 자란 그녀는 미 헌병사령관의 아내가 되는 행운을 얻지만 그녀의 숭고한 사랑에 찬사를 보낸다 사랑을 위해서 사랑 하였기에 비록 남로당이었지만 그녀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평생의 행복을 보장하는 미헌병 사령관의 아내이기에 당시 이강국을 절교로 외면 할 수도 있었지만 사랑은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위대한 힘을 가진 마력인가 보다. 김수임 1911년 경기도 개성에서 가난한 홀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11살에 민며느리로 팔려 갔다가 4년만에 야반 도주를 감행한다. 그리고 그후 미국인 선교사에 도움을 받아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게된다. 그녀는 영어 회화에 뛰어 난 인텔리 여성으로 1945년 미군정청이 생기면서 통역관으로 들어가 이듬해 헌병감이 된 베어드대령의 특별 자문으로 고용돼 1949년 6월까지 미정부에서 월급을 받았다 모윤숙과 김수임은 절친한 선후배였고 작가 전숙희와는 9년 후배이다 경성제대 법대 졸업반인 이강국은 함흥지역의 노동자들과 독서학회를 하던 중 뜻하지 않은 사유로 1929년 함흥 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형무소 면회실에서 이강국과 김수임이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어찌보면 김수임의 인생은 모윤숙에 의해서 진행이 된 것 같다 . 그리고 이화여전을 졸업한 김수임은 해방무렵 세브란스 병원장의 비서일을 하게 되는데 폐렴에 걸려있던 이강국과 세브란스 병원에서 16년만에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김수임은 당시 新女性으로 독실한 크리스찬이며 수녀가 되어 평생 봉사하며 살거라고 자신했던 그였고 당시는 아직은 미혼 상태였다. "첫번째 결혼한 아내와 사별했어요. 군정당국이 저를 체포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요. 수임은 그를 16년만에 재회의 댓가로 이강국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데 사실은 만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이었지만 그로 인하여 운명은 그를 힘들게 했다
그가 바로 미군정 시절의 미헌병 사령과 '베어드' 이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김수임에게 모윤숙은 이렇게 말한다. 모윤숙이 또 적극 협력하게 된다. 두사람 모두 독신이었기에 동거 생활을 하게 되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엔 이강국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1946년 어느날 남로당 책임 간부로 내려온 이강국은 불쑥 김수임을 다시 찾아 간다 남편 베어드에게는 미안하지만 김수임은 미로(未路)의 사랑을 다시 시작 하게 된다. 바로 수임의 남편 베어드 였으니 이 보다 더 기막힌 운명과 아픔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글씨~ ㅉㅉㅉㅉ solsae 이강국에 대한 포위망이 좁혀오자 김수임은 어느날 결심을 하게 된다. 결국 그뜻은 나중에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하여튼 월북을 실행하게 되던 날 수임은 베어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개성에 어머니가 계신데 위독해요" 하며 차를 좀 내 달라고 조른다. 아무 탈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개성에 내려 놓았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만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기분 좋게 서울로 돌아왔다. 얼마나 속이 타고 하루 하루를 힘들게 지냈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후대가 그를 평가 할 수가 있을까? 정말 사랑이 죄가 될까요? 네!! 이글을 읽는 당신은 우찌 생각하는지여! 그와의 무언에 약속을 하고 서울로 돌아와 재회를 손 꼽아 기다렸겠지요 1년, 2년, 후에 아니 10년후에 재회를 했다면 그들의 사랑에 역사가 다르게 쓰여겠죠? 수임도 분명히 개성에서 아마 돌아오지 않았으리라고 그 마음을 나는 생각한다. 물론 베어드와 낳은 아들이 있었지만..... . 결국 운명의 신은 그들에게 불행을 안겨주고 말았던 것으로 사랑도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2년이 넘는 수사 끝에 결국 수사망은 김수임으로 지목되여 1950년 4월 수사당국에 체포하게 된다. 거기서 부터 불행이 시작 되었다. 바로 모윤숙 김수임의 체포는 미국과의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 친구였던 모윤숙의 집에서 이루어젔던 것이다 친구를 배신한 모윤숙 그리고 믿었던 친구에 의해 김수임은 체포가 된다. 그리고 김수임은 그렇게 태양이 내리쬐는 그날 6.25전쟁 발발 불과 며칠 전 아직 삶이 꽃다운 젊은 39살 나이에 서울 수색의 한강 모래밭에서 총살형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 1950년6월22일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라는 찬송가 노래가 온 하늘로 퍼지자 그녀의 정신은 이미 혼미해졌다. 김수임이 노을빛에 취해 있는 동안 사형 집행관은 射術들에게 손짓으로 발사 명령을 내린다. 순간, 다섯 발의 총알이 그녀의 심장을 향해 명중하였다. 죄목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 나이는 서른아홉 살 사랑하는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은채 그녀는 쓸쓸히 최후를 맞는다. 당시 비정한 해방공간의 마지막 순간에서 찬송가 울림속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약 사형을 2.3 일만 미루젔다면 그녀는 살아 날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들의 사랑에 역사는 다시 씌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점처 본다 사진 / 김수임이 처형된 수색쪽의 한강변 가양대교로 저멀리 성산대교와 여의도의 63빌딩이 보이고 왼쪽으로 하늘공원 그리고 한강모래 백사장도 보인다. 2003년도 사진 모윤숙(1909~1990)은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서 이화여전을 졸업 했으며 김수임과 절친 사이였다.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해 총사령부등에서 활동했고 '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을 찬양함’, ‘조선학도여 성전에 참여하라’ 등 친일 글을 신문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특히 유엔단 위원장인 인도의 메논은 애초 남한 단독정부를 반대했는데 그가 입장을 바꾸는데 모윤숙이 크게 역할을 했던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박정희 정권때 공화당 전국구로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고 전두환 정권때는 문학진흥재단 이사장으로 1979년에는 독립운동의 상징인 3.1문화상까지 수상했다. 후배 전숙희씨에 의하면 당시 수임을 살릴 수있는 사람은 모윤숙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강국, 모윤숙, 김수임 세사람이 아마도 애증 관계였지않나 추측이 되기도 하고 아무튼 재판에서 김수임을 변론하기도 했지만, 모윤숙의 속내는 친구를 살릴 생각이 없었다고 전한다. 사후에 금관 문화훈장까지 받은 모윤숙은 친일파 명단에 들어 있다.
모윤숙은 김수임과 절친한 언니 동생의 선후배 친구사이로써 수녀의 길을 걷고저 했던 수임에게 처음 이강국을 연인으로 엮어 주었고 그것도 모자라 마음이 흔들리는 김수임에게 그 사람은 변심해서 평양에서 이제 돌아오지 않으니 배어드에게 시집 가라고 일러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수임이 위기때 탈출구를 제공 해준게 아니고 그를 체포 하도록 협조를 했다 더구나 그를 위해 친구를 위해 진실도 밝히지 않은채 모윤슥은 죽었고 살아서도 변변한 변론도 못해 주었다고한다 개인에 영달이 친구를 배산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참 우정이 서글픈 생각이 든다. solsae 이강국은 1906년 경기도 양주 양반 가문에서 출생했으나 파산해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판검사의 길을 버리고 독일 유학에서 독일 공산당에 가입 본격적인 공산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1946년 9월 미군정의 좌익 검거령 체포령이 떨어지자 바로 김수임에게 평양에 보름만 갔다 오겠다고 거짓말 하며 이강국은 월북을 하고 만다 그리고 1년후 1946년 간첩으로 다시 그가 내려 와서 김수임을 곤경에 빠뜨렸다 그리고 김수임의 도움으로 재월북 해서 북한의 최고 자리까지 올랐지만 6,25가 끝난 1955년 어느날 김일성에 의해서 박헌영과 함께 반동 분자로 낙인되여 쓸쓸하게 최후를 맞는다. 에필로그 ; 솔새김남식 한 남자를 사랑했기에 후일을 기약하며 월북 시켯고 그 이유로 죽음까지 마처야 했던 기구한 삶을 살아 온 주인공 김수임 그녀는 사랑과 목숨을 바꾼 그 당시의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최대의 비극적인 일이였다고 역사는 말한다 바로 사랑은 정말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게 실감나는 이야기다 인생이란 별게 아니라는게 바로 이런 애기가 아닐까
떠나지 않고 동정하고 있다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임은 틀림없다. 한편 베어드와의 사이에 아들이 하나 태어 났는데 그가 김원일(목사)씨로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으며 라시에라 대학의 교수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현재 알려 졌다. 그는 어머니 김수임에 대한 사실규명에 나서고 있다 김수임을 변호할 수 있었지만 자신들에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한국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고문에 의해 그녀가 하지않은 일도 허위 자백했던 것으로 특히 이강국에게 비밀정보를 주었다는 정황도 없는 것으로 알려젔다 . 2008년 AP통신은 미국 국립문서 보관소에 보관된 기밀 자료를 토대로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등 당시 발표된 내용이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 진의는 가리지 못하고 있다. 우찌 되었던 solsae는 두사람의 명복을 빌어본다. 한편 김수임의 아들(김원일)은 미국에서 선교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젔다. kns
"當時 京鄕新聞 報道 內容" 연3일 계속해서 방청 하러온 모윤슉 노천명등 여자 방청객이 대부분이었고 어제 보다도 더머리를 푹 숙으리고 수심에 잠겨있었다 김수임은 최후 변론에서 " 하느님과 나를키워준 부모 나를 사랑하여준 여러동무들에 미안하다" 하였다고 하며 이강국을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 1950.06.18자 신문 네이버신문자료 당시 경향신문은 김수임의 轉落記에서 "自己陶醉에 의한 浮薄生活" 이라고 꼬집었다 그가 간첩의 길로 가게된 동기는 이강국外 해방후 모기관에서 일 하다가 월북한 의붓동생 최만용이고 그는 이강국의 중간책이었다. 의붓아버지(최만용父)가 어린수임을 민며느리로 25원에 팔았다 "김수임사건에 관련된 모윤숙의 당시 법정신술내용" 1950.06.17일자 경향신문에서 모윤숙의 변론기사 김수임은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이고 배아미(매미의 평안도 사투리)를 동무삼던 고독한 여성이라고 변론 하였다 하지만 모윤숙은 친구를 구하지는 못 하였다 ● - 모윤숙의 1950년도 일기 - “사형은 잘못된 것 아니다” 수임은 사형이 분명했다. 나는 그 사형이 그릇된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내 친구 수임은 죽었다. 벌써 죽었다. 이 지상에는 없는 수임이다. 저것은 사형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모조품이다. 저 여자는, 저 여자는 정말 수임이 아니다. 6월 10일, 나는 수임을 마지막으로 형무소에서 만났다. 6월이라도 자꾸 춥다고 했다. 속내의와 버선을 다시 갖다주었다. 나오면서 다시 오마고 하고 못간 채 수임은 갔다. 영화 김수임의 일생 개봉 1974년 05월 감독 이원세 출연 윤소라, 신일룡, 이순재, 문오장
영화 줄거리 1948년 미군정시절 주한정보대장인 페이드대령의 현지처 김수임이 특별수사본부에 체포된다. 그녀는 남로당에 가입해 자신이 얻은 숱한 정보를 북한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김수임은 오제도 검사의 앞에서 자신의 지난 날을 술회하는 것으로 영화를 이어간다. 이듬해 시집을 뛰쳐나와 다시 학교를 마치고 이화여전에 입학한 김수임은 이강국이라는 청년과 열애에 빠진다. 졸업 후 김수임은 병원에 취직하지만 이강국은 박헌영의 앞잡이가 되어 월북한다. 이야기하며 그녀를 남로당에 끓어 들인다. 그리고 남로당 당원이 된 김수임에게는 이강국으로 부터 사랑을 미끼로 계속 지령이 내려온다. 여간첩 김수임사건은 5.16혁명의 군사정권시절에는 반공에 좋은 소재였기에 김수임과 이강국의 비극적인 사랑과 죽음에 극적인 요소가 풍부하여 영화와 라디오에 여러번 연출 되었다 1971년 드라마 [여간첩 김수임] 그리고 이후에도 영화와 라디오 TV에 여러번 나왔다 映畵 김수임의 일생 1974년작품
영화 나는 속았다 1964년 작품 출연; 이예춘, 신영균, 문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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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9월 수정 k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