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서/야담설화

명동 본전다방

시인김남식 2013. 11. 9. 20:32

본전다방     솔새김남식

 

음악다방의 추억     솔새김남식

 

미니 스커트가 유행하고 청바지 나팔바지가 유행하던 그 시절

어느 얼빠진 넘이 몸매가 쭉빠진 미니스커트 아가씨가 명동거릴 사분히 걸어가자

부잣집 딸인 줄 알고 명동에서 부터 버스를 타고 몰래 따라 갔더니

중량천 판자촌으로 들어 가더라는 재밋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당시 중량교 하천 뚝에는 판자집이 즐비하였다

중량천 제방길에는 시골서 갓 올라온 촌객이나 피난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생활 터전이 처음 시작되는 곳으로서 하천 부지에 닭과 오리를 키우는 곳도 있었다

더 웃끼는 일은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의 사진을 북한에서는

남한은 전쟁 폐허로 가난해서 옷감이 모자라 치마가 짧다는 정말 웃지 못할

북한의 보도까지 있었다

 






당시 명동은 장안의 멋쟁이들이 모이던 곳으로 문화와 유행의 1번지로 각인되었다

특히 바바리코트 차림에 타임지나 라이프지를 든 개뿔도 없으면서

좀 뻐기는 귀티내서 똥 폼좀 내 볼려고 하는 얼빠진 사름들이

그 시대는 정말 웃지 못할 풍습이 자행되었다

이런 배경 탓에 1970년대 명동에는 음악 다방이 유독 많았으며

음악적인 분위기 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들어 온 사람들이 더 많았

주로 다녔던 곳은 명동에 본전다방과 종로 3가 피카다리 극장옆에 있는 쉘부르이다

그리고 청량리 로터리에 있는 동산 다방이었다.

 

 

 

 

종로 3가 피카다리 극장옆에 있는 쉘부르mbc FM 10시에 "밤의 디스크쇼" 프로를 진행하는

박원웅이 초저녁에는 이곳 쉘부르에서 일을 하여 언제나 음악 다방은 만석이었다

당시 여러번 그곳을 방문해서 그와 함께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음악 다방에서 나온 젊은이들이 갈 곳은 바로 학사주점이였다

抑壓해서 해방된 당시 젊은이들은 서로 어우려서 음악 다방에서 폼 잡고 담배를 꼬나물고

수다를 떨다가 배가 출출하면 학사주점에 가서 막껄리로 목을 축였다.

당시 젊음이들 에게는 음악다방과 학사주점 두 곳을 모두 다녀 가는게 일반적인 코스였다

무교동 낙지 골목을 거점으로 학사주점이 즐비했고

청바지와 장발, 미니스커트가 거리를 점령하고 그것을 단속하는 경찰 또한 즐비하였다.

 

 

충무로 본전다방은 국내 최초로 오페라 극장식으로 크래식과 팝을 분리하여

1층은 크래식을 2층은 팝을 들려주었던 곳으로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본전 다방은 처음에는 샤보이호텔 근처에 있다가 다시 명동 성당 부근으로 이사를 하였다

순진한 아가씨를 꼬셔서 엘리트라는 폼 좀 보여주고 싶어 여러번 갔던 곳이 명동에 있는 본전 다방이다

당시 대학생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바람빠진 여자들이 있어서 그것을 역 이용하는 가짜대학생이 흔했다

더구나 사보이 호텔에는 고향 친구가 홀보이로 있어서 자주 드나 들었다

음악실을 올려다 보는 구조도 특이 하지만 더 특이한 것은 두시간 마다 교체되는 디제이가

신청곡을 받으며 유머스런 멘트가 폭소를 자아냈고 즉석 신청곡을 받기도 했다.

늦은시간 명동을 나오면 퇴계로 남산 입구에서 중앙극장앞을 지나 삼일 빌딩까지의

삼일로 길을 걸어서 무교동 종로까지 돌아 다녔다

추억이 아련한 삼일로 고갯길은 당시 데이트 코스였으며 그래서

"삼일로" 란 노래를 "여운" 이 불렀다

"삼일로 고갯길을 같이가던 그날밤 영원토록 이거리를 잊지말자고 거니는 발자욱에 새긴 그사람...."

 

 

음악다방은 주말에는 언제나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석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성과 합석이 이루어지면 요즘 말하는 뷰팅 이었으며

그리고 청곡 듣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자욱한 담배 연기와 소음공해로 부터 탈출하여 밖으로 나오면 약속을 정한 사람들이

좌석이 없어서 들어오지 못하고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하였다.

당시 명동의 상징은 명동성당과 미도파 백화점이었다.

미도파백화점 5층에 있는 맥주홀카바레 미도파사롱은 낮에는 음악실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주말에는 mbc "별이빛나는 밤에' 공개 방송이 진행되었다 .

mbc 별밤프로에 예쁜 엽서를 만들어서 음악을 신청했던게 정말 엊그제 같다

그리고 예쁜엽서전 구경도 갔었다

내 나이 파릇했던 청춘의 그 나이가 지금은 바람같이 사라젔다. solsae kns

 

 

배경모는 부산출신으로 윤시내가 부른 "열애" 노래의 주인공으로

그 사연은 영화로도 개봉되었으며

젊은 나이에 일찍 요절하였다 허참은 당시 젊은 20대 나이에 TBC쇼쇼쇼 MC를 봤다

 

당시 이름있던 음악다방

 

종로의 무아다방, 청궁다방, 엘파소, 호다방, 양지다방, 성전다방, 돌체다방,

약속다방, 솔다방, 희다방, 돌고래다방, 원앙다방, 타임다방, 세시봉, 국일다방, 초우다방, 황제다방

명동 을지로에는 꽃다방, 호수다방, 청자다방, 설파다방, 영화다방, 가로수, 카네기

대학로에는 슈만과 클라라. 학림다방, 참스다방. 대학다방

동대문에는 돌체다방, 선구자, 수산다방, 청자다방, 금성다방, 동궁다방, 역마차,

서대문 신촌에는 독수리, 빌보드, 파리다방, 상록수다방, 성지다방, 노라노, 타임다방.

고대앞에는 보성다방, 서브웨이 경희대 입구의 궁다방, 상원다방 신당동의 너와나, 주희다방

화양리에 매킨토시, 타임다방... 청량리의 남지다방, 동산다방

왕십리에는 축제다방, 돌체다방, 약속다방, 불새다방...

영등포에는 꽃샘다방, 약속다방, 종점다방,

당시 음악다방은 마땅히 갈곳 없고 호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던 사회 초년생이나

대학생, 젊은 직장인들의 유일한 휴식처였다

 

 

 

관련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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