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書/生活수필

촌뻘 날리고 있네

시인김남식 2010. 12. 15. 15:58

촌뻘 날리고 있네   김남식

 

날씨가 덥고 해서 그냥 집에 있자하니 답답하여 바람이나 잠시 쏘일 겸 혼자 나서려고 하는데 아내가 기어코 따라 나서겠다고 한다. 휴가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어디를 가도 거리에는 차량들로 가득하였다. 이리가도 막히고 저리가도 막히고 딱히 갈 때도 없고 하여 자유로 를 따라서 임진각에 내려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차를 돌려서 드라이브하기로 하고 적성면을 지나서 비룡대교 유원지에 도착을 했다. 다리 밑에서 발을 담그고 집에서 갖고 나온 과일을 깎아 먹고 있으려니 아내가 투덜댄다. 마누라하고 돌아다닐 땐 짠돌이 행세를 한다고 입이 삐죽이다.

"잘 나가던 회사가 며칠 전 부도나서 이러고 있잖아?"

날씨가 더운지 내 농담에는 대꾸도 안하고 밥 먹으러 가자고 조른다. 하긴 벌써 2시가 넘었으니 배가 고팠다. 다시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서 오다가 차가 읍내 쪽으로 조금 내려와서 읍내로 들어오는 길목으로 자그마한 식당이 하나 보였다. 식당 겉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머뭇거리다가 할 수 없이 차를 들이 밀고 들어가니 주인아주머니가 달려 나와서 맞이하는데 한눈에 보아도 취기가 조금 있어 보였다.

'손님이 없어 속상해서 마셨나?' 생각 하며 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식탁으로 다가 오더니 주문을 하라고 한다.

'감자 수제비 2인분하고 부침개에 막걸리 하나만 주세요.' 했더니

감자 수제비는 그냥 줄 테니까 몸에 좋다며 엄나무 넣고 삶은 닭백숙을 먹으라고 한다. 삭막한 주인아주머니 분위기에 우쭐하고 있는데 아내는 한술 더 떠서 그걸 원하는 눈치였다. 새끼 손 가락을 가르치며 요것하고 왔으면 아무 말 없이 시킬 터 인데 못생긴 마누라와 같이 왔다고 그런 게 아니냐고 투덜대는 낌새의 눈치 였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도적쇠처럼 신용카드로 긁기로 하고 우선 시켰다. 손님이 정말 우리밖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이 부근은 전방이 가까워서인지 피서객들이 자주 왕래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한적한 길에서 마음 달래이며 드라이브하기에 아주 딱 좋은 곳이다. 드디어 부침개와 막걸리가 나왔다. 산바람이 등골을 시원하게 해주고 외간 여자가 따라주는 짜릿한 맛은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냉 막걸리의 맛은 꿀맛 이였다. 이여서 닭백숙이 나오고 여름 더위에 땀 흘리면서 곁들여서 먹는 보양식 맛을 그래도 일미였다. 두 잔을 비우고 나니까 아주머니가 은근 슬쩍 술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자식이 뭐 한다 뭐 한다 사업 한다며 돈만 가져가는 아들이 나쁜 놈 라고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죽 설명을 시작 한다.

아주머니 음식 솜씨가 좋습니다. 아주 맛있네요."

내가 칭찬을 해주니 얼른 주방으로 가더니 이건 더덕 동동주라며 한 단지 들고 들어 와서는

"이거는 서비스요." 라며 내려놓으며 같이 한잔 하자고 한다.

"아지매! 내가 부어 줄 터이니 한잔 잡수소! 그런데 뭐 속상한 일이 있는 갑네."

술이 한잔 들어가니 슬슬 말씨름 발동이 걸려왔다.

"죽고만 싶네요, 내는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남편 없이 자슥하나 키운 게 사고를 쳐서 내 속상해 죽겠네요."

자식이 뭐 한다 뭐 한다 사업 한다며 돈만 가져가는 뺀질이 라고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또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지매 고향이 어디래요"

"청도라 깅상도"

남편이 군 장교였는데 오래전에 병사 했다고 한다. 이것저것 막일 하다가 이 작은 식당을 하나 잡아서 하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한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시집가서 팔자나 고칠 것인데...."

술이 술을 마신다고 눈 깜짝 할 사이에 한 단지 다 비운 아주머니

"우리 반단지만 더 마십시다."

하면서 반단지가 아니 또 한 단지를 들고 나 온다. 그런데 아내는 멀건이 옆에 그냥 앉아 있는데 아주머니가 닭다리의 뼈도 발라서 먹기 좋게 접시에 담아 놓는다. 주인아주머니의 터부룩한 모습이 꼭 시골에 있는 우리 큰 형수의 모습으로 보였다.

신세 한탄하는 아주머니의 푼수가 듣기 싫은지 아내가 자꾸 가자고 곁눈질을 하고 있다. 나 보다 사실은 주인아주머니가 술을 더 마신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콩이냐 팥이냐 하면서 입심 좋은 아주머니와 말씨름하기 좋은 나와는 쉽게 벗이 되어서 벌써 두 시간을 술상 앞에 이러고 있다. 지금 누구랑 바람 쏘이러 나온 거냐고 아내는 입이 또 나온 것 같다. 정말 아내랑 콧바람 쏘이러 나온 게 아니라 내가 봐도 식당 아주머니와 같이 놀러 나온 것이 아닌 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밌는 농을 하던 사이에 아내의 휴대폰이 울렸다. 집에 있는 애들이 점심때가 되었는데 엄마 아빠가 어디를 갔는지 호출 하는 것 같았다. 다 큰 놈들이 엄마를 왜 찾는지 모르겠다고 뚜한 대답과 밥은 너희가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퉁명스럽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 응, 아빠도 옆에 있는데 바꿔 줄까?"

하고 건네줘서 나도 몇 마디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을 개씸스레이 쳐다보며 듣고 있던 주인아주머니의 말이 괴짜였다.

"지랄! 부부가? 씨이! 아주 촌뻘 날리고 있네."

라고 하는 것이다.

"촌뻘이라니? 이 무신 소리요?"

"그럼 촌뻘이지 머고?".

촌 빨이라는 낯선 단어가 잠시 나를 머뭇거리게 하였다.

"아줌마요! 부부가 같이 오면 촌뻘입니까?"

"촌뻘이지. 촌뻘도 대단한 촌뻘이다. 요새 누가 지꺼하고 다닌다카노."

"...................?"

"근께, 아까 감자 수제비만 시키려고 했지!"

주인아주머니의 사설에 할 말을 잃었고 말이 너무 우스웠다. 술이 취해서 하는 소리거니 하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이를 물어보니 73살이란다. 요즈음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많다며 식당에 들어서는 것만 봐도 촌뻘인지 아닌지 자기는 잘 안다고 내 말을 앞서서 추월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대화는 여기서 겸연쩍게 끝이 나고 술상을 물렸다.

"진짜 촌뻘 날리고 있네."

중얼거리며 아주머니가 계산대에 갔다 돌아오더니 자기가 마신 동동주 값까지 포함된 계산서를 쑤욱 내민다. 그리고는 마루에 머리를 쿡 박더니 이내 잠이 들어 버린다. 그 아주머니가 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구경 못하고 자식까지 속 섞인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졸지에 촌뻘 날린 우리는 일하는 또 다른 아주머니에게 계산을 하는데

"가끔씩 신세 한탄하며 울기도 해요"

하며 식당을 나오는 우리를 배웅한다. 그나저나 그 아주머니 때문에 별 희귀한 단어도 배웠고 술값은 바가지 섰지만 재미는 있었다. 장사를 하니까 그런지 참 재미있는 아주머니라고 생각하였다. 식당을 나오는데 뒤통수에 쇠망치 두들기는 소리가 또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지랄 촌뻘 날리고들 있어!"

주인아주머니의 술 취한 목소리가 식당을 나설 때 까지 여러 번 반복 들려왔다. 대다수 업종들은 짝 퉁 손님을 좋아한다. 그 사람들이 매상을 올려 주니 주인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걸 부추길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비용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고 들었다. 그 날은 생각지도 않은 주인아주머니의 엉뚱한 소리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늦은 점심을 먹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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