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요칼럼

조개껍질 묶어 윤형주

시인김남식 2013. 8. 8. 11:33

 조개껍질 묶어  솔새김남식


 

윤형주가 부른 이 노래 '조개껍질 묶어' 의 원제는 '라라라' 였다
은희의 '꽃반지끼고' (원제오솔길)와 '라라라'는 1970년초 그해 여름

청춘이 있는 젊음이들에겐 단연 최고의 노래였다 
당시 의대생이었던 윤형주가 친구들과 대천해수욕장에 놀러와서 체험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변에서 만난 한 여학생 마음을 끌어 보려고 30분만에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젊음의 계절인 여름은 누구나 추억을 만들어 갖고 싶어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대천 해수욕장이다



그 당시 교통 수단으로서는 부산해운대나 강릉경포대 보다는
서울에서 접근하기 가장 쉬운 곳이 바로 대천해수욕장으로 최고의 피서지였다

대천 해수욕장은 조개껍질 백사장으로 아주 유명하다.
아침 썰물이 되면 물이 빠진 해변을 거닐며 줍는 조개껍질의 추억은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버드나뭇가지나 또는 끈을 준비해서 조개가 구멍 난 예쁜 것을 주워 

목걸이를 즉석에서 만들어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해 여름은 청바지와 순수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가져다 주었던 것 같다. 



꿈이여 영원하기를 바랬던 그 시절 당시 대천 해변에 모닥물을 피워 놓고 

겁없이 까불며 놀았던 그때의 그 추억은 돌아 갈수 없는 과거로 지금은 변해 있다.

앞집에 사는 무학여고 다니는 이영숙이라는 여학생과 어울려 돌아 다니며

중량천 뚝방길, 종로, 명동, 청량리 그리고 화양동까지 싸 다녔던 추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만남이 계속 이여지지 못했다.

노래 가사처럼 지금은 가버린 아름다운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처가는데 ...

지금 아이들은 30년후에 어떤 노래로 추억 할까 생각을 해본다.


1971년 라라라 LP레코드 겉표지로 그땐 포크송을 별밤시리즈로 발간하였다

그녀가 1판을 사면 내가 2판을 샀고 그리고 서로 돌려 가며 들었다

내게도 이런 젊음과 청춘이 있었던가 기억하게하는 그시절의 노래이다

윤형주의 "비와 나" 이 노래도 참 좋았다    


=> 대천해수욕장에 있는 조개껍질 묶어 '라라라' 노래비   

라라라 조개껍질 묶어    작사작곡 윤형주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지 않네
랄라라라라라

아침이 늦어져서 모두들 배고파도 함께 웃어가며 식사를 기다리네
반찬은 한두가지 집생각 나지마는 시큼한 김치만 있어줘도 내겐 진수성찬.
랄라라라라라

밥이 새까맣게 타버려 못먹어도 모기가 밤새 물어도 모두다 웃는 얼굴
암만 생각해도 집에는 가얄텐데 바다가 좋고 그녀가 있는데 어쩔수가 없네.
랄라라라라라 ~ 랄라라라라라



윤형주 story ; 1947년생
.
영문학박사인 아버지와 성악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윤형주. 그의 음악 인생은 기타와 함께 시작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성가대원 이였던 그는 같은 교회 베이스 파트의 선배 조영남이
부르는 'Cotten fields'를 듣고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급기야 기타를 한번 만져보기 위해 선배를 졸졸 따라 다녔으며 대학에 들어 가서는
완고한 아버지를 졸라 꿈에 그리던 통기타를 얻어냈다.
그리고 200여 곡의 팝송을 외우며 기타에 빠져 들었다.
연대 의대에 들어갔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친구 이익근과 함께 트윈 폴리오란
그룹을 결성했으며 얼핏 존 덴버(John Denver)를 연상시키는 감미로운 목소리와
하모니로 음악 다방의 챔피언이 되었다

음악다방 세시봉에서 선 굵은 보컬의 소유자 송창식을 만나 트윈 폴리오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그는 트윈 폴리오의 음악 감독 이였지만, 보컬을 주도적으로 맡은
송창식에 밀려 2인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들국화의 최성원이나 비틀스(Beatles)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에
비견 될만한 것 이였으며 클래식 수업을 받았던 파트너를 대중적인 감수성으로
인도한 공로는 전적으로 그의 몫 이었다

트윈 폴리오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부모님의 반대와 본인도 음악으로
인생을 걸 생각이 없던터라  아버지가 총장으로 있는 경희 의대로 전과한 그는
공부 때문에 팀을 해체해야 했다.
그는 한동안 의사 수업을 차분히 받았으며 솔로 앨범을 발표 하고
본격적인 대중의 우상이 되는 송창식과는 별개의 길을 걷는 듯 했다
그러나 음악적 센스가 뛰어났던 그는 자신의 재능에 떠밀려 다시 프런트로 나왔다.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로 시작하는 '라라라'를 만들어 작곡가로 데뷔한
그는 솔로 앨범 발표 이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CM송으로 광고계를 제패하였다.
지금 들어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오란C', '롯데 껌', '새우깡' 등의 작품이
그의 손에서 나왔으며 지금까지 1400여 곡 이상의 곡을 만들어 냈다.
그는 트윈 폴리오 시절부터 솔로 활동 당시까지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지만
결과적으로 송창식이나 이후 발굴해낸 김세환 보다는 소행성의 위치에 머물고 말았다.
 
'라라라'의 커다란 히트 후 이탈리아 소년 가수 하인쩨(Heintje)가 부른 'Zwei kleine sterne'을
번안해 부른 '두개의 작은별'이 트윈 폴리오 시절 못지 않은 성공을 일구어 냈으며
다음 해에도 역시 '어제 내린 비'와 같은 수작으로 인기 전선을 유지했다.
그는 이외에도 일종의 구전가요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하와이 민요를 개작한
 '즐거운 자전거 하이킹'이나 “노래를 못하면 시집을 못가요 아~ 미운 사람”이라는 가사로
지금도 여러자리에서 인용되는 '미운 사람', 일본에 까지 그의 이름을 알렸던,
피지섬의 민요를 번안한 '우리들의 이야기' 등으로 아직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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