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김포장릉(金浦 章陵)

시인김남식 2015. 10. 28. 14:00

김포장릉(金浦 章陵) 솔새김남식

 

장릉의 명칭이 현재는 세곳 이라서 자주 혼동이 되는데 각각 한자가 다르다.

김포에 있는 인조의 부친 원종의 장릉(章陵)은 사적202호로 파주에 있는 인조의 장릉(長陵) 사적203 호로

그리고 영월에 있는 단종의 장릉(莊陵)은 사적 196호 이다. 

 

김포장릉은 광해군을 내쫓고 반정을 통해 왕이 된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 원종 (元宗, 1580년 ~ 1619년) 과 어머니가

묻힌 능으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 정통성을 만들어야 했던 용렬한 임금으로 불리운 인조는 중국황제에게 항복 의식을

치루어야 했던 어리섞은 임금으로 업적보다는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조선 16대 임금이다.

 

장릉 이자리는 본래 인조의 어머니 계운궁 연주부부인(啓運宮 連珠府夫人) 구씨(인헌왕후)가 사망하자

그의 묘소인 육경원(毓慶園)으로 조성되었고 양주에 있던 정원대원군의 묘소에는 흥경원(興慶園)이란 이름을 올렸는데

육경원 조성이 마무리되자 육경원 자리에 합장을 하고 이름은 정원대원군 묘소의 이름인 흥경원(興慶園)으로 통일하였다.

그후 1632년 정원대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되자 장릉으로 격상되었다

 

인조(능양군)의 아버지 정원군 원종은 1580년(선조 13) 6월 22일 선조의 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용모가 남다르고 태도가 신중 했으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와 우애가 남 달랐다고 한다.

 


그러나 정원군은 선조의 잘못된 자식 농사로 생겨난 임해군과 순화군등과 함께 세간에 악평과 원성이 자자했던

불량 왕자 3인방의 한명이었으며 그들은 살인과 폭행을 일삼고 남의 재산 탈취를 예사로 해댔다고 전하는데

정원군에 대한 기록은 아들 인조때에 쓰여진 것으로 미사여구 일색이었다

다시 말해서 윗 내용은 아들 인조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1608년에는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난 7년후 정원군의 셋째 아들 능창군(綾昌君 1599년~1615년)을

황해도 군수가 왕으로 추대하려 다는 무고로 인하여 능창군은 강화도로 유배당 한후 자진하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인조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후 아버지 정원군이 몸져 누워 1619년(광해군 11) 4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이때 부터 능양군(인조)은 동생 능창군을 유배 보내고 죽인 伯父 광해군 대한 원한이 깊어서 음모 초기부터 가담했다고 하며

그의 정치적 야망 때문에 반정이 성공하지않았나 사료된다.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은 아들 능창군이 역모의 무고로 유배지에서 죽은후에 자기 집터(경희궁터)도 빼앗긴 후

이복형 광해군의 핍박을 받아 술로 세월을 보내다 40세로 양주군 처갓집 선산에 대충 묻히게 된다.

 

그러나 4년이 지난후 광해군이 쫓겨나고 정원군의 큰 아들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으로 봉해졌고

1626년(인조4년)년에는 정원군의 어머니 인헌왕후가 49세에 세상을 뜨자 김포에 안장하면서 원호를 육경원이라 하였다. 

 

그로 부터 1년후 부친의 묘를 이장하여 쌍릉을 조영 하면서 원호를 흥경원이라 하다가

1632년(인조10년) 인조는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하여 능호를 장릉이라 하고 석물을 왕릉제로 개수하는데

그 당시 조정에서는 반대 논란이 많았지만 인조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할아버지 선조가 부친을 왕으로 추존하려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것과 대조가 된다

그것은 인조가 반정을 통하여 왕위에 올랐기에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아버지를 왕으로 세울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엄밀히 따지면 국왕 스스로가 국법을 어긴 행위라고 한다.

 

즉 대원군은 왕이 후사(後嗣) 없이 죽었을 때 종친 가운데서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경우에 새로운 왕의 생부(生父)에게

주는 작호인데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이 대원군으로 추존(追尊)한 것이 조선 역사에서 처음이기에

선조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부친을 왕으로 추촌 할 수 있었지만 대신들의 반대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 하였다.

 

 하지만 인조는 부친을 왕으로 추대를 마첬다.


김포 시청뒤 장릉산 기슭에 있는 김포 장릉은 도시민에게 휴식 장소를 제공하고 있어서 우찌 되었던 좋다 

  

가을 바람 쐬며 직접 걸어보니 산책하기 좋구요 단풍이 아름다우며 나무가 우거져서

곳곳이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한지 궁궐이고 능이고 가 보면 정말 시원하더이다.

 

가을 단풍이 미색인 김포 장릉을 다녀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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