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안중근의사 기념관

시인김남식 2014. 6. 16. 20:24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 솔새김남식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 대한제국의 의병장, 정치 사상가이다.
안응칠(安應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으며, 본관은 순흥(順興)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도마; 多默)이다.

 

우덕순과 소수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만주의 하얼빈 역, 지야이지스고 역 근처에서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 등의 하차시 암살을 준비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였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다이지로(森泰二郞), 남만주 철도 이사인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살인의 죄형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안중근은 의거를 거행하기 전 〈장부가(丈夫歌)〉를 지어 우덕순에게 주었으며, 우덕순도 〈거의가(擧義歌)〉로 답하였다. 〈장부가〉는 안중근의 친필로 된 한시와 한글시가 함께 전해진다. 안중근은 〈장부가(丈夫歌)〉에서 대한제국을 침탈하고 국가를 멸망에 이르게 한 일본인 출신 이등박문을 '쥐새끼' 라고 지칭하며 강력한 적대감을 드러내었다

 

丈夫處世兮,其志大矣。 장부가 세상에 쳐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時造英雄兮,英雄造時。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
雄視天下兮,何日成業。 천하를 웅시함이여 어니 날에 업을 일울고
東風漸寒兮,壯士義烈。 동풍이 졈드 차미여 쟝사에 의긔가 뜨겁도다
憤慨一去兮,必成目的。 분개히 한 번 가미여 반다시 목젹을 이루리로다
鼠竊伊藤兮,豈肯比命。 쥐도젹 이등이여 엇지 즐겨 목숨을 비길고
豈度至此兮,事勢固然。 엇지 이에 이랄 쥴을 시아려스리요 사셰가 고여하도다
同胞同胞兮,速成大業。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萬歲萬歲兮,大韓獨立。 만셰 만셰여 대한 독립이로다
萬歲萬歲兮,大韓同胞。 만셰 만셰여 대한 동포로다

 

안중근은 자신이 사형 당하면 조국에 운구하여 매장해줄 것을 최후로 당부했지만 시신은 뤼순 감옥의 죄수 묘역에 묻혔다. 일제는 안중근의 정확한 매장지를 알려 주지 않아 그의 매장지를 찾을 수 없었고,
현재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유해가 묻힌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출범한 안중근 유해 발굴 및 국내 봉환을 추진하는 비정부 민간단체 안중근 뼈대찾기사업회는
최근 안중근이 순국한 뤼순 감옥에서 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뤼순감옥구지묘지를
안중근의 유해 매장지로 추정하며 해당 지역에 대한 발굴을 정부에 의뢰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뒤에 대한민국장으로 개정)이 추서되었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뒤에 대한민국장으로 개정)이 추서되었다

 

 

중국에서 유해를 찾으면 봉환 할수 있도록 현재 효창공원에 가묘가 개설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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