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질풍염’미인으로 유명한 양귀비는 당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며,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다.
본래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수왕의 비로
17세 때 궁에 들어 왔으나 시와 노래에 뛰어난 보기 드문 절세미인으로
현종의 눈에 들게 되어 간택되었다.
현종이 양귀비를 무척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딸들도
현종의 비로 맞아 들여졌고,
사촌 오빠인 양국충은 재상이 되었다.
한편 돌궐족 출신인 젊은 장군 안녹산은 양귀비가 무척 예뻐하던 양자였는데,
양귀비의 득세를 등에 업고 엄청난 권세를 누리게 된다.
양국충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자 안녹산을 제거하려고 하지만
이를 눈치 챈 안녹산이 ‘안사의 난’ 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수도가 점령당하자 현종과 황실은 피신해야만 했고,
도망가던 중 현종의 친위병들은 황실의 몰락이 양씨 일가 때문이라고 여겨
양귀비와 양국충을 처형하라고 현종에게 제기한다.
목숨과 사랑 중 목숨을 택한 현종은 결국 양귀비를 처형하는데 동의하고
양귀비는 자결 아닌 자결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현종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기적이고 대범하지 못한 남자였다.
어찌 보면 본인이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정치를 소홀히 한 과실을
양귀비에 떠넘긴 비겁한 남자이기도 하다.
사실 현종은 소싯적 정치에 꽤나 소질이 있는 황제였다.
중국 역사상 몇 안 되는 태평성대를 이룩한 장본인이지만
양귀비에게 빠지면서부터 점점 정세가 기울게 된다.
나아가 ‘양국충’과 ‘안녹산’을 비롯해 양귀비의 일가친척 환관과
탐관오리가 득세하게 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망국으로 치닫게 된다.
혈연, 학연, 지연을 중심으로 한 국가는 결국에는 망하게 되어있다.
혹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等外] 몸도 마음도 가벼웠던 조비연(趙飛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