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해외여행

중국 4대 미녀

시인김남식 2016. 4. 13. 18:52
 
중국 4대 미녀(美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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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뜻하는  history 는 ‘그의 이야기’ 라는 의미를 가진다. 
시대를 움직인 역사 속의 인물들 중 대다수가 남성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역사를 들여다보면, 여성들의 등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역사 속의 여인들은 때로는 아름다운 미모로 권력을 좌지우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잔혹한 방식으로 한 시대를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 여인들의 삶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여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볼  있을 것이다.
1. 국지색의 주인공 서시(西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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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4대 미녀 중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서시.

중국의 4대 미녀 중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서시. 
서시는 춘추전국시대 말, 월(越)나라의 미녀이다. 
하루는 그녀가 강변에 있는데 맑고 투명한 물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수중에 있던 물고기가 그 미모에 놀라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녀의 미모에 비단 물고기만 놀란 것이 아니다. 
당시 오(吳)나라의 왕 부차와 월(越)나라의 왕 구천이 싸우던 중 
구천이 패하게 되어 항복하고 부차의 신하가 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구천은 치욕을 씻기 위해 뛰어난 미모를 소유한 서시를 
부차에게 바치면서 미인계를 쓰고, 
부차는 서시의 미색에 빠져 국정은 돌보지 않고 정치를 태만하게 한다. 
그 틈을 타 구천은 부차를 공격하여 오나라를 패망시킨다. 
오나라가 패망한 뒤 서시는 구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지만 
구천의 정부인에게 비밀리에 제거당한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주인공이자 영웅호걸들의 애간장을 녹인 장본인 서시. 
아름답고 화려한 외면 속에 남모를 슬픔이 서려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인계란 바라는 목적이 있을 때 아름다운 여인으로 하여금 
상대를 유혹하게 하여 뜻하는 바를 성취하는 건데 
이를 저속 하게는 ‘성 상납’이라고 표현한다. 
여자의 인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단지 임무와 사명감 만으로 
마음에도 없는 남자를 유혹하고 때로는 몸까지 허락해야 하는 비운. 
서시와 같은 인물이 오늘 날에도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봐야 할 필요가 있다. 
2. 뇌물주지못해 추녀로그려질수밖에 없었던 왕소군(王昭君)

한(漢)나라의 왕소군은 재주와 용모를 두루 갖춘 팔방미인이다. 당시 한나라의 원제는 궁녀들의 초상화를 화공에게 그리게 하여 초상화를 보고 아름다운 궁녀를 골라 총애하였다. 궁녀들은 자신들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화공에게 앞다투어 뇌물을 바쳤다. 그러나 가난했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못해 본인의 외모와는 상반되는 미운 초상화가 그려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화친을 위해 북쪽 흉노왕에게 궁녀를 보내려던 원제는 초상화 가운데 가장 못생긴 왕소군을 뽑아서 보내도록 하였다. 원제는 이별의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야 비로소 왕소군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미모에 반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흉노왕에게 보내고 만다. 결국 그녀는 흉노왕의 아내가 되어 싸움이 빈번하던 두 나라를 50년 이상 원만한 관계로 유지시킨다. 현대 중국인들은 왕소군을 고대 영웅 중 한 사람으로 꼽기도 한다. 앞서 궁녀들이 화공에게 자신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뇌물을 바치는 모습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뇌물수수는 가장 만연하게 행해지는 비리인 듯하다. 그래서 그만큼 더 뿌리뽑기 힘든 부정행위이다. 비록 가난했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질 못해 오랑캐의 땅으로 보내졌지만 탁월한 국정능력을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그녀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지도자의 양상인지도 모르겠다. 3. 여포와 동탁의 그녀 초선(貂蟬)

초선은 중국의 4대 미녀 중 유일한 가상인물이다. 초선은 삼국지 초기에 나오는 인물로 한(漢)나라의 대신 왕윤(王允)의 수양딸로 용모가 명월 같았을 뿐 아니라 노래와 춤에 능했다. 하루는 초선이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는데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리우자 그 모습을 본 왕윤은 "달도 내 딸에게는 비할 수가 없네. 달이 부끄러워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구나." 라고 말해, 이 때부터 초선은 폐월(閉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비록 양아버지였지만 초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고 그녀 또한 그를 잘 따랐다. 훗날 초선은 왕윤의 부탁을 받고 은혜에 보답하고자 그의 계략을 실행에 옮긴다. 미인계를 써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시켜 서로 질투하게 하고 배신하게 하여 결국 여포로 하여금 섬겨야 할 주인인 동탁을 칼로 베어 죽이게 한다. 동탁을 죽게 만든 후 초선 또한 의로운 목숨을 거둔다. 아름다운 여자는 수명이 길지 않거나 운명이 기구하다더니 ‘미인박명’ 은 초선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비록 남들보다 일찍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누구보다 용기 있는 여인이었다. 당시 동탁은 권력의 찬탈과 폭정으로 후한을 멸망시키고 제국을 분열시키는 등 백성들로 부터 원성을 사고 있던 터였다. 다들 동탁이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맞서 싸우는 이는 없었다. 그 찰나 초선이 개입돼 동탁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아무리 아버지의 부탁이라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후한 말 ‘폭정’과 ‘ 권력찬탈의 쿠데타’를 멈추게 한 1등 공신은 초선이 아닌가 싶다. 4.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절세미인 양귀비(楊貴妃) .


자질풍염’미인으로 유명한 양귀비는 당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며,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다. 본래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수왕의 비로 17세 때 궁에 들어 왔으나 시와 노래에 뛰어난 보기 드문 절세미인으로 현종의 눈에 들게 되어 간택되었다. 현종이 양귀비를 무척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딸들도 현종의 비로 맞아 들여졌고, 사촌 오빠인 양국충은 재상이 되었다. 한편 돌궐족 출신인 젊은 장군 안녹산은 양귀비가 무척 예뻐하던 양자였는데, 양귀비의 득세를 등에 업고 엄청난 권세를 누리게 된다. 양국충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자 안녹산을 제거하려고 하지만 이를 눈치 챈 안녹산이 ‘안사의 난’ 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수도가 점령당하자 현종과 황실은 피신해야만 했고, 도망가던 중 현종의 친위병들은 황실의 몰락이 양씨 일가 때문이라고 여겨 양귀비와 양국충을 처형하라고 현종에게 제기한다. 목숨과 사랑 중 목숨을 택한 현종은 결국 양귀비를 처형하는데 동의하고 양귀비는 자결 아닌 자결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현종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기적이고 대범하지 못한 남자였다. 어찌 보면 본인이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정치를 소홀히 한 과실을 양귀비에 떠넘긴 비겁한 남자이기도 하다. 사실 현종은 소싯적 정치에 꽤나 소질이 있는 황제였다. 중국 역사상 몇 안 되는 태평성대를 이룩한 장본인이지만 양귀비에게 빠지면서부터 점점 정세가 기울게 된다. 나아가 ‘양국충’과 ‘안녹산’을 비롯해 양귀비의 일가친척 환관과 탐관오리가 득세하게 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망국으로 치닫게 된다. 혈연, 학연, 지연을 중심으로 한 국가는 결국에는 망하게 되어있다. 혹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等外] 몸도 마음도 가벼웠던 조비연(趙飛燕)

아쉽게 중국의 4대 미녀에서 탈락한 자가 있었으니 바로 조비연이다. ‘연수환비(燕瘦環肥)’, 즉 조비연은 말랐으나 미인이었고, 양귀비는 뚱뚱했으나 미인이었다. 이처럼 그녀는 항상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명인 양귀비와 더불어 거론된다. 조비연은 ‘날으는 제비’라는 뜻으로 본명인 조의주 대신 조비연으로 불렸다. 뛰어난 몸매와 가무로 그녀는 한(漢)나라 성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의 지위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자신의 힘만으로 지위를 지키는 것이 벅차게 되자 동생인 조합덕을 불러들인다. 언니와는 달리 풍만한 몸매를 지녔던 조합덕은 성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고 이를 질투한 조비연은 욕정을 풀기 위해 외간남자들을 불러들여 정을 통한다. 하지만 임신을 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던 그녀는 임신을 한 후비들을 살해하거나 그 자식들을 살해한다. 훗날 성황제가 죽자 지지 기반을 잃은 조비연은 황후에서 서인으로 신분이 강등되고 끝내 자결하고 만다. 조비연이 4대 미녀에서 탈락하게 된 이유는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 악덕 행위과 가벼운 행동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올곧은 품성과 마음가짐을 가진 자로서 도덕적으로 행동했더라면 황제가 죽었다 한들 그녀를 반대하는 세력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전히 황후의 자리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식 밖의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던 그녀는 유일한 지지 기반을 잃게 되자 권력도 잃고 그 동안의 죄값을 치르게 되는 최후를 맞게 된다. 옛말에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이 있듯이 하늘의 그 물은 넓고 넓어서 엉성한 듯하지만 잘못에 대해서는 빠뜨리지 않고 벌을 내린다고 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이고 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이라고 한들 악덕하고 부도덕적인 행위를 일삼는다면 하늘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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