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종점 솔새김남식
은방울자매가 부른 마포종점은 마포구 도화동에 살았던 작사가 정두수선생이 출발을 알리는
구슬픈 종소리와 함께 서민의 애환과 정취를 싫어 나르는 전차가 사라진다는 아쉬움에
전차와 더불어 어느 두 여인의 슬픈 사랑이야기에 얽힌 아련한 옛 기억을 회상하면서
만든 노랫말에 작곡가 박춘석선생이 곡을 붙혔고 1967년 봄
은방울자매(박애경, 김향미)가 노래를 불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노래는 마포종점을 바라본 한강을 낀 마포의 야경이 잘 나타나 있어서
마포주변의 옛 모습을 회상 하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이 노래로 인하여 마포가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는 계기가 되었다.
서민의 발이요, 애환을 싫어 나르던 전차는
'마포종점' 노래가 발표 되던 이듬해 부터 서서히 세월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전차는 고종황제의 홍릉 행차를 위하여 한성전기회사에 의해 부설되어 1899년 5월 처음 개통되었다
마포에 전차가 운행된 것은 1907년초 이 당시 서대문에서 마포에 이르는 전차 노선이 운행되어 오다가
한국전쟁 이후 증가한 자동차에 밀려 1968년 11월 30일 서울의 전차가 일제히 운행을 정지하게 되었다.
마포구 염리(鹽里)동은 소금파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해 유래한 지역 명이다
마포종점 정두수작사 박춘석작곡 은방울자매노래
밤깊은 마포종점 갈곳없는 밤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곳없는 나도 섰다
강건너 영등포엔 불빛만 아른아른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밤 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
여의도 비행장엔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하들 무엇하나
궂은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마포대교 교차로 부근에 있는 노래비
가사해설
- 마포종점, 밤전차
1968년 11월 30일 운행이 전면 중단된 전차는 그 당시로는 가장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 이었으며
남대문을 기점으로 마포, 원효로, 영등포, 왕십리, 청량리, 돈암동, 혜화동에 전차 종점이 있었다.
- 당인리 발전소
홍익대와 인접한 마포구 당인동의 서울발전소는 당인리 발전소라고 불렸다.
일제 치하인 1930년에 서울 외곽이었던 당인리에서 화력발전으로 전기 생산을 시작하였다
지금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게 되자 지역 주민들에게는 공해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퇴출 대상으로 거론되고 존폐에 대한 논란은 있으나 ...
- 여의도 비행장
여의도는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비행장으로 1958년 김포로 이전까지 국제공항으로 사용되었다.
마포종점 노래가 발표될 당시 1 968년에도 미공군 기지로 사용되며 군용기들의 이착륙이 활발했다.
그래서 비내리는 밤에 마포에서 건너다 보이는 여의도의 비행장 불빛이 쓸쓸하다고 표현 했다.
전차를 거둬낸 뒤의 마포종점 1970년
- 영등포 불빛
현재는 서울의 도심이 여러곳으로 분산되어 있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 명동이 핵심 상권이었고
그밖에 동대문, 마포, 청량리도 중요한 상권에 속했다.
영등포는 당시 각종 공장들이 밀집한 공업단지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곳
그래서 1960이후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구직자들이 몰려들던 인구밀집 지역이었다.
특히 마포는 이농한 빈곤층 들로 서민들에 애환이 서린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은방울자매
1962년 결성된 트로트 가수로 초창기의 멤버는 박애경, 김향미 였으나
1989년에 김향미가 탈퇴를 하고 오숙남이 영입되었다.
박애경씨는 2005년 사망을 했고 오숙남씨(71세)는 간간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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