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와 후손들 이야기 솔새김남식
소현세자(昭顯世子) 는 조선조 16대 인조(仁祖)의 장자로 태어 났다
1637년 남한산성에서 삼전도 굴욕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가족들 모두
청나라에 몰모로 잡혀 가 1645년 석방되어 고국으로 돌아 오나 반가움도 잠시
귀국 불과 3개월 후 병석에 누운지 4일만에 의문에 죽음을 맞이 하는데 그 당시 시신을 검증도 않고
서둘러 매장하게 한 인조의 행위와 소현세자 일가족에게 행한 여러 일을 보면 독살되었다는 추축이다.
8년간의 볼모생활에서 얻은 병독(病毒)이 귀국 이후 서서히 전신으로 퍼진데다
아버지의 냉대에 상심한 나머지 속병도 심해졌고 거기에다 의관들이 치료마저 잘못하여
명줄을 놓은게 아닌가 생각되며 그동안 정설처럼 알려져 온 소현세자의 사인은
인조와 그 일당에 의해 독살 당했다고 보는 까닭은 무엇 보다도 참으로 이상했던 시신의 상태였는데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 나와서 검은 멱목으로 절반 이상을 덮어 놓았는데
온통 검은 빛으로 약물에 중독돼 죽은 사람 같았다고 왕조실록에 기록이 되어 있다
인조의 총애를 받던 소용 조씨가 의관 이형익을 시켜 혼자 수시로 세자의 침전에 드나 들었는데
세자가 죽은 뒤 대소 신료들이 이형익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청했으나 인조는 그를 처벌하기는 커녕
오히려 감쌌으며 마지막으로 세자의 장례를 허술하게 해치운 것도독살을 뒷 받침 해주는
정황 증거라 할 수 있다 소현세자는 창경궁 환경전에서 1645년 5월 숨을 거둔다.
임금이나 세자의 시신을 담은 관에 쓰는 재궁(梓宮)이라는 표기 대신 일반 백성들과 같은
널[柩]을 쓰도록 했는가 하면무덤의 이름도 원(園)자 대신에 묘(墓)자를 쓰도록 했다.
또한 장자(長子)의 상(喪)에는 부모도 상복을 3년 동안 입어야 하지만
대신들이 의논한 끝에 상복을 일 년만 입도록 청했으나
인조는 한 달을 하루로 계산해 12일 동안만 상복을 입겠다고 했다가 일주일만에 벗었다고 한다.
인조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소현세자의 무덤을 방문한 적이 없다
당시 인조는 확실히 아들을 독살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며 무엇 보다도 인조는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까지 모진일을 하여 계속 불행을 만들어 주었다.
소현세자는 장남 경선군(慶善君) 차남 경완군(慶完君) 삼남 경안군(慶安君) 세 아들을 두었다
소현세자가 죽었을 때 큰 아들 석철 10살, 둘째 아들 석린 6살, 셋째 아들 석견 2살 이였다.
조선의 국법을 보면 세자가 죽은 뒤 왕위 계승 1위는 인조의 장손인 석철 경선군이었지만
신하들에 주청도 무시한 채 인조는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효종)을 세자로 삼는다.
이런 밑그림속에서 결국 인조나 효종 모두 정통성을 인식한듯
소현세자 일가를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 소현세자가 죽은지 1년도 안 되어서 세자빈 강씨를 인조 자신과 봉림대군이 아프자
소현세자의 아내가 저주를 내렸다고 하며 왕실 내실의 문제로 삼아
1646년에 민회빈에게 사약을 내리게 된다
인조는 소현세자 빈을 죽이고 나서 이제는 손자들 차례였다
자신의 손자이자 소현세자의 아들 3명을 냉혹하고도 잔인한 할아버지 손에 의해서
어머니도 없는 코 흘리게 어린 손자를 1647년 제주도로 귀양을 보낸다
그러나 이듬해 장남과 둘째가 제주도 풍토병에 연이여 차례로 죽자 인조는
막내 석견 경안군을 남해로 귀향지를 변경한다.
인조는 죽은 손자를 소현세자 곁에 장사 지내라고 하자 사관은 이렇게 실록에 썼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의 지친으로서 아무것도 모른 어린아이를 풍토병이 있는 제주도에 귀양 보내
결국 죽게 만들었으니 그 유골을 아버지 곁에 장사 지낸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참으로 슬픈일이다.”
막내 석견 경안군은 삼촌인 효종(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른 한참뒤 9년간의 귀양살이 끝에
1656년 석방이 되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장기수 석방으로 그때 나이 겨우 13살 이였다.
석견은 귀양지에서 돌아와 경안군이라는 봉작을 받고 청나라를 오고 가는 사신으로 활약 하지만
아버지 소현세자와 형들에 한도 풀지 못한채 임창군과 임성군 두 아들을 남기고
1665년 22살 나이에 병으로 일찍 죽고 만다.
그후 숙종 6년인 1679년 경안군의 두 아들은 역모에 휘말렸지만 숙종은 다행히 사사하지 않고
군부인 허씨와 함께 아버지 경안군이 귀양갔던 제주도로 두 아들을 귀양 보낸다.
숙종은 경안군의 6촌형으로 참으로 허무 할 뿐이다.
.
그리고 1684년 5년만에 석방이 되러서 돌아 오지만 어머니 군부인 허씨가 곧 병으로 죽는다.
차남 임성군은 큰아버지 경선군의 양자로 입적하여 적통을 이으려 했지만
또 다시 임성군도 병으로 후사없이 죽게 된다
다행히도 큰 아들 임창군에게는
밀풍군(密豊君)과 밀남군 (密南君)과 밀원.밀천.밀본,밀운 6남 5녀를 두었다.
그들은 소현세자의 하나 뿐인 혈육으로써 보위를 넘 보거나 비관하기 보다는 종친으로
몸가짐을 조심하였기에 정1품까지 받았으며 홀어머니에게 효를 다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여기서 소현세자 가문에 또 다시 불행이 연이어 찾아 오는데.....
영조 4년(1728년) 이인좌가 영조를 폐위시키고 밀풍군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는 소문과 함께 봉기했으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장남 밀풍군은 영조 5년 왕명에 의해서 결국 자결하게 된다.
소현세자의 증손자 밀풍군이 왕으로 추대됐다는 건 그 만큼 정통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밀풍군의 죽음으로 소현세자 파는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영조는 신하의 끝없는 주청에도 불구하고
밀풍군의 재산을 몰수 하지는 않았지만 후손들이 많이 죽었다고 전 한다.
이후 차남 밀남군(이감李境)이 경선군에게 입적하여 비록 세가 빈약하긴 했으나
오늘 날까지 소현세자(昭顯世子)파의 적통을 이어 오고 있다.
소현세자와 그 일가의 주요 일지
- 1637년 병자호란 - 청나라 볼모로 감
- 1645년 8년간 청나라에 있다 귀국함
- 1645년 귀국 3개월 만에 사망(34세)
- 1646년 세자빈 강씨 사사
- 1647년 세 아들 제주도로 귀양(장남 석철 : 12세, 둘째 석린 : 8세, 셋째 석견 : 4세)
- 1648년 큰아들 석철 13세로 귀양지에서 사망, 둘째 아들 석린 9세로 귀양지에서 사망
- 1649년 셋째 아들 석견 제주에서 남해로 귀양지 옮김
- 1649년 5월 효종(소현세자 동생, 봉림대군) 즉위
- 1656년 석견(경안군) 석방
- 1659년 5월 현종 즉위
- 1665년 경안군 22세로 사망
- 1674년 8월 숙종 즉위
- 1679년 경안군의 두 아들(장남 임창군(臨昌君), 차남 임성군(臨城君) 및
경안군 부인 허씨 역모로 연루되 제주로 귀양감
- 1684년 임창군, 임성군, 어머니 경안군 부인 허씨 석방후 병으로 사망
- 1720년 6월 경종(장희빈 아들) 즉위
- 1724년 8월 영조 즉위
-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발생. 이인좌가 임창군의 큰아들 밀풍군(密豊君)을
王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음.
- 1728년 밀풍군 왕명에 의해서 자결
- 1864년(고종 1년) 밀풍군 복권
소현세자와 그 일가의 족보
인조 - ① 소현세자 - ① 경선군 (1636-1648) 귀향지에서 병으로 후사없이 죽음
(1612-1645) ② 경완군 (1640-1648) 귀향지에서 병으로 후사없이 죽음
③ 경안군 (1644-1665) - >
- ① 임창군 (1663-1729)->① 밀풍군 (1698-1729)이인좌때 역신으로자결
- ② 밀남군 (1689-1750)
- ② 임성군 (1665-1690) 백부경선군에게 입적했으나 후사없이죽음
- ② 봉림대군 - 제17대 효종
소현세자와 그의 가족들의 생애가 너무 기구하여 드라마에서 여러번 방영이 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양수리 부근에 있는 어느 한 공원묘지에는 소현세자 후손들 가족묘가 있다.
그곳에 가면 그들의 사연을 줄줄이 엮어서 추모비를 세웠다.
새로운 조선을 꿈꾸었던 소현세자 할아버님 민회빈 할머님을 기리며..........라고
새겨진 글에서 우리는 그냥 마음이 찡할 뿐이다.
임금은 하늘이 점지 한다 하는데 조선역사에서 임금이 될 뻔 했던 왕자가 여러명 있었지만
자신의 뒤를 받처 줄 사람이 없어서 왕을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王이 되기는 힘들다는 것으로 소현세자에게는 그만한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고양시 서삼릉에는 소현세자의 묘 소경원과 유배지에서 죽은 경선군 경완군 두아들이 함께 있다.
그리고 시아버지 인조의 사약을 받고 죽은 민회빈묘 영회원은 광명시 구름산 기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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