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영창대군묘

시인김남식 2010. 8. 18. 17:32

 

 

영창대군묘[永昌大君墓]

 

주소지 ;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 산 24-5

 

 

중부고속도로 일죽IC 백암면에서 이천시 설성면으로 새로난 318번 지방도 일죽IC에서 10km 지점에 있다

318번도로를 7키로 따라 가면 '이천국립현충원'이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위쪽 길은 중부고속도로

 

묘에는 누군가 그의 죽음에 애환 관계 있는지 조화 한송이가 있었다 

 

영창대군(1606~1614)은

조선의 14대 왕 선조의 14명의 왕자 중 막내이며 정비인 인목왕후에서 태어난 유일한 적자로

이복형인 광해군이 왕에 오르자, 역모죄로 모함을 받아 평민으로 강등된 후 강화도로 유배되어 사사되었다

 

 

그후 12년이 지난 1623년 인조반정으로 복직되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둘러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지만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세자를 바꾸려는

생각을 하자만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대신들에게 당시 세살이었던 영창대군을

달라는 유교(遺敎)를 내려 뒷일을 부탁한다.

 

그러나 1613년 (광해군 5) 소양강을 무대로 시주(詩酒)를 즐기던

서양갑(徐羊甲)·박응서(朴應犀) 등 7명의 서출들이 역모를 꾸몄다는 일명  ‘7서의 옥’ 이 일어 난다.

이이첨등은 그들이 영창대군을 옹립하고 영창의 외조부 김제남도 관계한 것으로 진술을 유도하고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안치하게 지만 광해군에게 끊임없이  

형제의 의를 따지는 전은설(全恩說)과 여덟 살밖에 안된 ‘유자’ 라는 이유로 상소에 혼선이 생기게된다.

 

 

하지만 대북파의 계속된 요구로 이듬해 이이첨 등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鄭沆)에 의해 살해 된다.

『광해군일기』에 의하면 영창대군을 굶겨서 죽게 했거나 온돌을 뜨겁게 달구어 증살(蒸殺)했다고 으나

『인조실록』에 의하면 광해군의 밀명을 받은 별장(別將) 이정표(李廷彪)가 음식물에 잿물을 넣어

영창대군을 죽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그 죽음에 진의는 아직 불분명하다.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한 쌍씩 세워져 있습니다.

 

 

어린나이에 죽임을 당해서인지 동자석이 애처롭게 서 있었다.

.

 

영창대군 묘는 원래 남한산성 아래 있었는데 성남시 개발 계획에 따라 1971년 8월 현위치로 이장 되었다.

 

 

 

 

경기도기념물 제 75호 안내판은 온통 새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로 가득했다.

 

 

영창대군 묘소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신라시대 쌓았다는 죽주산성에 올랐다.

다시 천주교 죽산성지에 들려서 참배를 하고 서일농산에 들려서 청국장으로 맞난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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