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려조선

인조반정의 공훈 이서 장군

시인김남식 2010. 9. 30. 19:38
이서 李曙  1580(선조 13)~ 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인숙(寅叔), 호는 월봉(月峰).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0대손이며,

아버지는 목사(牧使) 경록(慶祿)이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여 사용(司勇)·진도 군수를 지냈다.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여 중형을 받을 뻔했으나 화를 면했으며

그뒤 장단부사 겸 경기 방어사를 지냈다.

1623년 장단부사로 있을 때 병력 700명을 동원, 능양군(綾陽君:뒤의 인조)에게 합류하여

인조반정을 이루는 데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으로 완풍군(完豊君)에 봉해졌으며, 호조판서가 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 부원수로서 반란군을 추격하다 멈춘 죄로 파직되었다.

그뒤 총융사로 남한산성을 수축하고 삼혈총(三穴銃)과 조총(鳥銃)을 제조했으며,

이어 형조판서·공조판서·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1636년 병조판서로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다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가 지키다 이듬해 성 안에서 죽었다.

그의 저서인 〈화포식언해 火砲式諺解〉는 각종의 총을 쏘는 방법과 화약 굽는 방법을 기술한 것으로

당시에 사용된 화약병기의 종류와 용약법(用藥法)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그밖에 말의 여러 가지 병에 대해 기록한 〈마경언해 馬經諺解〉가 있다.

남한산성의 온조왕(溫祚王) 사당과 인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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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인 파성군 이철동의 묘가 보이고, 파성군 묘역으로 가는 길목에 아버지 이경록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 우측 묘역 상단에 조부 이간, 하단에 이경록의 묘가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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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묘


아버지 이경록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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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록은 선조 9년(1576) 무과에 급제하였고

선조 25년(1592) 제주목사 재임 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병 300명을 뽑아 바다건너 선조를

호위하겠다는 장계를 올려 충신으로 칭송받았고

선조 31년(1598) 춘위장(春衛將)으로 사직하였다. 아들의 이서의 공훈으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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