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산행후기

천장산

시인김남식 2014. 3. 11. 13:40

천장산(141m) 솔새김남식 

 

천장산은 동대문구와 성북구를 구분시키는 경계선 상의 산이다.

정상에서 남향으로 경희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이

서향으로는 국립산림과학원. 동남 방향은 옛 안기부의 터와 조선 제20대왕 경종과 그의 계비 능이

자리잡은 의릉이고. 그 옆은 한국종합 예술학교 켐퍼스가 자리 잡았다.


하늘이 숨겨 놓은 곳이라는 이름을 가진 천장산은

6개기관이 서로 모두 나누어 갖고 정작 지역 시민이 사용 할 수 있는 천장산 지번은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산1-5 번지이다

그래서 각 소유자 끼리만의 소유권을 위해서 철조망이 여러곳 드리워져 있다

 

천장산(141m) 산책로 걷기

상월곡역(한국과학기술원) 4번 출구를 나와서 월곡2동 주민센터 뒷길로 접어 들면

국립산림과학원 후문이다

과학자아파트를 지나서 이곳에서 부터 성북구민 천장산 산책로가 시작 된다

 

 

 

천장산(141m), 걷기에는

의릉 산책로를 걷는데 약 1시간 정도이고

그리고 지역민이 운동 할수 있는 천장산 산책로 걷는데 1시간이 쇼요된다

두 코스를 모두 걸으려면 2시간 소요된다

 

지도에서 진한색은 천장산 外산책로이고 흐린색 길은 의릉安 산책로이다

 

 

길은 거의 나무데크 계단이거나 시멘트계단 길이라서 좀 피로감이 있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조망이 멎있다

도봉산과 북한산 수락산과 불암산 아차산 용마산이 보인다

 

 

 

 

철책 안쪽은 홍릉 수목원 담장이다

 

 

 

 

의릉 내부에  中情에서 감시탑을 썼던 곳에 제일 운치있는 전망대가 있다

 

천장산은 1962년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시민들 입산이 통제돼었고 

의릉은 1996년 5월부터 개방됐었다고 한다 

 

 

 

 

 

 

 

 

 

 

북한산 방향의 파노라마 전경

 

 

천장산 산책로와 의릉 산책로가 철망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지만 연결 되지 않아서 의릉을 별도 들어가야 한다 .

 

운동 삼아서 걷기 운동을하는 사람들이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다.


 

조선 20대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로 왕이 된 다음해

이복 동생 영조를 세자로 정할 만큼 허약했으며 자손도 없었다 

경종은 왕이 되고 4년후 37세로 사망. 계비 선의왕후 어씨 는 26세로 사망하여 이곳에 안장 되었다

->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 심씨는 33세 사망하여 동구릉 혜릉에 안장되었다  

 

의릉은 경종과 그의 계비인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 있는 곳이다.

경종은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어렵게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탓에 겨우 4년여 왕좌를 지키다가 36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장희빈이 사약을 마시면서까지 지켜낸 왕권은 그렇듯 허망하게 사라졌다.

선의왕후 역시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옛날 중앙정보부 강당 및 회의실로 쓰던 건물. 왕능 안에 이런 건물을 짓고 

역사를 간직해서인지 능역 안에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그나마 능 뒤의 나지막한 산 위로 산책로가 걸쳐져 있어 동네 주민들의 왕래가 잦은 편이다.


능의 구성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다. 의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이 앞뒤로 나란히 배치한 동원상하릉의 형식으로, 곡장을 두른 위의 봉분이 경종의 능, 곡장을 두르지 않은 아래의 봉분이 선의왕후의 능이다. 이러한 형식은 능혈의 폭이 좁아 왕성한 생기가 흐르는 정혈(正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풍수지리적인 이유이다.
능침은 두 봉분 모두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장명등, 혼유석, 석양, 석호, 석마, 문무석인 등을 배치하였다. 경종의 능침에 배치된 망주석 세호는 왼쪽은 위를 향해 올라가있고 오른쪽은 아래를 향해 내려가 있으나, 선의왕후의 능침은 반대로 조각되어 있다. 특히 경종의 능침 무석인의 뒷면에는 짐승 가죽을 나타내기 위해 꼬리가 말린 것을 조각하였고, 선의왕후의 능침 석호는 꼬리가 등 뒤로 올라가게 하는 등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능의 역사

1724년(경종 4)에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 양주 중랑포 천장산 언덕에 능을 먼저 조성하였다. 그 후 1730년(영조 6)에 선의왕후 어씨가 세상을 떠나자, 의릉 동강 하혈(下穴)에 능을 조성하였다. 의릉은 1960년대 초 당시의 중앙정보부가 능역 내에 있어서 일반인에게는 철저히 봉쇄된 구역이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돌다리를 놓는 등 훼손이 심하였다. 이 후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뀐 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1996년에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되었고, 2003년 12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외래수종 제거, 전통수종 식재, 인공연못 성토, 금천교 복원 등 기초적인 의릉 능제복원 정비공사를 마쳤다.

경종(景宗) 이야기

경종(재세 : 1688년 음력 10월 27일(28일) ~ 1724년 음력 8월 25일, 재위 : 1720년 음력 6월 13일 ~ 1724년 음력 8월 25일)은 숙종과 옥산부대빈(희빈) 장씨의 아들로 1688년(숙종 14)에 창덕궁 취선당에서 태어났다. 경종이 태어남으로서 서인과 남인의 대립인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정권이 교체(남인 정권)되기도 하였다. 1689년(숙종 15)에 원자로 책봉된 후 1690년(숙종 16)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701년(숙종 27)에는 무고의 옥(인현왕후 저주 사건)으로 어머니 장씨의 죽음을 목격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717년(숙종 43)에 숙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기도 하였으며, 1720년에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재위 4년 뒤인 1724년(경종 4)에 창경궁 환취정에서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경종 재위 시절 1721년(경종 1)과 1722년(경종 2)에 두 해에 걸쳐 연잉군(영조)의 왕세제 책봉을 둘러싸고 큰 옥사가 일어났는데 이를 신축임인옥사(신임옥사)라고 한다. 숙종 말기부터 노론과 소론은 치열하게 대립하였던 시기로, 경종 즉위 후 당시 노론의 4대신인 영의정 김창집, 좌의정 이건명, 영중추부사 이이명, 판중추부사 조태채가 중심이 되어 경종의 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하자는 주장을 하였다. 소론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종은 1721년(경종 1)에 이를 허락하였다. 그러자 노론 측은 한 발 더 나아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종을 두고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격화되었고, 결국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 4대신들은 파직 후 유배를 당하였다.(신축옥사) 그 뒤에도 소론 강경파들은 노론의 숙청을 요구하였다. 1722년(경종 2)에는 노론측이 세자 시절에 경종을 시해하려고 했다는 고변을 기점으로 노론 4대신을 사사하며 수백 명의 노론파를 제거하게 되었다.(임인옥사) 그러나 경종이 즉위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조정에는 또 한 차례의 숙청의 바람이 불게 된다.
*경종 탄생일 : 『숙종실록』에는 10월 27일(숙종실록 19권, 14년 10월 27일)로, 지문(誌文)과 행장(行狀), 능표석에는 10월 28일로 기록되어 있음.

선의왕후(宣懿王后) 이야기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재세 : 1705년 음력 10월 29일 ~ 1730년 음력 6월 29일)는 본관이 함종인 함원부원군 어유구와 완릉부부인 이씨의 딸로 1705년(숙종 31)에 숭교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1718년(숙종 44)에 왕세자빈 심씨(단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즉위하자 경순왕대비가 되었으며, 1730년(영조 6)에 경덕궁 어조당에서 26세로 세상을 떠났다.
선의왕후가 중전 재임시절 경종이 후사가 없자 종친 중에서 어린 아이를 입양하여 후사를 정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궁중의 일각에서는 소현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의 아들 관석을 입양하려는 움직임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1721년(경종 1)에 경종의 이복 동생인 연잉군(영조)이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경종이 아무리 병약하다고는 하나 즉위 1년 만에 왕세제를 책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노론은 소론과의 알력 다툼에서 살아남기 위해 왕세제 책봉 뿐 아니라 대리청청까지 주장하였고, 계속적인 정권싸움과 숙청의 바람을 몰고 왔다. 이러한 어지러운 정국의 한 가운데에, 결국 선의왕후의 양자 입양은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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