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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한 장 붙여서

시인김남식 2014. 2. 8. 11:39

 


 

        우표 한 장 붙여서 천양희

         

         

        꽃 필때 널 보내고도 나는 살아남아

        창 모서리에 든 봄볕을 따다가

        우표 한 장 붙였다

        길을 가다가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부치고 돌아서려고

         

        내가 나인 것이 너무 무거워서

        어제는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

        내 침묵이 움직이지 않는 네 슬픔 같아

        떨어진 후박잎을 우산처럼 쓰고

        빗속을 지나간다 저 빗소리로

        세상은 여위어가고 미움도 늙어

        허리가 굽었다.

         

        꽃 질때 널 잃고도 나는 살아 남아

        은사시나무 잎사귀처럼 가늘게 떨면서

        쓸쓸함이 다른 쓸쓸함을 알아볼 때까지

        헐한 내 저녁이 백년처럼 길었다

        오늘은 누가 내 속에서 찌륵찌륵 울고 있다.

         

        마음이 궁벽해서 새벽을 불렀으나

        새벽이 새벽이 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럴때 사랑은 만인의 눈을 뜨게 한

        한 사람의 눈먼 자 를 생각한다

        누가 다른 사람 나만큼 사랑한 적 있나

        누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나 말해봐라

        우표 한 장 붙여서 부친 적 있나

        -『시 사랑에 빠지다』2009, 현대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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