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가수 배호묘

시인김남식 2013. 10. 10. 11:05

 

전설적인 가수 배호의 묘   솔새김남식


배호 (裵湖,1942.4.24 - 1971.11.7) 본명 배만금, 예명  배호 아명 배신웅
출생지 : 중국 산동성 제남시
주요작품: 『돌아가는 삼각지』『비내리는 명동거리』『안개 낀 장충단공원』『안개속으로 가버린사랑』
배호가 죽은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랑받는 그의 노래는 1960년대를 살아 온
우리들에겐
아련한 그 시절 추억이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설적인 가수 배호의 묘를 어느날 오랫만에 찾아 갔다.
전설적인 가수 배호묘는 경기 양주군 장흥면 신세계 공원묘지에 있다 



1942.4.24. 중국 산동성 제남시 경7로 위15호에서 부친 독립투사 배국민과
모친 김금순 사이에
1남 1녀중 장남으로 출생, 해방후인 1946년 4월 경부터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81번지에서 생활했다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서울 창신 초등학교를 다녔다.6.25때 부산 피난후
서울 수복시 서울로 왔으며 1955년 서울 영창학교(성동중 전신)1학년 1학기 마치고
부친 별세로 부산으로 내려가 이모의 모자원에서 생활하면서 부산 삼성중학교 2학년 1학기 수료했다



1956년 8월, 음악을 하기 위해 혼자 상경하여 막내 외삼촌 김광빈를 통해 드럼을 배우기 시작
음악에 입문 
1960년 부평 미군부대 클럽 등에서 2년간 악단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했다.
1963년 「김광빈 악단」및 「김인배 악단」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 부르기 시작
김광빈 작편곡의 굳바이 등 최초로 녹음하여 가수 데뷔 음반 최초 발표, 예명을 裵湖로 지었다.



앞쪽이 배호 묘이고 뒷쪽이 어머니 묘이다



1964년 낙원동 프린스 카바레에서 밴드 마스터로 '배호와 그 악단' 이란 이름으로
12인조의 풀 밴드 구성
노래하는 가수로 장안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같은해 반야월 작사 김광빈 작곡의 [두메산골]과 정성수 작사,
김인배 작곡의 [황금의 눈] 등 발표했다.
1966년 신장염 발병으로 투병 생활 시작 [누가 울어, 안개속으로 가 버린 사랑] 등 10여곡 병상 취임 했다



1966년 가을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청량리 단칸방에서 투병생활을 하던중 작곡가 배상태를 만나

그의 대표곡이자 최대 히트곡인 [돌아가는 삼각지]를 취입하여 1967년 4월에 음반을 발표
특색있는 음색과 신기의 호소력으로 전국 인기 챠트를 휩쓸면서 정상의 인기 가수로 부상했다



이어서 발표된 최치수작사, 배상태 작곡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연속 히트함으로서 인기가수로
확고하여 
그해 부터 각 매스컴 주최 행사에서 수상 릴레이가 시작되고 1968년 MBC 10대 가수상을 탔다.



인기 정상과 더불어 몸이 회복되면서 왕성한 가수 활동을 시작하여 [안녕] 등 주옥 같은 곡을 발표하고 

생애 최고로 활발한 활동과 노래를 발표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내 생애 최고의 한 해로 말할 정도였다.
전국적인 인기를 차지 하면서 가을부터 TBC, KBS, MBC 등 주요 가요 가수상을 휩쓸었다.



1969년 1월 [한목숨 다바쳐][당신] 등의 명곡을 취입하고 공개방송, 업소출연, 지방공연등
무리한 활동으로 신장염 재발로 신한의원 입원중 12월 MBC TV 10대 가수상 수상시에 동료가수
이상렬등에 업혀서
출연하자 청중들을 숙연하게 한 가운데 청중들로 부터 쾌유를 비는
감격스러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1970년 5월 부터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서울 시내 극장 무대를 시작으로 다시 공연 활동을 시작.
백영호 작곡 [비내리는 명동] 등 많은 곡을 취입하였고,
연말 MBC TV 10대 가수상 수상에는 건강하고 밝은 표정으로 트로피를 들고 관중을 향해 인사했으나
곧 바로 병세의 악화로 세브란스 병원에 다시 입원 한 채 그해 여름 그의 마지막 곡인
 [0시의 이별] [마지막 잎새] 를 취입하였다.




그는 죽어도 무대에서 쓰러지겠다는 초인적인 의지로 극장, 업소 등의 무대에 섰으며
어떤 날은 음악만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그대로 무대에서 서 있기도 했다고 한다.



1971년 10월 20일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진행 이종환) 출연후 감기 증세와 신장염 악화 그리고  

세브란스 병원 입원 이후 혼수 상태로 사경을 헤메다가 11월 7일 더 이상 가망이 없자 퇴원해서 미아리 집으로
가던 중 완전 의식 불명으로 그날 저녁 9시에 자택에서 29살 나이로 운명하였다



1971년 11월 11일 예총회관(현 세종문화회관) 광장에서 가수 협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

경기도 장흥소재 신세계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배호를 추모하는 모임은 그가 떠난지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를 추모하는 열기는 끊이지 않아서

그를 기억하는 추모카페에서 노래비를 세웠다



어머니 김금순묘와 돌 무덤은 배호의 누이 동생 배명신묘




배호의 노래비 건립내역

2001.11.13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 삼각지 교차로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건립
2002.04.21 경기 양주군 장흥면 신세계공원묘지 배호 유택에 <두메산골> 노래비 건립
2003.06.22 경주시 현곡면 소재에 <마지막 잎새> 노래비 건립
2003.07.12 강릉시 주문진 소재에 <파도> 노래비    




신세계 공원을 진입해서 산중턱까지 올라와 보이는 두 그루의 나무를 찾아 바로 내려가면 배호의 묘이다




배호의 묘에서 바라보면 북한산과 송추 오봉산이 멀리에서 아주 잘 보이는 명당이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노래는 남아 가슴을 적시는 요절 가수 배호(裵湖)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간절한 호소력의 낮은 톤은 젖은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안녕. 누가울어.두메산골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을 감동하며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대를 우리는 열심히 살아왔다



용산구 삼각지역 13번 출구에 있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배호의 팬크럽에서 만들어 놓은 삼각지역 안에 있는 배호의 흉상과 돌아가는삼각지 유래 안내판 




지금도 해마다 4월이면 배호를 추모하고 있다






2017년 연신내역에서 있었던 배호추모음악회 -  2021년이 추모 5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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