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장군의 아들 김두한

시인김남식 2013. 10. 17. 19:56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묘   솔새김남식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 (金斗漢, 1918년 5월 15일 ~ 1972년 11월 21일)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의송(義松), 별칭은 잇폰(일본어 : いっぽん)이며 1953년 육군상사로 제대

대한민국 조직 폭력배이며,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 말 약관의 나이에 경성의 유력 조직폭력집단의 지도자로 군림하였으며

일설에는 민족말살 정책에 거부하는 등 일본 제국에 저항하였다고 한다.

 

해방기에서는 잠시 조선공산당 산하의 조선청년전위대 대장으로 있었으나 부친 김좌진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후 이를 탈퇴하고 우익으로 전향하여 반탁운동 등 좌우대립에서 투쟁하였다.

한국전쟁에는 대한 학도의용군 등 전선에 참전하였고 노동운동에도 투신하여 노동운동가로서도

활동하였으며 제3대,6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이승만, 박정희 정권 독재를 비판하였다.

 

수원시 신민당 후보로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전깃불 관련 발언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찬양했다는 혐의로 반공법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후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해 오다 1972년 11월 19일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 되어서

11월 21일 오전 사망하였다.

 

6대 국회의원에 당선 직후 한국독립당 내란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한국비료 주식회사가

사카린을 밀수하여 국회에서 삼성 이병철과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며 국무위원에게

오물을 투척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두한의 활약상은 영화나 드라마로 우리 곁에 이미 친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묘는 이름과는 달리 좀 초라하기 그지없다고나 할까?

 

 묘비에는 국회의원인 딸 김을동과 사위 송정웅 그리고 배다른 형제 경민 현성 영채의 이름이 있다.

김두한은 모두 4명의 처에서 4남 2녀를 두었다 

 

묘역은 상당히 좁아서 장명등은 좌측에 세웠으며 봉분 앞이 좁아서 겨우 절을 할 정도의 작은 공간이며

뒤는 낭떠러지이다.


조폭이었던 그의 명성과는 달리 묘는 손보는 이가 없는 것 처럼 배호묘 보다는 좀 쓸쓸해 보였다

 


김두한선생 묘와 가수 배호 묘는 신세계공원묘지를 진입해서 우측으로 언덕 上段까지 올라가야 한다.

 

길 커브 지점에서 약 50미터 거리의 수십 계단을 구불구불 힘들게 올라가야 김두한 묘가 있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 묘 아버지 곁으로 이전 무산 2012/03/06 (보령=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김두한 묘를 아버지 곁으로 이전하려던 충남 보령시의 계획이 무산됐다.
6일 보령시에 따르면 김을동 국회의원이 경기도 양주시 장흥 신세계공원에 안장된 아버지(김두한)의 묘를

보령에 있는 할아버지(김좌진 장군) 묘역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해 충남도에 문화재 현상변경을 신청했다.

만주에 있던 김좌진 장군 묘는 1957년 선산인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로 이전되고 나서

1989년 '충남도 기념물 제73호'로 지정돼 시가 관리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묘역은 2만5천344㎡ 규모로 앞쪽에는 50여대가 주차할 수 있는 대형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


시는 현상변경 허가가 나오는대로 장군의 묘와 주차장 사이에 김두한의 묘를 조성하면 그 의미가

배가 돼 관광객을 더많이 끌어들일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로 구성된 충남도 문화재위원회는 최근 열린 회의에서 "김좌진 장군 묘역은

애국지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문화재로 지정했기 때문에 성격이 다른 인물을 문화재보호구역에

옮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보령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의 한 관계자는 "아쉽기는 하지만 위원회의 결정사항이라서 따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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