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려조선

여주 영릉

시인김남식 2011. 8. 7. 20:56

여주 영릉 솔새김남식

 

 

세종 (世宗) 휘(諱) 도(孕). 자 원정(元正). 시호 장헌(莊憲).

태종의 셋째 아들로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 소생.

비(妃)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

 

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에 봉군, 1413년(태종 13)에 대군이 되고 1418년에 왕세자에 책봉,

동년 8월에 22세의 나이로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원래 태종의 뒤를 이을

왕세자는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었으나.

개와 매에 관계된 사건을 비롯한 세자의 일련의 행동과 일들이 태종의 선위에 대한 마음을 동요시켰으며, 또한 태종은 자신이 애써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왕권을 이어받아 훌륭한 정치를 펴기에

양녕대군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즉, 태종에게는 왕후 민씨 소생으로 양녕·효령(孝寧)·충녕·성녕(誠寧) 등 네 명의 대군이 있었다.

즉위 후 정치 ·경제 ·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아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창달과 조선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태종이 죽고 재위 4년 만에 전권을 행사하게 된 세종은 부왕이 만들어 놓은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마음껏 펼치기 시작하여 태종이 잡아 놓은 국가의 골격을 완성해 나가는 방법으로

세종이 택한 방법은 매우 학구적이다. 선현의 지혜를 신뢰했던 세종은 우선 유학의 경전과 사서를 뒤져 이상적인 제도를 연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골격만 갖춰진 제도를 세부 사항까지 규정해 나갔다

 

 

 

세종은 조선시대 왕 가운데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종은 집현전의 연구기능을 확대해,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 등 당대의 수재들에게 연구를 분담해서 윤리∙농업∙지리∙측량∙수학∙약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편찬하고,

관료∙조세∙재정∙형법∙군수∙교통 등에 대한 제도들을 새로 정비했다.

이때 정해진 규정들은 나중에 조선에서 시행된 모든 제도의 기본이 되었다.

세종은 과학기술과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서 천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서운관을 설치했으며  혼천의, 앙부일구, 자격루를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박연을 등용해 아악을 정리하고 맹사성을 통해 향악을 뒤받침하여 조선에 적합한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세종시대를 빛낸 사람들>

1) 희대의 명재상 : 강직한 황희(1363-1452)와 어진 맹사성(1360-1438)의 조화

2) 천민출신, 과학 혁명의 주창자 : 장영실

3) 음악의 귀재 : 박연

4) '농사직설'의 집필자 : 정초

5) 대마도를 정벌한 이종무, 육진을 개척한 김종서

 

 

 

 

영릉(英陵)은 처음부터 여주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1446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헌릉(태종의 묘) 서쪽에 조성 하였고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했다.
조선조 최초로 합장릉인 동분이실(同墳異室)로 능을 축조 그해 7월 17일 왕비를 동실(東室)에 안장하고

서실(西室)은 자신의 수릉(壽陵·죽기전 미리 만들어 놓는 무덤)으로 석실 가운데 칸막이에는

직경 50㎝정도 크기의 구멍을 뚫어 왕과 왕비의 혼령이 서로 왕래하도록 배려했다.

 

 

이후 세조때 불길한 국사로 인하여 영릉이 불길하다는 논의가 대두 되었으나 반대하여 옮기지 못하다가

세종이 죽은지 19년 되는 예종 1년(1469)에 현 위치로 천장했다. 

1450년 아버지 태종옆에 묻혔다가 1468년 여주로 천장하기 전까지 불과 19년간 벌어진 불행했던 역사를 보면

천장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 할 만하다.

문종 : 즉위 2년 3개월만에 38세로 승하

단종 :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았기고 16세 나이에 사사.

안평대군, 금성대군 : 형 세조에 의하여 사사됨.

세조 : 심한 피부병으로 평생 시달림.

세조의 장자 의경세자 : 19세에 급사함

예종 : 즉위 1개월만에 19세로 승하

예종의 장자 인성대군 : 3세에 사망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1395-1446) 는 세종과의 사이에 8남 2녀 10명의 자녀를 두어 조선왕조 역대 왕비 중 가장 많은 아이를 낳았으며  문종과 세조 왕을 2명 배출한 어머니이다. 
청천 부원군 안효공 심온(沈溫)의 장녀이며,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태종8년(1408) 당시 충녕대군이었던 세종과 혼례를 올리고 태종 18년(1418)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敬嬪)이 되었고 그해 음력 9월 충녕대군이 태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자 중궁(中宮)이 되어 공비(恭妃)라는

책봉명을 받았지만 그해 외척의 발호를 경계한 시아버지 태종에 의하여 시어머니 원경왕후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심온과 그의 아우 심정이 처형당하였고 소헌왕후의 어머니와 친족들은 관비가 되었다.

(이방원은 이만큼 철저한사람이었다) 소헌왕후에 대해서도 폐비(廢妃) 논의가 있었으나 내조의 공이 크고

이미 왕자를 3명이나 출산하였기에 먄제되었다

 

 

 

 

 

 

 

세종대왕의 업적

 1. 훈민정음(한글) 1446년 9월 3일(양력 10월 9일)반포되었음

 2. 최초의 공중 해시계 앙부일구(보물 845호)

 3. 측우기 (세계 최초의 우량계)

 4. 물시계 (자격루, 옥루 등)

 5. 일성정시의(별이 자리를 옮기는데 따라서 밤 시각도 알게 만든 시계)

 6. 4군6진 개척,

 7. 군사제도 개편,

 8. 조선통보 주조

 9. 박연에게 아악을 정리하게 하였으며, 악기를 개조하였고, 음악을 발달시켰음

10. 구리로 된 『  갑인자 』라는 활자를 주조하게 하여 인쇄술 보급

11.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농업에 관한책 '농사직설' 편찬

12. 우리 나라 최초의 지리책 '동국여지승람 팔도지리지' 편찬

13. 1445년 '치평요람'완성

14. 훈민정음으로 '용비어천가'를 지었음

15.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16. 억울한 일에 대해 하소연 할때 치게 하던 신문고 설치

17. 나라 법전인 경국대전 편찬 세금 제도 개선

18.도덕서인 삼강행실도 편찬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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