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일반상식

국가상징의 개념

시인김남식 2012. 6. 29. 19:30

 

국가 상징의 개념


국가상징이란 국제사회에 한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자기 나라를 잘 알릴 수 있는 내용을 그림·문자도형 등으로 나타낸 공식적인 징표로서 국민적 자긍심의 상징이 라 할 수 있다.
국가상징은 어느 한 순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오랜 세월동안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 나라의 역사·문화·사상이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국가상징은 연령·신분의 고하, 빈부의 격차에 불구하고 그 나라 국민이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누구나 공감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영속적인 가치를 갖는다.

  국가상징의 기능


국가상징은 국제사회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표면적 기능 외에도 사회적·도덕적 혼란을 예 방하고 국민통합을 유도하는 중요한 내면적 기능을 갖고 있다.
국가상징이 추구하는 목표인 국민통합은 강제적 통합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여 화합과 조화를 기초로 한 규범적 사회통합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의 도덕적 혼란을 방지하고 문화의 지속성을 보장함으로써 국가의 영속성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상징의 종류


세계의 각 나라마다 그 역사와 문화를 기초로 한 국기·국가·국화 등을 국가상징으로 정하여 대내적으로는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대외적으로는 나라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상징으로는 태극기(국기), 애국가(국가), 무궁화(국화), 국새(나라도장), 나라문장 등이 있다.


 

  태극기에 담긴 뜻


우리나라 국기(國旗)인 '태극기'(太極旗)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陰 : 파랑)과 양 (陽 :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네 모서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효(爻 : 음 --, 양 -)의 조합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가운데 건괘 (乾卦)는 우주 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괘(坤卦)는 땅을, 감괘(坎卦)는 물을, 이괘(離卦)는 불을 각각 상징한다.
이들 4괘는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즐겨 사용하던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태극기는 우주와 더불어 끝없이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韓民族)의 이상을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태극기에 담긴 이러한 정신과 뜻을 이어받아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이룩하고,

인류의 행복과 평화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태극기의 내력


세계 각국이 국기(國旗)를 제정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민족국가가 발달하면서 부터였다.
우리나라의 국기 제정은 1882년(고종 19년) 5월 22일에 체결된 조미수호 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조인식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청(淸)이 자기나라 국기인 용기(龍旗)를 약간 변형하여 사용 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 사용해 오던 태극 문양을 흰색 바탕에 빨강과 파랑으로 그려 넣은 '태극 도형기'(太極 圖形旗)를 임시 국기로 사용하였다.
그 후 국기 제정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 정부는 종전의 '태극 도형기'에 8괘(卦)를 첨가하여 '태극· 8괘 도안'의 기를 만들었다. 1882년 9월 박영효(朴泳孝)는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特命全權大臣) 겸 수신사(修信使)로 이 국기를 지니고 일본으로 가던 중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만을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 의 기를 만들어 바로 그 달 25일부터 사용하였다.
10월 3일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자, 고종은 다음해인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이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太極旗)를 국기(國旗)로 제정·공포하였다.
그러나 이 태극기는 구체적인 제작 방법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1942년 6월 29일 국기제작법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국기통일양식」 (國旗統一樣式)을 제정·공포하였으나 일반 국민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1949년 1월 「국 기시정위원회」(國旗是正委員會)를 구성하여 그 해 10월 15일에 오늘날의 「국기제작법」을 확정·발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태극기를 국기로 계속 사용해 오고 있는 것은 태극기가 지닌 이러한 민족사적 정통성을 이어받기 위함이다.

 

  애국가의 내력


애국가(愛國歌)는 말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를 뜻한다. 우리나라는 애국가에 달리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를 국가(國歌)로 사용하고 있다.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노래말과 곡조가 붙여져 나타난 것은 조선 말 개화기 이후부터이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을 계기로 여러 가지의 애국가 가사가 신문에 게재되기 시작했는데, 이 노래들을 어떤 곡조로 불렀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서구식 군악대를 조직해 1902년 '대한제국 애국가'라는 이름의 국가를 만들어 나라의 주요 행사에 사용했다는 기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오늘날 불리고 있는 애국가의 노래말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던 1907년을 전후하여 조국애와 충성심 그리고 자주 의식을 북돋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여러 선각자의 손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내용을 담게 되었는데, 이 노래말에 붙여진 곡조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었다. 해외에서 활동중이던 안익태(安益泰)는 애국가에 남의 나라 곡을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35년에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를 작곡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곡을 애국가로 채택해 사용했으나 이는 해외에서만 퍼져 나갔을 뿐, 국내에서는 광복 이후 정부 수립 무렵까지 여전히 스코틀랜드 민요에 맞춰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의 노래말과 함께 안익태가 작곡한 곡조의 애국가가 정부의 공식 행사에 사용되고 각급 학교의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해외에서도 이 애국가가 널리 전파되어 실질적인 국가(國歌)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우리 겨레와 운명을 같이해 온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선조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새롭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애국가 제창및 연주


- 애국가를 부를 때에는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애국가의 곡조에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르거나 곡조를 변경하여 불러서는 안된다.
- 주요 행사 등에서 애국가를 제창하는 경우에는 애국심과 국민적 단결심을 고취하는
  의미 에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4절까지 제창하여야 한다.
- 애국가는 모두 함께 부르는 경우에는 전주곡을 연주하지만, 약식 절차로 국민의례를 행
  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시 연주되는 애국가와 같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연주만 하는
  의전행사(외국에서 하는 경우 포함)나 시상식·공연 등에서는 전주곡을 연주해서는
  안된다.
- 애국가가 연주될 때에는 일어서서 경청하는 것이 예의이다.

나라꽃 무궁화의 내력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무궁화(無窮花)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옛 기록을 보면 우리 민족은 무궁화를 고조선(古朝鮮) 이전부터 하늘 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겼고, 신라(新羅)는 스스로를 '근화향'(槿花鄕 : 무궁화 나라)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중국(中國)에서도 우리나라를 오래 전부터 '무궁화가 피고 지는 군자의 나라'라고 칭송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무궁화는 조선말 개화기를 거치면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노래말이 애국가에 삽입된 이후 더욱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와 같은 무궁화에 대한 우리 민족의 한결 같은 사랑은 일제(日帝) 강점기에도 계속 되었고, 광복 후에 무궁화를 자연스럽게 나라꽃 [國花]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백여 품종의 무궁화가 자라고 있는데, 꽃 색깔에 따 라 단심계, 배달계, 아사달계 등으로 크게 분류된다. 정부는 이들 가운데서 꽃잎 중앙에 붉은 꽃심이 있는 단심계(丹心系) 홑꽃을 보급 품종으로 지정하였다.
무궁화는 7월 초순에서 10월 하순까지 매일 꽃을 피워 보통 한 그 루에 2천∼3천여 송이가 피며, 옮겨 심거나 꺾꽂이를 해도 잘 자라고 공해에도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 주기도 한다.
우리는 민족과 함께 영광과 수난을 같이해 온 나라꽃 무궁화를 더욱 사랑하고 잘 가꾸어

그 고귀한 정신을 길이 선양해야 할 것이다.


 

  무궁화에 대한 참고


산해경(山海經) : 4,200여년전 저술된 중국의 고문헌
  - 우리나라를 무궁화가 피고지는 군자의 나라로 지칭
구당서(舊唐書) : 당나라 정사(正史)
  -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 무궁화 나라)이라고 지칭
논어의 자한(子罕)편 : 사대성인인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책
  - 공자도 군자의 나라인 우리나라에 살기를 원함

 

  국새의 명칭


국새규정 (전문개정 99. 2. 1 대통령령제16096호)
국가를 상징하는 인장(印章)의 명칭은 새(璽), 보(寶), 어보(御寶), 어새(御璽), 옥새(玉璽), 국새(國璽)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어져 왔다.
여기서 새(璽), 보(寶)는 인장(印章)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어보(御寶), 어새(御璽)는 왕실의 인장을 의미하는 말이다.
옥새(玉璽)는 재질이 옥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대적 의미에서 국가를 상징하는 인장의 이름으로는 국새(國璽)라고 표기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국새의 의미


국새는 국사(國事)에 사용되는 관인으로서 나라의 중요문서에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국새의 날인은 국가 주요 행위의 최종적 완성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한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파수꾼의 역할을 담당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국권(國權)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온 우리의 국새는 오늘날에 와서는 과거의 절대왕권을 나타내던 불가침적 권위와 신성성(神聖性)은 퇴색되었다. 그러나 그 사용과 상징적 의미는 여전하다.
오늘날 국새의 사용은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의 지위에서 행하는 헌법공포문, 훈·포 장증, 5급 이상 공무원의 임명장, 외교사절의 신임장, 이 밖에 중요 외교문서 등에 날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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