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려조선

덕혜옹주 이구왕자 그리고 줄리아

시인김남식 2017. 12. 6. 09:14

덕혜옹주와 이구씨 그리고 줄리아    솔새김남식

                                                                   단절(斷絶)로 점철되는 조선왕실의 후기역사 (3.)

영국이나 일본처럼 우리나라에는 왕족이 없는 이유는

우리는 민주공화국이고 영국과 일본은 입헌군주국 때문도 있지만,

영국이나 일본은 왕족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황실도 무능하여 일본에 나라를 내 주었으니 존재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은 그냥 역사에 기재될 뿐이다. kns


 

 

1.덕혜옹주(德惠翁主, 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

 
그녀는 제국의 꽃으로 피어 망국의 한으로 영친왕과 함께 하루 하루를 외롭게 지낸다 간 비운의 공주이다
1910년 경술국치 뒤인 고종의 나이 환갑에 1912년 덕수궁에서 출생한 고종의 고명딸로서

5살때 즉조당에 유치원이 만들어질 정도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고 전하며

1921년 5월 4일(양력) 옹주1에 봉해지고 덕혜(德惠)라는 호(號)를 받았다
서울의 히노데(日出) 소학교를 거쳐 일본에 강제유학을 간 그녀는

1925년 도쿄 가쿠슈인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신경쇠약에 걸렸으며
1930년 모친 복녕당 양씨(귀인 양씨)의 죽음을 계기로 정신분열증(조발성치매증) 증세를
보였으나 이내 호전이 되자 일본 데이메이 황후의 명령으로 1931년 5월 8일 도쿄에서 쓰시마섬 도 주인

소다케유키와 강제 혼인하여 이듬해 8월 14일, 딸 마사에(正惠, 정혜)를 낳았으나

출산후 지병이 악화되어 1953년 남편에게 버림 받고 말았다



기울어져 가는 황실엔 덕혜옹주의 이복 오빠인 순종 임금마저 죽게되자 항의 할 길도 없었다 .
그녀는 1955년에는 딸 마사에마저 행방 불명이 되는 불행을 겪었고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서 1962년 1월 26일 귀국 할 때까지

정신장애로 도쿄 인근의 마쓰자와 병원에 입원하는 비참한 생활을 전전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일보와 매일신보에서 기자로 일한 김을한 기자에 의해 알려지면서
1962년에 귀국하여 이방자 일가 및 유모 변복동 여사와 함께 창덕궁에 기거하며

노환으로 고생하다가 1989년 4월 21일 수강재(壽康齋)에서 타계하였다.

현재 덕혜옹주의 묘는 아버지 고종 황제의 능인 홍릉(洪陵) 뒤에 있다.



한편 덕혜옹주는 1919년 일제에게 딸을 빼앗기기 싫었던 고종에 의해서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金章漢)과 약혼을 했었다
바로 덕혜옹주와 약혼설이 있던 김장한의 동생인 김을한 기자(작고)가 그 사실을

한국에 보도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고 하며 하마트면 덕혜옹주는 억울한 일생을 마칠뻔 했다

바로 결혼을 약속한 남자의 동생이 덕혜옹주를 구해준 셈이다

덕혜옹주의 일대기는 여러번 방송이 되었고 최근에 소설로도 출간이 되었다.

그리고 2016년 8월에 처음으로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이 된다  

영친왕에 대한 영화는 1960년대 제작되었었다


                                                                                                                     남양주 금곡 홍유릉에 있는 덕혜옹주묘  

가족 관계


 


 

영친왕이나 덕예옹주가 일제의 해방을 체험하고 그리고 고국에 돌아와서 일생을 마친 것은 그래도 퍽 다행한 일이다   






2. 구왕자 [황세손 구] 1931년 12월 29일 ~ 2005년 7월 16일



유일한 영왕의 자식이자 조선 왕실의 직계 황손이지만 후손없이 떠났다

이구는 영왕이 이왕직(조선국왕)에 책봉되었기 때문에 왕세자로 일컬어졌다.

사춘기에 불행한 부모의 운명과 혼혈(韓日) 왕자인 자신의 처지를 알고 충격을 받았으며

결국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17세에 미국으로 떠나 MIT 공과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그러다가 미국 여인 줄리아를 사랑하여 결혼하였다.


1963년 32세때 부모를 따라 조국에 왔고 한때 서울대 공대 및 연세대 공대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직계 황손으로써 의무를 강요하는 종친의 갈등과 공항 그리고 사업 실패의 좌절

단지 왕손이라는 이유로 이용하려는 주변의 시각들로 인하여 1979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1982년에는 종친회의 강요 및 이구씨의 개인사정에 의해 줄리아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일본여인 아리다랑 동거하면서, 도쿄에서 살면서 사업 활동을 하였다.

1984년 사기혐의로 고소, 89년 어머니 이방자 여사의 사망등의 파란을 겪기도 한다.
.

이방자여사가 타계한 뒤 수차례에 걸친 종친회의 귀국 종용을 거부하던 이씨는

환갑을 넘기면서 심경 변화를 보여 귀국을 결심했고,

결국 1996년 귀국후 전주이씨 대동 종약원에서는 종친회장 자리를 이구씨에게 기증하였고,

부영주택 이중근 회장이 마련해 준 장충동 호텔 영빈관에서 생활하며

왕실 제사인 종묘대제등의 초헌관 참여 종친회 사무를 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2005년 도쿄 프린스호텔에서 숨을 거두자 시신을 한국으로 운구되어

창덕궁에서 열결식을 치루고 홍유릉 영 懷仁園에 2005년 7월에 안장되었다



영친과과 덕혜옹주는 국가가 온전지 못하여 기우는 조선에서

일본에 강제로 볼모로 잡혀가 자기 뜻대로 인생을 살지 못하고 비운의 일생을 마친

조선국 마지막 왕자와 공주이다.

이구씨가 후손없이 떠나자 대한제국 황실의 봉사손(奉祀孫)으로

이원(李源, 1962년 9월 23일 ~ )씨를 택 하였다 
본명은 이상협(李相協), 대외적 칭호는 황사손(皇嗣孫) 또는 대한제국 황실의 봉사손(奉祀孫)으로
고종황제의 5황자 의친왕의 9남 이갑(李鉀, 이충길)의 장남으로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태어났다

  


3.줄리아 리 ( 1923년 3월 18일 ~ 2017년11월26일)


황세손 이구(李玖)의 첫번째 부인으로 20년 결혼 활을 했으며 한국 이름은 이주아(李珠亞)이다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는 미국에서 외로운 동양 청년 이구와 사랑으로 만나게 된다

외롭게 타국을 떠돌던 이구에게 8년 연상인 줄리아가  엄마나 누나 같이 의지가 되어 

1958년에 결혼하게된다

그후 실내 장식가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으나 그녀가 외국인이고 후손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 하라는 종친회와 큰 갈등을 갖게 된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낙선재에 머물면서 실내 장식품을 만들어 시어머니였던 이방자 여사의

사업을 돕고 왕실의 일원으로 열심히 활동하였다.

 


푸른 눈의 이방인 세자빈을 인정할 수 없던 종친회 에서 후사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종용당하는 힘든 시간을 보낼때. 낙선재가 싫다며 일본을 오가며 호텔생활 하던 이구와

별거상태였던 줄리아 리는  1982년 경국 이혼을 하게된다.

이후 줄리아 숍을 운영하다가 결국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1995년 한국을 떠나 하와이로 가게된다

그리고 2000년 남편의 사진 450점을 돌려 주기 위해 다시 한국에 방문 했는데 

그리운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줄리아가 왕세자비 시절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시아버지 영왕의 묘소를 방문한 후 왕실의 30여년 간의 삶을 회고하는 편지를 남겼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 되면서 "줄리아의 마지막 편지"라는 특집 방송이 방영되기도 하였다.


시어머니였던 이방자여사는 줄리아에 대해 외국인만 아니었다면 최고의

왕실 며느리 감이었다고 평가 했다


대한제국의 황태손인 故 이구의 부인 줄리아 리(본명 줄리아멀록)가 2017년11월 26일

미국 하와이 할레나니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중앙일보는 이남주 전 성심여대 음악과 교수의 말을 인용해 줄리아 리가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12월 6일 뒤늦게 보도하였다. 이 교수는 이구 선생의 9촌 조카이다.

대한제국 최후의 황태자 이은의 외아들인 이구의 부인 줄리아 리는 조선 왕가 마지막 세자빈이었다.

이 교수는 “손 전화도 못 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 누워만 있다가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고 전했다


홍유릉 덕혜옹주 묘와 이구의 墓 '영원'에서 sols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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