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근친 결혼 이야기
역사를 깊이 들어가서 고려시대의 왕족 혈통을 자세히 보면 4대 임금 광종에서
왕비가 같은 항렬의 공주이다
바로 부인은 대목황후가 이복 누이동생이다
즉 왕건이 자기 친아들과 친딸을 결혼시킨 것으로 광종에겐 왕건이 아버지 겸 장인이 되는 셈이다
즉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른형제가 합방을 한셈이다
반대로 대목황후에게는 왕건이 친정아버지겸 시아버지이다.
또한 광종의 후궁인 경희궁 부인은 친조카이다
바로 2대 임금인 혜종의 딸로서 혜종이 형님겸 장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려의 친족 근친 결혼이다
광종(재위949~975년)
아버지겸 장인 - 태조 왕건
어머니 - 신명순성황후
왕후 - 대목황후(누이)
후궁 - 경화궁부인(조카)
장남 - 5대 경종
며느리
- 현숙황후(외조카)
- 현의황후(친조카)
- 헌애황후(조카-천추태후: 외사촌인 김치양과 사통하여 낳은 아들로 고려를 김씨왕조로 만들려다 실패)
- 헌정황후(조카-헌애왕후와 친자매: 숙부인 안종(왕욱)과 사통하여 현종을 낳음)
당시에는 유교 윤리가 널리 퍼지지 않기도 했고, 외부세력에 권력을 넘기지 않으려는 목적이 컸다
왕실에 딸을 바쳐 외척이 되면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결국 왕조 까지 넘보는 사례는 당대에도 왕규의 난 등이 있었고
아예 왕실끼리 결혼하면 외부세력이 간섭할 건수 자체가 없어질 것으로 믿고 그렇게 하였다
특히나 고려 초기 왕실의 정당성이 낮아서
여차하면 다른 성씨가 새 왕조를 건립하겠다는 시도가 충분히 있을 시기였기에 더더욱 필요했다
유목민들은 경작을 하지 않으니,
옛날에는 땅 보다는 노동력, 인구가 부의 척도였고
죽은 형의 아내, 조카들을 가족으로 끌어안고 있어야 세력을 유지 할 수 있었다
남편을 잃은 아내, 아이들은 숙부에게 의지해서라도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우선 고려왕조의 성립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왕건의 통일 방식이 가능한한 결혼 동맹으로 지방 유력 세력을 왕실세력으로
끌어들여 통일 고려를 성립 시킬 수가 있었다
왕건 사후엔 지역 세력간의 다툼이 필연적이었고 세력간의 다툼에서
세력간의 연합을 위해 지역출신 왕비에게서 출생한 왕자와 공주들간의 결혼이었다
근친혼으로 보기 보다는 어쩔 수없는 정략 결혼이었고
이것은 고려뿐만 아니라 고대국가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고려시대는 왕조 근친혼이 장난이 아니었으며 이후 100여년간 고려의 근친 결혼은 지속 되었다
.
개성에 있는 왕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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