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영화칼럼

뜨거운 안녕 쟈니 리

시인김남식 2013. 5. 22. 14:17

영화 뜨거운 안녕 솔새김남식

 

1966년 쟈니리가 부른 "뜨거운 안녕"은

신영균 독고성 남정임이 출연했던 映畵 뜨거운 안녕의 주제가이다 
6.25 전쟁이 끝나자 거리에는 전쟁 고아들과 강패 부랑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먹으로 살아가던 영수(申榮均)와 남두(獨孤晟)가 왕초에게 고용된다.
영수는 남두의 누이 동생(南貞任)을 사랑하는 처지다
마침내 폭력 세계를 혐오하게 느낀 영수는 발을 뽑으려고 했다
무엇 보다도 신영균이 폭력배인 줄 모르고 있는 여동생 남정임이 문제였다
그러나 두목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두는 사실 여동생이 친동생이 아니었다
고아인 남두가 거리의 부랑아로 돌아 다닐때 길에서 울고 있는

전쟁 고아를 데려다 키운 것이다
여동생이 커 갈수록 예쁘고 착해서 그녀를 강제로 탐하고 사랑하려 했지만
독고성을 친 오빠로 알고 있는 남정임을 차마 그는 사랑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대학에 다니는 여동생은 남두가 폭력배인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느날 남두는 스탠드빠 술집 마담에게 자기의 고민을 털어 놓는다 

여동생에게 애인이 생겼는데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자   

마담은 여동생을 그러면 여자로 생각하고 따 먹으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술이 잔뜩 챈 남두는 사랑은 그런게 아니다 라고 말 하며

마담에게 폭언을 하고 술집을 나와 거리를 방황한다

이때 빠 무대에서 쟈니리가 "뜨거운 안녕"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독고성은 신영균이 자기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남정임 하나를 두고 두 사람은 결투를 벌인다

 


남두는 영수가 자기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너같은 깡패에게 줄 수 없다고 하며

독고성은 신영균을 주먹으로 때려서 그 진실을 확인 하였다

그리고는 동생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독고성(남두)은 동생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이 떠나야한다 생각하고는

왕초 두목과의 죽음에 맞 상대를 신청한다
그리고 죽음과 맞 바꾸는 커다란 결전을 떠나던 날 저녁 독고성은

남정임에게 오빠가 몸이 아파서 요양원에 들어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자 남정임은 왜 이제야 말하느냐며 진작에 알았다면

음식도 조심했어야 하고 병원도 다녀야 했는데 울면서 오빠를 한없이 걱정한다 

다음날 독고성은 폭력배와 혈투끝에 자동차로 상대의 차와 충돌하여 죽음으로 自滅하고 만다
영수와 그의 누이 동생 남정임은 고인이 된 남두의 뜻을 받들어 착하고 굳세게

살아 갈 것을 다짐하면서 이 영화는 끝이 난다.

 


그때 영화들은 대부분 6.25전쟁을 주제로 거리의 부량아와 깡패를 주제로 하였다
가사 내용을 잘 훑어보면 영화 줄거리를 연상 할 수 있는데

독고성이 카페 술집 마담에게 남정임과의 프라토닉한 사랑을 고백하며
술 한잔을 기울이며 괴로워 할 때 바로 영화속에서 쟈니리가 "뜨거운 안녕" 주제가를 부른다

독고성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독백을 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쟈니리가 부른 뜨거운 안녕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어히 떠난다면

고이 보내주겠다는 한 남자의 애련한 뜻이 담긴 바로 이별을 전하는 노래이다

 

노래 가사는 남두가 여동생에게 전하는 사랑에 대한 무언의 표현이다

술집 마당이 독고성한테 동생을 따 먹라고 말하는 대사가 내게는 참 인상적 이었다
과연 그렇게 얻은 사랑이 성공 할 수 있는 당연한 것일까

사랑은 힘으로 쟁취하는 게 최선이라고 돈과 폭력으로 결혼하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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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안녕     작사백영진 작곡서영은 노래쟈니리 
 
1. 또 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밤
기어히 가신다면 헤어집시다.
아프게 마음새긴 그말 한마디 보내고 밤마다 울음이 나도
남자답게 말하리다
안녕히 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 이~라고 

.

2.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비둘기 나란히 구구 대는데
기어히 떠난다면 보내 드리리
너무도 깊이 맺힌 그날밤 입술 긴긴날 그리워 몸부림처도
남자답게 말하리다
안녕히 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 이라고



신영균 독고성 남정임 독고성 튀우스트김 쟈니리(Johnny Lee) 

지금 이 스타를 아는 사람들이 점차로 줄어들 것이다.

하긴 1960-70년대 활약했던 가수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은 1966년에 나왔으며 노래가 힛트하자 마자 

곧 바로 영화로 만들어젔다.

"뜨거운 안녕" 지금도 노래방 선곡 가요로 상위권에 꾸준히 드는 노래이다

특히 5060 세대에서 이 노래를 18번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50년도 더 지난 노래가 지금도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추억의 그 시대를 기억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쟈니리

1938년생 본명은 이영길이다

6.25 전후 세상이 어렵고 혼란스럽던 시절 다른 가수들도 대개 그랬듯이

그의 인생 역정도 그야말로 파란만장 자체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외아들이었던 쟈니리는 6.25 직전 함경도 진남포에서 혼자 남하 하였다

기생이었던 어머니는 어린 그를 생선 장사하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했다

열세살 나던 해 전쟁이 터지자 할머니는 꼬깃꼬깃한 북한 돈을 쥐어 주며

먼저 남쪽으로 내려가 있으라고 했단다

.

혼자 내려온 쟈니리는 그뒤 다시는 북에 있는 할머니를 보지 못 했다고 한다.

그리고 13살에 피난민 수용소에 수용되고 

부산 항만 담당 미국인에게 양아들로 입양되는 행운을 얻어

안정된 생활속에서 양아버지로 부터 영어와 노래를 배우고 초등학교도 다니게 된다

그러나  양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린 쟈니리는 먹고 사는 일로 세파에 시달리며

허기와 병으로 객지인 부산에서 숱한 고생을 했다.

 

1958년 19살 무렵 부산 생활을 접고 쇼무대가 있는 서울 종로 극장가로 무작정 상경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스카라극장을 찾아 온다

보수는 없어도 좋으니 잔 심부름이든 청소든 한다는 조건으로 

공연극단 "쇼보트" 에 단원으로 입단하게 된다.

선배들인 현인, 안다성, 배삼룡등과 생활하며

노래할 수 있는 분위기속에서 지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

양아버지에게서 배운 영어가 도움이 되어 냇킹콜, 폴앵카 등의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고

창법을 독학으로 익히기도 했는데 1966년 그에게 큰 행운이 찾아왔다.

출세곡이자 대표곡인 '뜨거운 안녕' 을 취입하며 하루 아침 정상의 가수가 된다

대표곡으로는 뜨거운 안녕,  내일은 해가 뜬다,  그대 그리고 나 등이 있다

현재는 서울 청담동에서 라이브카페 '휘가로'를 운영중에 있다. 정리 솔새김남식 

 

뜨거운 안녕은 1967년 6월 동아극장에서 개봉된 신영균 독고성 남정임 튀우스트김 주연이다. solsae k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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