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포은 정몽주 묘

시인김남식 2015. 3. 27. 08:10

정몽주선생 묘소  솔새김남식

 

 

고려말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가 새 왕조(조선)를 세우려 할 때 고려 왕조를 지키려 한 애국충정에

정몽주는 이성계의 정적이 되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 까지

살아보세>

 

이방원이 정몽주를 떠 보기 위한 '하여가'에 대하여,

<이 몸이 죽고죽어 일 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한 후 그날로 선죽교에 피를 묻히게 되었다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선생의 묘소가 있다

우리에게 고려말 충신이자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많은 벼슬을 지냈지만 끝까지 고려 왕실을 지키고자 하는 충정에 결국 선죽교에서 이방원(이성계의 아들)의 수하에게 피살 당했으며 비가 오면 피로 얼룩진다는 선죽교. 정몽주의 한이 서려 있어서인지 비가 오면 피로 얼룩진다는 전설이다

 

 

 

 

 

 

 

왼쪽 묘소가 정몽주의 묘소이고 오른쪽은 증손녀 사위 자헌 이석형의 묘소이며 이 외에도

이 문수산 자락 줄기 마다 자손들의 묘가 좌우로 흩어져 퍼져 있다.

 

 

새봄을 맞이하여 각 묘마다 새단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연못가 주변 솔가지가 선생의 절개를 나타내 듯 독야청청 푸른 빛을 내고 있는듯하다.

 

 

해설사에 따르면 경북 영천이 고향인 정몽주선생의 묘소가 왜 여기에 자리잡고 있는지

전해 내려 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정몽주선생이 선죽교에서 순절하고 처음에는 황해도 풍덕군에 묘를 썼다고 합니다.

후에 고향 영천으로 이장하기 위해서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 앞을 지나게 되는데 행렬 앞

명정(銘旌:다홍 바탕에 흰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 관직, 성씨를 기록한 깃발)이 바람에 날려 지금에 

자리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묘를 써 달라는 뜻으로 알고 고향 영천을 가지 못하고 능현리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정몽주의 묘는 보통의 고위 관리의 무덤처럼 곡담에 문인석, 무인석, 장명등, 석등, 석양까지 석물이 많이

배치되어고 원래의 상석이 아니고 문인석도 추가한 것이라고 하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해설사에 의하면 정몽주의 충절과 높은 학식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는 묘비는 1517년 묘를 쓸 때 세운 것으로 묘비에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은 뜻을 기리기 위해 고려의 벼슬만 명기하고 후일 조선왕조 때 주어진 시호는 기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묘역 좌우로 휘휘 둘러 자손들의 묘가 20여 곳이 있으며 그래서 두루 굽어 살펴볼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석형은 정몽주의 증손녀 사위로 조선초기 문신으로 대리석으로 세워진 비갈형 묘비는 비교적 큰 편이다

 

 

 

정몽주는 증손녀 사위와 함께 누워 있으니 든든하고 심심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석형의 입장에서 보면

처증조부와 함께 누워 있자니 마음 편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 ㅎㅎㅎㅎ

 

 

이석형은 정몽주 두 가문이 같은 곳에 묘자리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

 

 

 

정몽주선생의 묘소 입구에는 비각공원은 저헌 이석형을 비롯한 연안이씨 선조들의 신도비와 비각과 행적비

수십개가 열을 맞춰 나열하고 있는데 이유야 어쨌든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려 묘소로 들어 가는 길에 있는 선죽교 다리 

 

 

 

 

 

사람들의 발길이 찾아드는 것은 연중무휴 문 닫는 날이 없기 때문인지 문화해설사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자세한 이야기와 안내를 받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나라를 향한 일편단심 정몽주의 애국충절이 어쩌면 이해득실을 따라 움직이는 현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교훈이 아닐까 정몽주의 묘역에서 생각해 봅니다.

 

 

정몽주묘 바로 옆에 등잔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서 일석이조의 나들이다

그리고 이곳을 가는 이가 경주김씨라면 상촌김자수와 계림군 김균묘도 함께 등산겸 나들이하면 좋을듯하다

김자수는 조선개국 이성계의 뜻을 거역하고 자결 했으며 김균은 뜻을 같이 하여 이성계로 부터 계림군이란 시호를 받았다. 찾아가는 등산길은 비교적 잘되어 있기에 따뜻한 봄날 역사를 돌아보며 산뜻한 산행이 될 것 같다. 

산행 시발점은 능원초등학교 후문에서 부터 시작이 된다.

 

찾아 가는길 - > 강남역에서 1151번을 타면 분당을 지나서 정몽주 묘앞에서 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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