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요칼럼

김현식 추억만들기

시인김남식 2018. 3. 14. 22:45

추억(追憶) 만들기  솔새김남식 

 

김현식의 추억만들기

이 노래는 고음이 없어서 누구나 부르기에 편하다

어쩌다 노래방에 가면 그래서 잘 부른다가요나 팝을 들어 보면 이별 노래가 항상 우선이다

누군가 떠나 감으로써 사랑이 성숙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것 그래서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것

사랑~

그대가 없어서 더욱 아련하게 들려오는 단어이다

누군가 떠날때 사랑이 성숙되고 그 사랑이 떠난 뒤에 후회를 한다

그래서 추억이 있는게 아닐까?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갈때

자신에게 추억 하나쯤 만들지 못하고 간다고 생각하면

내 인생이 어찌 슬쓸하지 않을까

어거지로 한다하여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기에

추억 이라는 것은 행운처럼 다가 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추억을 아련할때 누군가 생각이 날 때면 종종 부를 때가 있었다

 

내 마음 보여줘 본 그때 그 사람

사랑하던 나의 그 사람

뜨거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천천히 식어갑니다  

 

 

김 현 식 (1958 ~ 1990년)

 

음악계에서 카리스마의 대명사로 통했다.
거칠고 탁한 목소리, 터지듯 갈라지는 창법은 모두 곱게만 노래하려고 하는
가요계에서 좀 독특한 그만의 개성을 만들었다.
그가 생전에 라디오에 출연해 털어놨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편집되어 흘러 나온다.
어쩌면 이렇게나 한 마디 한 마디가 절망적일까?
 “건강이라는 게 한번 나빠지면 회복하기 힘들다” 고 말하는 그에게
어느 DJ가 일생의 소원을 물으니 참 무기력한 답을 준다.
“목소리가 사실 갔거든요. 제일 바라는 게 그거죠.”

 

어린 시절의 기억도 털어 놓는다.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살았던 유년시절의 그는 전학할 때마다 놀림을 당했고
그럴 때마다 싸웠고 또 외로워했다고 말한다.
그 싸움과 외로움은 곧 노래가 됐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있었다.
배가 고파야 노래가 더 잘 됐던 것 같다.

특히 방황, 좌절 등 여러가지 좀나쁜 경험이 많은 편이다.”

돌이켜 보면 김현식은 행복할 수도 있었다.
그는 1990년 11월 1일, 33세의 그는 영영 돌아 올수 없는 곳으로 갔다.
사인은 알코올 중독에 의한 간경화였다.
그리고 그해 겨울 여느 때와 다르게 크리스마스 캐럴이 아닌 그의 노래가 거리를 뒤 덮었다
그의 노래는 죽어서 더욱 돋 보였고 팬들에 사랑을 받았다 

 

 

추억 만들기 - 김현식

 

새끼 손가락 걸며 영원하자던

그대는 지금 어디에

그대를 사랑하며 잊어야 하는

내 맘은 너무 아파요

그대 떠나는 뒷 모습에 내 눈물 떨구어 주리

가는 걸음에 내 눈물 떨구어 주리

 

내 마음 보여줘 본

그때 그 사람

사랑하던 나의 그 사람

뜨거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천천히 식어갑니다

 

세월이 흘러가서 백발이 되어버리고

얼굴엔 주름지어 내 사랑 식어버려도

내 마음 보여줘 본

그때 그 사람

사랑하던 나의 그 사람

뜨거운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천천히 식어갑니다

 

 

너무 일찍 떠나 안타까운 천재들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전설의 죽음  유재하 & 김현식

 

 

 

 

 

1987년 11월 1일, 한 가수가 친구의 차를 함께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제 겨우 1개의 음반을 발표했던 20대 중반의 그 젊은 가수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단 한 장의 음반으로 한국 발라드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 받는 가수 유재하의 이야기다.

 

유재하는 한양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했다.

순수음악을 전공했으며, 작사, 작곡, 편곡 실력에 다룰 수 있는 악기도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대학재학 시절부터 국내 최고의 밴드인 ‘조용필과 위대한 밴드’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 했으며

이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활동하며 이미 주변 음악인들로 부터 인정 받았다.

유재하의 음악이 높이 평가 받고

아직까지 한국 가요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데에는 이러한 음악적 배경이 깔려있다.

순수음악의 화성학을 대중가요에 반영함으로써 한국 발라드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 받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유재하가 살아 있었다면 그래서 더 많은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면 한국 대중음악계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고 한다

그는 단 한 장의 음반으로 그 만큼의 족적을 남겼으며

그 족적의 의미는 가히 서태지가 한국 대중음악계 전체에 끼친 영향과 견줄만 하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더욱 그의 노래에 애착을 갖는 것 인지도 모른다

김현식은 일찌감치 유재하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고 상당히 많은 애정을 가졌다

공교롭게도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지 3년후 김현식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별의 종착역 - 김현식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이 나그네 길

안개 깊은 새벽 나는 떠나간다.

이별의 종착역.

 

사람들은 오가는데

그이 만은 왜 못 오나?

푸른 달빛 아래 나는 눈물진다.

이별의 종착역.

 

아...언제나 이 가슴에

덮인 안개 활짝 개고

아...언제나 이 가슴에

밝은 해가 떠오르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달픈 이 나그네 길.

비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친다.

이별의 종착역.

 

아...언제나 이 가슴에

덮인 안개 활짝 개고

아...언제나 이 가슴에

밝은 해가 떠오르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달픈 이 나그네 길.

비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친다.

이별의 종착역.

비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친다.

이별의 종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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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처럼 음악처럼  - 김현식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아름다운 음악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아름다운 음악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그렇게 아픈 비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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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메모리얼파크에 있는 김현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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