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대군묘
태종임금의 아들들인 양녕, 효령, 충녕, 성령 4형제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형제들
맏아들로 뒤를 이을 세자였지만 기이한 행동으로 부왕의 노여움을 산 때문에 폐세자가 된 양녕대군이나, 왕위에 뜻을 두지 않고 불교에만
열중했던 효령대군,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
막내인 성령대군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머리가 비상했다고 전해진다.
성령대군 이종(李褈)은 태종이 3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본 4형제 중 넷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종과 원경왕후가 매우 사랑하여
항상 궁중에 두고 옆에 떠나지 못하게 했으며 결혼한 뒤에도 궁중을 떠나지 않고 지내게 했을 정도로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학문에도 뜻이 있었다고 하는데 1418년(태종 18) 홍역에 걸려 13살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성령대군이 어린 나이로 사망하자 태종은 아끼던 아들의 죽음을 비통해 하며 친히 제문을 짓고 분묘 옆에 암자를 지어
대자암(大慈菴)이라고 이름지은 뒤 아들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대자암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성령대군은 후사없이 죽은 탓에 후에 충녕대군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성령대군의 양자가 되어 뒤를 이었지만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멸문을 당하고 대가 끊기자 1461년(세조 6)에 다시 효령대군의 6남 원천군(原川君) 의(宜)를 양자로 후사를 잇게 했다.
성령대군묘 / 세종대왕의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