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산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다.,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서
큰 아들은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작은 아들은 서울에서 대기업의 임원으로 있지만
정작 그 어머니는 여주에서 혼자 쓸쓸히 지내고 계시는
분의 얘기를 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아주 잘 키우면 국가의 자식이 되고,
더 잘 키우면 장모의 자식이 되고
적당히 잘 키우면 내 자식이 된다는 얘기도 하였다.
웃자고 하는 얘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그래야 집에 하수도가 막혀도
“야야~ 하수도가 막혔다. 얼른 와서 해결 좀 해라.” 하고
편하게 부를 수 있고,
방안의 전구를 바꿀 때도
“야야~ 얼른 와서 전구 좀 바꿔라.” 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하수도가 막혔다고, 전구가 나갔다고,
미국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 없고 서울에 있는 아들 부를 수도 없기 때문에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볼까 말까하는 아들이 내 아들이라고 할수가 없고,
평생에 한두번 볼수 있고 사진을 통해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손자를 내 손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소리만 요란하고 결과는 없다.
A living ass is better than a dead docter
죽은 박사보다 살이있는 멍청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