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수립
군정기간 중 미 군정은 온건파인 김규식, 안재홍, 여운형을 통해 좌우 합작, 협상을 주도하게 했다.
그러나 헤게모니 장악에서 제외된 것에 불만을 품은 이승만, 김구, 윤치영, 박헌영, 허헌 등의 반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 뒤 제2차 미소공위 마저 결렬되어버리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UN 총회로 이관하여 남한내 단독정부 수립이 결정되었다.
남한 내 단독정부 수립이 결정되자
김규식, 조소앙 등에 김구가 합세하여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남북협상 등 추진하여 노력하였으나,
38선 이북에서는 1946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와 1948년 2월 조선인민군을 창설하여
사실상의 정부화하였고 남한에서도 선거 가능한 지역에 한한 정부 수립론이 나타나면서 사실상 남북단일 정부 수립은 불가능하게 된다,
김구가 암살이 되면서, 남북협상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1948년 1월부터 한반도의 정국은 단독 정부 수립론과 남북 협상을 통한 정부 수립론을 놓고 의견이 갈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 2월 38선 이북에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선인민군을 창건하면서 분단은 사실상 불가피하게 되었다.
결국 38도선 이남에서만 1948년 5월 10일 제헌 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탄생하였고
같은 해 7월 17일에는 초대 헌법인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 구성되었다.
7월 22일에는 국회의 간접 선거에 의해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 이시영이 초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한편, 38선 이북에서는 소련군에 의해 군정이 실시되다가
1946년 임시인민위원회가 세워졌고 9월 9일경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같은 해 12월 12일 "유엔 총회 결의 195(III) 한국의 독립 문제"에서 대한민국이 "유엔임시한국위원회가 관리하는
선거가 실시된 지역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한국 주민 대다수의 의사로 탄생한 유일한 정부"임을 선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한반도 북부에서 사실상 독립한 것
혹은 한반도 전체의 통치권을 주장하는 것은 불법적인 것으로 보고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보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 일본에 강제체류중이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은 이승만에게 귀국의사를 밝혔지만
대한제국의 황실이 국민들에게 지지받을 것을 두려워한 이승만은 냉담한 태도를 보였고
영친왕은 1963년까지 귀국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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