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의 외가
1849년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純祖妃)의 명으로 궁중에 들어와 덕완군(德完君)에 책봉되었으며 1850년 19세로 헌종의 뒤를 이었다.
철종은 결국 재위 14년간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색에 빠져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 채 병사하였다.
철종 10년(1859) 강화유수 조충식이 철종의 외숙부 3인의 묘를 정화하고 비석을 세워 왕족의 위신을 세웎고
외가 5대에게 벼슬을 내리고 선원면 냉정리에 10여 정보를 하사하는 등 특전을 베풀었다고 전해온다.
좌측에 위치한 염상임(廉尙任)과 배위 전주이씨 중앙에 위치한 염덕석(廉德碩)과 배위 김해김씨 우측에 위치한 염성화(廉星華)와 배위
철종 외사 묘는 모두 3기인데 우측의 묘비에는
"조선 증대방보국 숭룩 대부의 정부 영의정 용담 염공 휘성화지묘"라 새겨져있고 장명등과 그 좌우에는 망부석, 양석 등의 석물을 갖추었다.
좌측의 중앙 묘비에는 "조선 중승정대부의 정부 좌찬성 용담 염공 휘덕석지묘"라 되어있고 묘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있다.
파평염씨 한 사람이 철종외숙비 묘비의 비문 중 용담 염씨를 고쳐 새겨놓고 외숙 행세를 하며 궁궐을 자주 출입하던 끝에
가짜임이 밝혀졌다는 일화가 전해오는데 비문에는 용담 염씨로 정정한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좌측면 묘비에는 "조선 증자헌대부 이조판서 용담 염공 휘상임지묘"라 되어 있으며
뒷면에 "숭정기 원후사기미 팔월 일일(崇禎紀元後己未八月一日)"이란 각기로 보아 철종 10년(1859)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