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역 문화탐방 / 2016.11.15
상당산성(사적 제212호)은 둘레 4.2km, 내부 면적 727.276 평방미터에 달하는 포곡식 석성으로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문 밖에서 발견된 옛 기와의 명문을 통해 통일신라의
서원경과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당산성 남문인 공남문 (控南門)
상당산성은 서쪽과 북쪽으로는 금강유역, 남쪽과 동쪽으로는 한강유역으로 흐르는 물줄기에 이어지는
분수령에 축조된 산성으로 서쪽 평지에 청주읍성과 정북동토성이 있고 주변에 옛 산성들이 있다.
1651년(효종2) 해미에 있던 충청도병마절도사의 병영이 청주로 옮겨옴에 따라서 청주 읍성은
동시에 충청병영성의 역할을 하였다
구룡사 사적비는 상당산성 안에 있었던 구룡사의 역사를 알리기 위하여 조선 영조 40년(1764)에 은재거사가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써서 세운 사적비로 절은 이미 없어졌고 비를 남문앞에 옮겨 세웠다.(높이 133cm, 폭 56cm)
남문에서 청주산성 주차장이 내려다 보인다
청주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영호남과 서울로 가는 통로를 방어하는 요충지로서
특히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임진왜란 때 수리를 시작했다가 중지된 상당산성을 1716년(숙종42)부터 수리하여 영조 때 완성했지만
성벽위에 여장(성가퀴)로 남문쪽에만 있으며 산성 전 구간이 아직 설치되어 있지 않다
서남암문으로 상당산성에는 동북암문과 서남암문의 두 암문이 있다.
암문이란 몰래 드나드는 작은 사잇문으로
사람과 가축 및 식량등을 성안으로 몰래 들여오거나, 적군 몰래 아군을 내 보내 성밖과의 연통하는 용도
상당산성 서문 (미호문, 弭虎門)
전해오는 야기에 따르면 땅 모양이 호랑이가 날뛰기전의 움츠린모양이라 하여 미호문이라 한다
상당산성은 350미터에서 부터 시작하여 최고도가 450미터
상당산성에 올라서면 무엇보다도 청주시내와 멀리 오창까지 내려 다보는 조망이 압권이다
상당산성 둘래길은 보통 1시간 30분이면 모두 완주 할 수 있는 편안한 거리이다
상당산성 주위는 주말이면 사람들이 많이 걷기도 하는데 城의 여장이 없어서 다소 위험이 따른다
산상안에 물을 내 보내는 水口로 일종의 하수도
진동문
동장대 보화정
1747년(영조 23)에 병마절도사 이필구가 지은 보화정기의 글이 남아있으며
보화정이란 모든 주민들의 화합된 의지로 지킨다는 뜻으로 이며 1992년 6칸 크기로 복원하였다
성안마실에 있는 연못에는 벚꽃과 매화꽃 나무들이 봄 꽃을 피운다
산성마실에는 청주의 토종 음식맛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혹시 찾아 갈 일이 있다면 위 시간표를 참조
산성에서 버스를 30여분 타고 도청앞에서 내렸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89 번지에 있는 도청 건물은 1937년에 건립되어 현재까지 충북지역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충청북도와 청주시의 상징 까치 조형물
현관의 포치(porch)는 단순한 사각 형태로 화강석 마감이고 건물 전면은 당시 유행했던 갈색 스크래치타일 마감
도청본관 중앙계단
도청 현관과 복도에는 여러가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장수동물 거북이 목각
도청을 나와서 뒷 길로 들어 서면 서양풍의 붉은색 고급주택 한 채가 보인다
청주의 등록문화재 제9호로 1924년 건립된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 "우리 예능원"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충북지부장 사택으로 건립 되었는데 당시 청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되옸다
우리나라 근대사 기념이 되고 상징적 가치가 인정되는 근대문화유산으로 1982년 현 소유주가 구입 사용하고 있다
예능원 내부
바로 옆에는 벽을 사이에 두고 옛 중앙초등학교 터에는 충북도의회가 명년에 들어설 예정이다
예능원에서 약 1키로 정도 올라가면 있는 청주향교
향교 입구 홍살문
계단위에 청주향교 외삼문
명륜당 뒤로 제향공간 대성전이 있는데 내삼문이 7칸으로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간다
청주향교 대성전에는 공자와 4성 송조6현 그리고 우리나라의 성현 18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향교를 나오면 벽화마을 그 아래로 옛 도지사관사인 충북문화원이 있다
충청북도지사 구관사는 등록문화재 제 353호이며 1937년 건립되었다
건물전면은 양식으로 후면은 일식으로 구성하고 외부 접견실과 주 생활 공간을 구분되었고 접객 공간의 외부에는
서양식 창호가 설치되었고 생활 공간에는 다다미, 미닫이 창호가 설치되었다.
방바닥에 사용되는 일본식 다다미
충북 유형문화재 제 149호 청주 성공회 성당은 상당공원 뒤에 있다
한옥과 서구 건축양식이 조화된 청주 성공회성당은 1935년 세실 쿠퍼 주교에 의하여 건립된 성당이다
남녀가 따로 드나들 수 있게 신기하게 문을 양쪽으로 만들었다
성당 내부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 국보 제 41호.
철당간이 서 있는 곳은 고려시대 청주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던 용두사가 있던 자리로 지금까지 천년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는 청주극장과 현대극장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오래전에 사라졌다
충북에 처음 극장이 들어선 것은 1961년 중앙극장 문을 열었고 이어서
62년 부터 남문로에 청주극장과 현대극장이 들어섰고 그리고 상당공원 자리에는 동아극장
중앙공원에는 시민관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이후 남주동에 자유극장 청대앞에 청도극장이 들어섰지만 1990년대 들어 서면서 도시계획에 의거 일부는 철거 되었고
특히 소극장 붐이 시작하면서 대형극장은 서서히 사양길로 접어 들게 되었다
청주읍성 남문표지석 청주약국 앞에 있다
청주읍성 표지석 자리는 매번 갈때마다 목이 좋아서 인지 물건파는 할머니가 자리하고 있어서 사진이 깔끔하지 않다
이어서 중앙공원으로
청주의 명물 압각수 은행나무 잎모양이 오리발 닮았다해서 별칭으로 압각수(鴨脚樹)라 부른다
(높이는 약 30m, 밑둘레는 8.6m)
이곳은 원래 고려때부터 청주객사 마당이었으며 일제시대 도청이 이곳에 있다가 이전 하면서 공원이 되었다
나라에 불운이 생기면 은행나무가 웅하며 운다는 소문이 있지만 아직 들어 보지는 못 했다
압각수는 여러번 병치례를 했지만 천년의 수명을 자랑 하듯이 매년 봄이면 아직도 잎이 파랗게 피어나고 있다
청주 망선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10 호
청주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고려시대 청주관아의 객사 동쪽에
있던 누각 건물로 취경루라 하였다. 그후 기둥이 심하게 부식되어 붕괴의 위험이 있어서
2000년 12월 현재의 자리에 옛 모습인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팔작지붕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중앙공원에는 임진왜란 의병장 조헌과 구한말 의병장 한봉수 공덕비가 있다
중앙공원을 나와 청주시 제2청사 가는 길에 청주읍성서문터 표지석이 서문시장 끝쪽 서문오거리에 있다
옛 청원군정 자리에 청주제 2청사에는 조선시대 관아터 청령각가 있다
청주 청령각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09호로 조선시대 지방관들이 정무를 집행하던 관아 건물로
구조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벽과 내부를 개조하여 청주군청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2008년에
해체 보수를 하여 원래의 모습을 되 찾았다
충북선 청주역 은 1921년부터 1968년까지 청주시청 부근 이곳에 있다가
시내를 관통하던 철로를 직선화 사업으로 우암동으로 이전 했다가
그후 도시팽창을 염려에 두고 1980년 청주역을 정봉역으로 이전 신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청주역 역사관에 있는 영화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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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로 2가 140번지에 있는 옛 철길 건널목
청주역이 이전 하기전 까지는 이곳이 청주를 관통하는 도로였다
청주시청 뒤에 있는 25시삼계탕 청주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건물의 건축 시기는 알 수가 없으나 1960년 부터 지금 까지 현존하는 건물로
25時 상호는 1960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청주역이 있을 때는 25시 다방 이었다
청주대교는 옛 충북선 철길이 지나가던 자리다
청주의 지세를 따졌을 때 무심천 위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이라고 해서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부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