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무심천 솔새김남식
무심천 체육공원은 청주시 사직동 무심천변에 조성된 공원으로 아주 쾌적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무심천 지명은 고려시대는 심천(沁川)으로 불리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석교천(石橋川)· 대교천(大橋川) 남석천, 심천, 무성뚝으로 불리다가
1923년 이후 부터 무심천으로 불리게 되었다.
무심천의 발원지는 가덕면 내암리 탑산골로 청남산 군자봉 아래 내암리 뫼서리 골짜기에 있는
벽계수 옹달샘에서 발원하여 문의면과 남일면 일대를 흘러 무심천을 통과하고
미호천을 지나 금강 수계와 합류한다.
특히 청주 시가지를 남북으로 지나고 있는 청주를 대표하는 자연물로 전체길이 34.5㎞, 유역면적 177.71㎢ 이다
우리가 자랄때는 미역도 감고 가재와 물고기를 잡았던 그 추억의 무심천이었다
옛날에는 길이가 백리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 길이가 조금은 짧아지지 않았나 생각 해본다
농촌이 급격히 도시화되면서 무심천의 물의 량이 작아진 탓도 있지만 원래 무심천내는 수원지 길이가 짧고
수원의 양이 약해서 가뭄 때는 물이 많이 흐르지 않아서 지금은 대청땜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무심천은 청주시내를 동서로 나누어지게 만들었으며 시내를 퀘적한 환경과 여가를 즐기는 곳으로 되어있다
무심천대교에 관상용 꽃길을 가꾸면서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牛巖山)과 어울려 시가의 모습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벚꽃이 일본 국화라고 전해지자 무심천 뚝방에 있던 벚꽃을 해방후 모두 베어 버렸고 그곳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무심천 유래비에 의하면 사람이 죽었는데도 하천이 無心하게 흐른다하여 무심한 하천이라고 했다는데 .....
홀어미가 시주를 하러 온 대원사 수행승(修行僧)에게 “스님 반 나절만 우리 애를 맡아주십시오.
남천을 건너 장을 봐야 하는데 아이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라며 부탁을 하였다.
이때 수행승이 잠깐 낮잠을 자는 사이, 아이가 남천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 그만 물에 빠져서 쓸려가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이 광경을 목격한 홀어미는 크게 슬퍼하며 시체를 건저 화장하고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됐다고 하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대원사 주지(住持)는 가까운 고을에 있는
수행승을 동원하여 웅장하고 견고한 돌다리를 가설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무심천에는 청주대교, 청남대교, 모충대교, 흥덕대교, 운천교를 비롯하여 모두 16개의 다리가 놓여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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