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려조선

‘공주(公主)’

시인김남식 2007. 7. 3. 09:36

‘공주(公主)’


‘공주(公主)’의 어원은 본디 중국 황제의 딸을 혼인시킬때 ‘삼공(三公)’이 ‘주관(主管)’ 했기에

단어가 주는 공주가 그만큼 귀한 사람이었음을 의미하는데 그렇다면 조선시대 공주의 삶은 어땠을까?
최고 권력자인 왕과, 전국의 처녀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간택에서 선택된 중전의 딸이 조선의 공주이고
또한 후궁의 딸은 옹주로 불렸으며, 앞서 언급한 공주와 함께 품계를 초월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들은 내명부가 아닌 외명부에 속해 있었다.


세조의 왕위 찬탈은 정치적으로는 왕권 강화를 통해 중앙집권 체제를 공고히 수립헸지만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도덕적인 흠이 존재했기에 단종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충신들의 미담이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지만 단종애사에서 충신들에 가려진 여인들은 없을까?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그녀들의 파란 많은 삶을 잠시 소개한다.
어려서 궁중에서 자란뒤 궐밖으로 시집가기 때문에 그래서 외명부에 속한 왕녀들은 혼인후
시집살이를 하더라도 시부모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

 

시부모와 왕녀의 자리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왕녀가 상석(上席)에 앉는 것이 법도였고
왕녀가 요절하면 부마는 법적으로 재혼을 할수 없으며 첩도 금지되었 것도 당연하다.
또 시가媤家 대역죄를 지어 몰락한 경우에도 왕녀의 신분은 보장됐다.
이처럼 왕녀들은 일반 사대부 여성들 보다 훨씬 우대받는 삶을 살았다.
왕녀라는 신분 덕분에 늘 특권을 누린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엄청난 혜택을 누렸으며
잘못을 저질러도 반역이나 불충에 관계된 일이 아니라면 형벌을 받는 일도 드물었다.
어찌 보면 왕자보다 왕녀의 삶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또한 공주가 시집가서 아들을 못 낳아 눈치라도 보일까봐 대부분 차남이하의 아들과 결혼했다
세자를 제외한 다른 왕자들은 왕권에 위협이 될수 있기에 정치활동을 금지 당한채 살아야 했고
걸핏하면 역모죄에 연루되어 제거되었던 것에 비하면 공주는 최고의 치외법권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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