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고가도로 & 세운상가 솔새김남식
6.25 전후가 끝나자 청계천은 광통교 상류 약 136m를 복개한 것을 시작으로
1958년 부터 본격적으로 복개되기 시작하여 1961년 12월까지 광교에서 청계6가
동대문 운동장까지 2358m 구간이 복개 되었고
1965년 부터 1967년까지 청계 6가에서 부터 청계 8가 신설동까지
1970년부터 1977년 까지는 청계 8가에서 부터 신답철교까지 복개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이 같은 복개 공사를 통해 총 길이 3670m 최대 너비 84m에 이르는 청계천은
광교와 수표교 오간수교, 영미교, 관수교 등 모두 24개의 다리와 함께 지하로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그런데 복개된 도로 양쪽으로 상가가 밀집,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도심에서 외곽으로 빠지는 새 도로가 필요했다. 이에 아스팔트 도로를 뒤집어 쓴 청계천은 그 위에 또 하나의 도로를 덧쓰게 된 것 바로 청계고가다.
청계고가는 1968년 마포에서 서대문에 이르는 마포로를 고가를 이용해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이
771m로 건설한 아현고가도로에 이어 두 번째 들어선 고가도로로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고속도로다.
‘불도저 시장’ 김현옥의 지휘 아래 1967년 8월 15일 시작된 공사는 1976년 8월 15일 완공을 본다
청계고가는 너비가 16m에 이르고 길이 5.8 km의 왕복 4차선 전용도로로서
고가 아래에 숨어 있는 청계천에서 1984년 11월 7일 그 이름을 따왔으며 청계고가는 당시 교통을
분산시키고 교통 흐름을 빠르게 하는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씨가 최신건축사조를 끌어들여 만든 최첨단 건물이었다.
설계 방식은 60년대 이후 서울이 개발되는 과정을 그대로 상징하는데,
1~4층은 상가로 하되 1층을 자동차 전용 공간으로 설정하고
대신 3층을 보행자 전용도로로 건설하는 등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주상복합 타운이었다.
당시에는 보기 드문 획기적인 설계 방식으로 이 세운상가는 국내 전자산업이 태동 할 당시
전자부품이 집결되는 곳으로 70~80년대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90년대에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노후한 청계고가 도로의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다.
이에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 복원을 공약하였고, 32대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2003년 7월 1일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가 시작되었고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에 이르는 약 5.84km의 구간을 복원하는 공사가
2005년 9월 30일에 완료되었다.
청계천의 통수단면 위쪽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 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 물과
도심의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조달하였고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세운상가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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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4가 세운상가 앞에 작은 초원의 농촌이 있었는데 모두 없어지고 옥상에 전망대를 설치했다
그리고 여기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보도 육교를 만들어 놓았다
10층 높이로 엘베터를 타고 올라가면 주위 풍경이 들어 온다
옥상에는 쉴수있는 의자가 많이 있네요 음료등은 전혀 팔지않습니다 아마 쓰레기 때문인듯해요
세운상가지하에 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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