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은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 15번지 일대에 위치한 백제의 후기 고분들로
사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궁남지에서 논산으로 나가는 4번국도 4키로 지점에 있다
커다라 묘 봉분만 있을뿐 보기에는 밋밋하지만 그 역사 깊이를 들어가 보면 애련한 곳이기도 하다
보통 관람객들이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외는 봉분까지 멀어서 가지않고 주차장에서 있다
넓은 주차장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나 아직은 그리 사람이 많지않다
특히 중국에서 병사한 의자왕과 세자들에 가묘 있는 곳이다.
의자왕
백제 제31대 [재위 641∼660년]
그는 왕의 시호가 없으며 의자(義慈)는 휘(諱)이다
신라의 선화공주와 무왕의 맏 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33)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었다.
642년 친히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獼猴城) 등 40여 성을 빼앗았고
이어 윤충(允忠)으로 대야성(大耶城:경남 합천)을 함락시켜 성주인 김춘추의 사위 품석(品釋)을 죽이는 등
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듬해에도 당항성(黨項城:남양)을 빼앗아 신라가 당(唐)나라로 가는 입조(入朝)의 길을 막는 등 국위의 만회에 힘썼다.
그러나 만년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성충(成忠) ·흥수(興首) 등 충신의 간(諫)을 듣지 않고
국정을 돌보지 않다가 660년 나 ·당(羅唐) 연합군의 침공을 맞게 되었다.
계백(階伯)의 황산벌싸움을 마지막으로 백제의 방어선이 모두 무너져 수도 사비성(泗沘城)이
나 ·당 연합군에 포위되자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웅진성으로 피신하여 후일을 기약했지만
백제 역신 '예식진'이라는 자가 의자왕을 잡아다 당에게 넘겨 주자
소정방 앞에서 술을 따르며 굴욕적인 항복식을 하게된다
그는 태자 등 1만 2000여 명과 함께 소정방(蘇定方)에게 끌려 당나라에 압송 되었다가
그 곳에서 병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재위 기간 내내 대내외적으로 의욕적인 정복활동을 펼쳤던 의자왕은
망국의 왕으로 허구로 지어낸 삼천궁녀를 짊어지고 펀안히 눈을 감지 못한채 중국땅 북망산에 묻혀있다
2004년5월 낙양시와2000년 4월에 낙양시 북망산에서 반혼제를 올리고
의자왕이 묻혀있던 곳의 흙을 1340년만에 가져와 이곳 능산리 고분군 옆에 자리를 만들었다거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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