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오죽헌
율곡이이 선생과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태어난 곳이다.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두 분의 유훈을 계승하고,
아울러 전통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찾아오는 분들의 정서 함양을 위한 곳이다
율곡선생의 유품은 물론 신사임당을 비롯한 큰딸 매창, 막내아들 옥산이우 등 사임당 일가의 학문
예술적으로 품격 높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지방의 향토 사료가 함께
전시되어 있어 옛 조상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년 ~ 1551년 )
조선 시대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며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 겸 정치인 율곡 이이, 화가 이매창의 어머니이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신씨 이고 본명은 인선(仁善)으로 사임당은 그의 당호(堂號)이다.
2007년 한국 여성계의 반대와 집단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의해 5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은 그의 9촌 조카였고, 대한민국의 정치인 해공 신익희는 14대 방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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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세 일찍 병사 했지만 아들 이이는 대학자이자 정치인으로, 딸 이매창과 아들 이우 등은 문인 화가로 명성을 날렸다.
동시대의 여성인 문정왕후, 정난정, 황진이 등과 비교 되면서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존경받았고
사후에도 아들 율곡 이이의 정치적, 학문적 대성으로 존경하는 어머니상의 전형으로 길이 추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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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은 19세때 22세의 덕수이씨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했지만 혼례후 몇달뒤 아버지를 여의고
3년 상을 치른 후 시댁에 들어와 신혼례를 올렸다
아버지 신명화는 딸의 재능을 키워줄 사윗감을 고르던 중 선택한 덕수 이씨 이원수를 사위로 정했으나
당시 그는 이렇다 할 관직도 없었고,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두 당숙이 영의정과 좌의정 등을 역임한 고관이었지만 그의 집안은 가난했고
주변에서는 사위감을 볼줄 모른다며 이상하게 봤다고 한다
남편은 여러가지 면에서 사임당에 미치치 못했는데 학문에 뜻이 없고 성격마저 나약하였고
모골이 송연해진 원수는 그날로 서울 올라가 공부를 했다. 그나그것도 3년 넘기고 부인옆으로
오고야 말았다
사임당은 그후 남편의 성격을 아는지라 기대를버리고 더 강요하지 않았다.
사임당 자신도 다정 다감하고 나약한 일면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신사임당은 남편 이원수에게 아버지 신명화처럼 자상하고 인자한 태도를 기대했지만
남편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시련과 정신적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신사임당의 부친이나 조부등은 그런일이없었으나 남편의 외도 그리고 첩을 얻게되자 큰 충격을 얻게된다
신사임당 : 내가 죽은 뒤에 당신은 다시 장가를 들지 마시오. 우리에게 이미 아들 다섯, 딸 셋, 8남매의 자녀가 있는데, 다른 자식이 필요하며 또 다시 무슨 자식을 더 두어 예기에 가르친 훈계를 어길 수가 있겠소?
신사임당 - 초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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