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역사기행

은평평화공원

시인김남식 2014. 7. 25. 20:33

은평 평화공원  솔새김남식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를 나오면 은평 평화공원이 있다

6.25 전쟁때 미국인이면서 평양에서 출생한 선교사의 아들인 윌리엄 해밀턴 쇼의 동상이 있어서

은평 평화공원이라 하였다.

 

 

그는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계속 공부만 하고 있을수 있겠습니까."
1950년 하버드대 철학과 박사과정에 있던 윌리엄해밀턴쇼(Shaw)는 북한이 남침했다는

뉴스를 듣고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2차대전에 참전해 다시 군복을 입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곧장 해군에 입대, 한국 파병을 자원했다.
1922년 선교사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 외국인학교에 다닌 그는 평소 한국을 고향으로 생각해왔다.

.

 

박사과정 입학전에도 한국의 해군사관학교에서 함정 운용술을 가르쳤으며

유창한 한국말에 수도권 지리를 잘 아는 그는 정보장교로 인천 상륙작전에 공을 세웠다.

 

 

 

 

하지만 정보부대를 이끌고 서울 탈환작전에 앞장섰다가 1950년 9월 22일 서울 녹번리 전투에서 매복한

북괴군에 의해 교전끝에 29세 나이로 전사했다.

 

 

그는 생전에 두아들을 두었으며 서울대 법대교수를 역임했던 장남 윌리암 로빈슨 오하이오주 법원판사인

차남 스티븐 리처드쇼가 있으며 미망인은 오하이주에 살고 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 LT. William Hamilton Shaw 1922년 ~ 1950년 )

.

부친은 윌리엄 E. 쇼(Shaw, William Earl)는 미 감리회 선교사 모친은 아데린 H. 쇼(Shaw, Adeline Hamilton,1895-1971) 역시 선교사 쇼대위는 1939년 평양 외국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시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이 당시 식민지 통치규약에 의거해 외국인 선교사들을 추방하자 

1941년 쇼 대위의 부모님과 누이도 오하이오로 귀국을 한다

.

 

1943년 웨슬리안 대학교를 졸업하고, 조니타 로빈슨 쇼(Shaw,Juanita Robinson)와 1943년 결혼

 

미해군 장교 과정을 이수하고 고속 어뢰정의 부정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자 쇼대위는 아내 조니타와 아들 로빈슨 쇼를 데리고 입국하여

 

미해군성 소속으로 진해 해군사관학교 설립에 도움을 주게된다

.

 

 

그리고 1949년 10월 서울에서 둘째 아들 스테펜 출생한후

이후 가족들과 미국으로 귀국하여 이후 대한민국 선교를 위해 하버드 대학에서 

극동 아시아와 대한민국 연구 프로그램을 전공하며 박사과정 이수 중 대한민국에서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그때 해밀턴 쇼는 고민과 번민하는 가운데

 요한복음 15: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를 읽고

한국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가족을 부모님에게 맡기고 자원 입대하여 인천 상륙작전에 투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고양군 은평면 녹번리 전투에서 조국을 위해서 장렬하게 전사 한다.

윌리엄 해밀턴 쇼(shaw) 대위의 아버지는 목원대 초대이사를 지냈으며 부모와 함께 양화진 선교사 묘역애

잠들어 있으며 그의 미망인도 양화진에 안장키로 되어있는 가족 3대에 걸처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다

.

 

평화공원 한쪽에는 손로원작사 박시춘작곡 금사향의노래 님 계신 전선 노래비가 있다

 

 

평화공원은 6·25 전쟁 당시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미해군 대위의 동상이 있는 곳으로서 노래 가사와

6·25 전쟁이라는 시대적 동질성을 갖고 있어 의미가 있는 곳이다

 

 

금사향은 6·25 전쟁 당시 위문 공연하러 다닌 공훈을 인정받아 6·25 참전 국가유공자로서 

2012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의 대표곡인 '님 계신 전선'은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 군예대 활동 당시 1953년

취입한 노래로써 위문 공연 도중 죽더라도 국가에 보상을 받지 않겠다는 일종의 각서인

먹물 도장을 찍어가며 군의 사기를 위해서 활동을 하였다

 

 

 한편 금사형(본명 최영필)2018년 5월 향년 89세로 일산 요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기행 > 역사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옥병 용현서원   (0) 2014.08.13
연천 신답리 고분  (0) 2014.08.04
강원 고성군 청간정  (0) 2014.07.20
강원도 고성 화진포 역사의 세 인물 별장   (0) 2014.07.16
백제문화단지  (0) 201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