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려조선

조선을 흔든 16인의 기생- 책

시인김남식 2006. 1. 12. 20:38

조선을 흔든 16인의 기생


제1부 春은 열정이다_남자들의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여인들 (15)

남자들을 내 치마 앞에서 무릎 꿇게 하리라 한양 기생 초요갱
나는 이제 모든 남자의 꽃이 될 것이다 송도 기생 황진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소를 올리다 용천 기생 초월
임금도 나를 소유하지 못한다 보천 기생 가희아


제2부 夏는 사랑이다_운명을 걸고 뜨겁게 사랑할 줄 알았던 여인들 (91)

젖가슴 하나를 베어 미망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단양 기생 두향
한 세상 다 가져도 가슴에는 한 사람만 남아 영흥 기생 소춘풍
몇 번을 사랑해도 불같이 뜨거워 부안 기생 매창
사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성주 기생 성산월


제3부 秋는 영혼이다_세상을 향해 뛰는 가슴을 가졌던 여인들 (173)

군복을 입은 기생, 결사대를 조직하다 가산 기생 연홍
네 개의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백성을 구하다 제주 기생 만덕
물결이 마르지 아니하는 한 혼백도 죽지 않으리라 진주 기생 논개
뭇 나비에 짓밟히지 않았음을 세상이 알랴 함흥 기생 김섬

 
제4부 冬은 이별이다_실연의 아픔을 감당해야 했던 여인들 (241)

율곡 이이와 플라토닉 러브에 빠지다 황주 기생 유지
풍류남아의 부질없는 약속을 믿다 평양 기생 동정춘
천재 시인의 꺾여버린 슬픈 해바라기 함흥 기생 취련
어찌하여 여자로 세상에 태어나게 했습니까 부령 기생 영산옥

에필로그_기생, 길가에 피는 꽃을 찾아서 (300)

 

 

나는 사랑을 하면 할수록 사랑에 목마르다”



비단 옷을 벗은 기생들의 진짜 모습을 공개한다!


조선 팔도에는 남자들을 치마폭에 두고 휘둘렀다는 황진이 말고도 그 미모와 재능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기생들이 많았다.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여자의 몸으로 금기서화를 익히고, 사대부들과 자유롭게 교제했던 기생은 조선의 또 다른 이면을 드러내는 특별한 계층이었다. 기생과는 인연이 없을 것 같은 꼿꼿한 선비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도 기생들의 치명적인 매력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현대에 와서는 조선의 춤과 노래를 전승한 예인으로 조명되는 기생들에게는 지금껏 드러나지 않은 색다른 면모가 많이 있다.

황진이로 대표되는 조선의 기생들을 단순히 ‘요부’쯤으로 생각했다면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기생들>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오늘날로 보면 인간문화재이기도 했고, 패션을 선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고, 부를 쌓은 성공한 여성이기도 했던 기생들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본다.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잡아내는 데 탁월한 저자 이수광식 묘사로 기생들은 지금까지의 선입견을 벗고 조선이라는 시대를 살다간 젊은 여성으로 복원되었다. 단양 기생 두향은 퇴계 이황과 시경의 시를 나눌 정도로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세종조의 궁중 악무를 유일하게 전승한 초요갱은 당시에도 예인으로서 대우를 받았다. 그렇기에 기생들의 이야기는 조선을 뒤흔들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들의 역사에서 지금껏 기생들의 이야기는 배재되고 소외되었다. 저자 이수광은 지배층인 사대부와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질곡의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의 기생들을 살피는 것은 조선의 여성사를 살피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생들의 모습과 성향은 지방에 따라 달랐고, 그 수는 생각보다 꽤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생생히 살아 숨 쉬었던 기생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이수광식 시각과 필체야말로 조선의 여인, 기생을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



사랑을 하는 여자가 세상을 뒤흔든다!

여자이면서 천민이었던 기생들이 학문깨나 읽는다는 사대부는 물론 왕까지 쥐락펴락했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특히 춤과 노래, 혹은 시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기생들은 당대에도 만인의 관심을 받으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그것은 그들이 규방여인들보다 자유롭고, 가슴에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유’를 사랑했던 기생들

“남자들을 내 치마 앞에서 무릎 꿇게 하리라” 한양 기생 초요갱

초요갱은 평원대군 이임의 첩이었으나 화의군 이영과도 정을 통했다. 소위 두 형제가 초요갱과 간통을 한 것이다. 그러나 초요갱은 두 형제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계양군 이증과도 사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증 역시 세종의 아들이오, 수양대군의 이복동생이었다. 초요갱은 마음이 가는 대로 많은 남자들과 교류했다.

“임금도 나를 소유하지 못한다” 보천 기생 가희아

1407년(태종 7) 한양 저자에서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백주대낮에 병력까지 동원되어 저자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이 패싸움은 기생 가희아를 차지하려는 금군총제 김우와 이를 저지하려는 대호군 황상이 벌인 치정싸움이었다. 이 사건으로 가희아를 첩으로 삼았던 황상은 파직되었고, 궁중연회에 동원되는 기생을 첩으로 삼은 많은 대신들이 탄핵되었다. 조정을 뒤흔들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던 가희아는 움직이지 못하는 꽃이 아니라 자유를 찾아 돌아다니는 나비 같은 여인이었다.



‘세상’을 사랑했던 기생들

“지키기 위해서라면 칼을 드는 것도 불사하겠다” 가산 기생 연홍

변경 지방의 기생들은 무예를 연마하여 사열을 하는가 하면 군사들과 사냥을 나가기도 하고, 외적이 침입하면 창을 들고 나가 싸우기도 했다. 가산 기생 연홍은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결사대를 조직하여 가산을 지켜냈다. 감히 기생의 업적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적의 기세에 맞섰던 그녀에게서 남성 못지않은 기개와 용기를 엿볼 수 있다.

“배고픈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나의 업이다” 제주 기생 만덕

제주 기생 만덕은 의술과 상술로 부를 축적했다. 옷 한 벌 버리지 않는다 하여 억척녀로 소문이 난 만덕은 제주도에 돌풍이 불어 백성들이 굶어 죽어나가자 전 재산을 들여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었다. 이후에도 만덕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중단하지 않았다. 제주도에서는 구휼미로 백성을 구제한 만덕의 공을 지금도 칭송하고 있다.



‘사랑’을 멈출 수 없었던 기생들

“젖가슴 하나를 베어 미망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단양 기생 두향

퇴계 이황의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은 단양 기생 두향은 이황과 시를 나누고,

풍류를 함께 했다. 하지만 이황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풍기로 발령이 나 떠나버렸다. 이제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이었지만 두향은 퇴계를 그리며 수절을 선택했다. 이황이 그리우면 강선대 위에 올라 울었다는 두향은 끝내 일편단심의 마음을 안고 강선대에 몸을 던졌다.

“어찌하여 여자로 세상에 태어나게 했습니까” 부령 기생 영산옥

관기는 관가지물(官家之物)이라 하여 거취를 옮길 수도 없었고, 첩으로 삼아 주지 않으면 기생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마음대로 수절을 할 수도 없었는데, 수절을 하기 위해서는 관장의 혹독한 벌을 견뎌내야 했다. 부령 기생 영산옥은 첫사랑 서시랑을 떠나보내고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절개를 지켜냈다.



조선 기생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여정

저자 이수광은 조선을 뒤흔든 기생들 이야기를 쓰면서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퇴계 이황과 단양 기생 두향의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 안동 도산서원을 찾았을 때는 때마침 매화가 피어 두향의 맑은 영혼을 떠올리게 했다. 조선의 기생들이 미모와 재능으로 화려한 꽃처럼 살았다고는 하나, 미처 피지도 못하고 꺾여버린 수많은 기생들을 잊을 순 없다. 아무나 꺾을 수 있는 길가의 꽃이라 하여 노류장화(路柳墻花)라 일컬어지던 수많은 기생들은 신분의 굴레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았다. 노류장화라는 말에는 기생을 하찮게 생각하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멸시와 밤마다 술과 웃음을 팔아야 했던 여인들의 가슴 저린 애환이 함축되어 있다. 어머니가 기생이었기 때문에 딸도 기생이 되어야 했던 숙명과 같은 삶, 기생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몸부림을 쳐도 남자들이 만든 신분의 족쇄는 풀 수 없었다. 기생들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잊고자 혼을 실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귓전을 암암하게 울리는 그녀들의 웃음소리와 탄식, 슬픈 노랫가락과 혼을 실은 춤사위가 떠올라 내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화려함 속에 가려졌던 기생들의 진짜 모습을 우리는 쉽게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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