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진에서 베이징 천단공원 나들이 솔새김남식
1997년 1월12일 일요일
오늘은 옌지예와 베이징에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회사에서 그와 같이 시내로 향했다. 그는 특별 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꼮 뻐스를 타고 다녔다. 늘 절약의 습관이였다. 2원짜리 뻐스는 나무 의자 이고, 3원짜리 뻐스는 푹신푹신한 비닐스폰지 의자로 된 뻐스였다. 그러나 그것도 다찌기고 헤저서 허름하고 때가 묻혀 있다. 중국 차들은 내가 볼 때는 모두가 허름한 자동차로 폐차직전이었다.
우리는 너무허세로 그저 풍족하게 살아 온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같으면 폐차장으로 갈 차 들이지만 이들은 아직도 10년을 더 사용 할 수 있다고 한다. 뻐쓰나 택시를 타면 모두가 털털거리며 잘도 간다. 자동차의 창틈에서 겨울 찬바람이 들어오고 했다. 문짝이 금방 덜어질 것 같고 바퀴가 급방 빠질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차는 천천히 잘도 달렸다. 아마 속도는 30km 정도 인 것 같았다.
빙장도 거리는 언제나 오늘도 만원이 였다. 우리의 서울 명동거리 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시내를 나와서 어디를 가나 오 가는 사람들틈에 치여서 돌아 다닐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시내를 쇼핑하기 위해 대부분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10km에서 또는 30km를 달려서 이곳까지 나온 것 이라고 한다. 하지만 먼길을 자전거로 일찍 귀가해야 되니깐 저녘해가 지고 밤이되면 거리는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단다.
옌지와 빙장도를 돌아 코오롱 고속뻐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군것질 할 것 을 사가지고 차에 오르니 한국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옌지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중에서 내게 잘 해 주는 편이였다. 그는 조선족이 아니며 자기는 중국사람 이라는것 을 언제나 강조했고 그것 때문 에 나랑 말다툼이 잦았다. 우리는 한민족으로써 같이 얼켜 살아야 한다고 그에게 강조 를 했지만 쉽사리 한국을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 한국놈들은 사기꾼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늘 머리속에 못 밖혀 있었다. 아마 한국 관광객들이 연변에가서 조선족을 상대로 사기행각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가끔은 한국을 이해하고 남북분단을 이야기 할 때는 마음이 통했다. 차는 어느 틈에 베이징시내를 들어서고 있었다. 창밖에는 흰눈이 샇여있고 을씨년스런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시외뻐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천단가는 뻐스로 갈아 탔다. 천단에 도착하니 엊그제 내린 눈이 수북히 샇여 있었다. 지난 여름에 구경을 다 했기 때문에 볼 것은 없었다. 그와 이리저리 돌아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의 첫사랑 이야기, 지금 남편과의 이야기, 그리고 연변에서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꿈많은 시절은 천진난만하게 자랐고 대학에서 약학을 공부 했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은 그와 짖궂은 장난을 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회사 출근 한다고 오늘 집을 나왔다고 한다.
우리는 천단공원에서 2시간을 돌아 다니다가 밖으로 나왔다. 이때의 시간은 오후2시를 지나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그는 내점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조선족이지만 집에서 거의 식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내 점심을
싸가져 오지를 못 했다고 한다. 그는 부엌 시설이 없는 방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우선 공원앞에 있는 KFC에 갔다. 약간은 싱거운 맞에 비위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햄버거를 시켜서 그것을 먹었다.
천천히 시내구경을 하다가 시외 뻐스를 타고 텐진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텐진의 네온불이 나그네를 슬쓸하게 하고 있었다. 그냥 헤어지기 서운해 찐엔창 앞에 있는 캬피쟌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어둠 침침한 그곳에는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KFC에서변변히 먹지 못하고 텐진에 오니 배고팠다. 그리고 빈속에 맥 주 두어 잔을 마시니 술이 올랐다. 어디를 가나 시내를 나오면 내겐 식사 문제가 제일 어려웠다. 9시쯤에 커피숖을 나왔다.
그리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시내에는 어듬이 내리는 빙장도 번화가는 도개비시장이 되어 있었다.
아마 갈길이 멀어서 있지 (자전거를 타고 가니 한시간 이상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 아니면 사기꾼이 많아서 인지 시장은 일찍 철수 한다고 한다. 그녀가 잡아 주는 택시에 올라 타서 택시기사에게 시칭카이파취”를 했다. 그는 무어라고 이야기 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난 그에게 ‘텐부동’을 하면 그는 외국인 인줄 알고 눈치를 챈다.
‘워 한꾸워’ 하였더니 아무 말없이 택시 핸들을 잡고 시내의 어둠 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상한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면 워쩌나하고 두눈을 똑 바로 뜨고 택시 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자주 다니는 해방로 길은 알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텐진대학 종합 병원 앞을 지나서 철길을 오르면 안심하고 눈을 조금 감는다. 서청개발특구의 네온불이 들어오면 다왔구나 하고 안심을 한다. 그리고 차비를 준비한다. 텐진시내에서 약 25Km 거리에 회사 숙소가 있기 때문에 밤에는 시골길 처럼 깜깜한 어둠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곳에는 가끔 나쁜 놈들이 많다고 했다.
사거리에서 ‘요까이’ 그리고 ‘쳄밴팅’ 하면 회사앞에서 차를 세워준다. 회사 숙소에 오니 아직도 들어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몇사람은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조선족이 경영하는 가라오깨에서 아가씨와 술 한잔하며 여흥을 줄기고 있나보다. 아래층 식당에 내려가 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다.
누구랑 베이징 갔다 왔냐고 나를 놀리고 있다.
천단공원앞에서 그는 2001년도에 업무차 한국을 다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