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해외여행

텐진 천진

시인김남식 2006. 12. 14. 21:20

텐진 출장 가는날  

 

1993년 4월15일 월요일
목적 없이는 개인적으로 갈 수 없는 나라 - 중국, 지금 그곳을 가기 위해 아침 6시부터 부지런하다

공산국가에 여행 갈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세상이 참 많이 좋아 젔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그것은 세계가 변하고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에 중국과 수교를 하여 지금은 여행이 자유로워졌다.

난생 처음가는 해외 출장이라 외국 풍경에 대한 호기심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서울에서 2시간 거리의 중국은 국내 인건비 상승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새로운 투자 대상국으로 많이 진출했다. 모든 문화의 전래는 중국에서 부터 우리에세 전해졌고 또한 역사의 시작도 중국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다.
우리는 중국을 대국으로 섬겼던 과거 역사에서 그들에게 좋은 인상은 없었다. 지금의 중국은 12억의 거대한 인구와 공산주의 체채로 국가 생활이 풍족하지 못하다. 얼마전 우리가 일본 기술의 영입에 의지했던 것처럼 중국도 주변국가의 기술투자를 받아 들여 그 들과 삶을 같이하고 있다.

 

필요한 여행 경비를 한화 10000원에 중국돈 100元의 인민화폐로 외환은행에서 교환 한 뒤에 사람틈에 끼여 출발 수속을 하였다. 그리고 11시 출발하는 대한항공에 탑승하여 중국으로 향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은 느낌이 달랐다. 이윽고 비행기는 서해 바다를 지나더니 어느새 텐진 공항에 내려 놓았다. 텐진의 국제공항 청사는 비좁고 초라 했다. 달라진 말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출국장에서 간단한 입국검사를 마치고 나오니 회사 직원이 마중을 나왔다. “고생이 많지요?”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며 반갑게 악수를 한다. 공항 대합실을 나오니 무수한 한문글자 간판들을 바라보니 지금 내가 중국 땅에 서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 이게 거대한 중국 이구나’ 하고 바라 보니 마음이 이상 하였다. 그 옛날 역사책에서 보았고, 그리고 TV에서 보았던 거리 모습과 차량들이 무척 초라하게 보였다. 회사로 가는 자동차에서 비치는 거리 풍경은 마치 60년대의 우리나라 옛날 시골의 면 소재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차가 지날 때 마다 뿌연 먼지가 뒤를 따라 왔다. 천진시 서청 개발특구에 자리 잡은 텐진삼화는 새로 신축한 건물로 깨끗 하였다. 텐진삼화의 직원은 중국인 500명, 한국인 16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텐진시는 중국에서 상하이, 뻬이징 다음으로 900만의 대도시 라고 한다. 특히 텐진은 산이 없는 막막한 평원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땅이 넓어서 도로 사정은 비교적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시내를 중심으로 하여 3개의 외곽 순환선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땅의 지표가 4m라 물은 거의 흐르지 않는다고 하며 이곳에 먼저 와 있는 직원들이 묻지도 않는 여러 이야기를 해준다. 세찬 바람과 함께 거리는 오가는 사람이 없었서 을씨년스러웠다. 공산국가의 특이한 빨간 벽돌집, 그리고 건물에는 한문 간판과 중국 오성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나는 사람들 모습에서 웬지 이상하고 측은한 느김이 내 가슴 속에 흐르고 있었다.

년 강수량도 500mm 정도로 매우 건조 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동차가 지날 때 마다 비포장도로 아스팔트 길에서 뽀안 먼지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거대한 중국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너무 않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차차로 중국을 배워가고, 동북아의 동반자로 이해를 하여야 한다.

 



4월 16일 화요일 *
숙소로 정해 준 중국 초대소(텐진대학 외국인 기숙사)는 예전의 우리나라의 여인숙처럼 시설은 아주 허술했다. 저녁을 먹고 처음으로 시장을 구경 나갔다. 시장 사람들은 너무 초라 해 보였다. 마치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곳 처럼 느꼈고 물건도 볼품이 없었으며 특히 한국에서 보지 못 했던 신기한 것 들이 많았다. 첫 눈에 들어 오는 것은 시장 좌판들이 무척 엉성해 보였다.

노점상에 눟여 있는 것은 먼지와 때가 잔득끼여 있었서 음식들이 불결해 보였다. 더구나 남루한 시장 사람들 모습에서 어떻게 이들이 살아 가고 있을까, 그것이 몹씨 궁금했다. 시장을 돌아 나오는 길에서 거리 이발사를 만나게 되자 낯선 느낌이 들었다. 가위와 앞치마 그리고 의자가 전부다.

요금은 1.5원, 한국돈 150원 이란다. 숙소에 들어와서 4원짜리 맥주를 처음으로 마셨는데 시원해서 그런지 맞을 모르겠다. 이튼날 아침 출근 길에서 자전거 행렬은 한국에서 볼수 없는 새로운 풍경 이였다. 더구나 출근 행렬이 있는 곳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장수가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마 삶의 경쟁은 어디를 가나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겼다. 대부분 부엌이 없는 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식사를 밖에서 먹는다고 한다. 더구나 세차게 부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얼굴에는 망사 벙거지(양파망)를  쓰고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 사는 이들은 삶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자전거를 타고 빨리 가지도 않고 그저 천천히(만만디) 하염없이 그들은 어디론가 돈 벌러 가고 있었다. 시내의 모든 도로는 평지였다. 오르막 길도 내리막 길도 없어 자전거 타기에는 편한 것 같았다.

자전거와 차 그리고 사람들과 뒤엉켜 큰 길이건 작은 길이건 무질서였다. 어떤 길은 중앙 차선이 없었도 서로 충돌하지 않고 서로 잘 피해서 길을 건너 가고 있었다. 그저 평화스런운 삶이였다. 아마 새로운 모습들이 나를 다른 세상에 온 것 느끼게 하였다. 어쩌면 외국인이 한국에 처음 왔다면 그리 할 것 같다. 회사에 들어와 현장에 들어서니 모든 사람마다 각자 물통이 있는 것을 보고 또 한번 놀랬다. 그들은 날씨가 무척 건조 해서 끓인 찻물을 작업 중에도 수시로 물을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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