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좋 은 글

자식들에 짐이 되는 빈곤의 노후

시인김남식 2013. 6. 22. 12:41

#1. 지난해 6월 인천시 남구 한 주택가에서 60대 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신 옆에서는 가지런히 놓인 유서가 발견됐다. A4 2장짜리 유서에는 '무엇을 향해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는 삶에 대한 회한과 생활고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노부부의 수입은 1인당 7만5000원씩 월 15만원인 노령연금이 전부였다. 통장 잔액은 3000원. 생활이 쪼들리면서 보증금 800만원짜리 전세는 보증금 500만원, 월세 30만원인 방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증금도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 300만원으로 줄었다.

유서 옆에는 신분증과 휴대전화, 통장, 시신기증서약서가 놓여 있었다. 이들 부부는 "몇 년 전부터 동반자살을 준비했다. 시신은 의대 해부용으로 기증한다"고 밝혔다. 5만원짜리 지폐 10장도 놓여 있었다. 노부부의 장례비용이었다.

#2. 지난해 10월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 치매를 앓던 아내(74)가 남편 B(78)씨에게 "바람 피운 거 다 알고 있다", "넌 부모 없이 자란 놈" 등 폭언을 쏟아냈다. TV 리모컨, 옷걸이로 남편을 때리기도 했다. 2년 전부터 치매를 앓던 아내는 병이 악화되면서 막말을 해댔다. B씨는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아내의 목을 졸랐다. 함께 살던 둘째 아들 부부와 손자는 집을 비운 상태였다.

범행 직후 B씨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엄마를 죽였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했지만 집에 돌아온 아들이 막았다. B씨는 아내와 하루 종일 지내며 밥을 손수 먹이고 산책을 시키는 등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다. 1년 전에도 아내를 돌보는 것에 지친 그는 아파트에서 투신하려 했지만 아들이 말려 그만둔 적이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65세 이상 노인은 약 600만명에 이른다. 2000년 노인 인구 340만명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황혼자살과 간병살인, 학대, 방임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자살률 1위다. 2011년 전체 자살자(1만5906명) 중 27.7%(4406명)가 65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자살률은 10만명당 79.7명으로 전체 평균(31.7명)의 2.5배다.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보다 낮아지는 세계 추세와는 반대다. 증가 속도 또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노인자살률은 2000년 35.5명이었지만 2010년 81.9명으로 10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노인자살의 주요원인은 경제적 빈곤과 신체적 질병, 사회적 고립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독거노인은 2000년 54만3522명에서 2010년 105만5650명으로 10년 사이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월소득이 83만원이 안 되는 노인은 10명 중 7명꼴(67.3%)이다.

최근에는 노인들이 자식에게 부담 되기 싫다며 목숨을 끊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적인 현상이며, 2020년 베이비붐 세대가 65세에 진입하면 노인자살률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선우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낮은 자아존중감과 생명존중의식이 높지 않은 것도 노인이 자살을 택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노인 인구 증가에 따라 부양 부담이 증가하면서 방임하거나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학대문제도 생겨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12년 노인학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학대로 판정된 신고건수는 3424건이다. 특히 부모나 배우자를 노인이 학대하는 '노(老)-노(老) 학대'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노인을 학대한 사람 중 60세 이상은 1314명으로 2011년 1169명보다 12.4% 증가했다.

간병에 지친 나머지 부모나 배우자를 살해하거나 자살하는 '간병살인·자살'이라는 비극은 고령화사회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간병살인·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연간 40∼50건의 간병살인이 발생하면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예방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노인질병과 관련한 사건·사고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고령화사회의 문제는 경제·사회적인 문제가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형제자매가 많고 친인척이 함께 노인을 돌보던 예전에는 부양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저출산과 핵가족화로 부양부담이 커졌고, 자녀나 배우자 1∼2명이 부양을 포기하면 노인이 방임상태에 놓이는 상황이 됐다. 무조건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부양의무감도 사회의식이 변화하면서 예전처럼 강하지 않은 실정이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부양비용 증가는 저소득 가정 내 갈등을 유발하게 되고, 가정해체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령화 대응은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건강·고용·사회적 지원 등 우리나라 고령화 대응 지수는 28.9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국가 지원대책과 제도가 뒤따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노인문제를 커버해주는 사회체계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며 "노인문제를 사회문제라고 얘기하지만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미약하다"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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