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군 김균선생 묘소 솔새김남식
소재지 :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능평리 산89-1
경기도기념물 제105호로 지정
조선 개국공신 계림군 묘-1987년 2월 12일 경기도기념물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서울역에서 외국어대가는 1150번 버스를 타고 수레실 전원교회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이정표를 따라 약 3키로 걸어야 한다. (새빛전원교회)
이정표를 따라 언덕길을 한참 오르면 불국사 절이 보인다
절을 지나서면 새빛교회가 보이고 계림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계림마을은 오래전에 조성된 20여호의 전원주택단지로 원래는 수레실 마을이었으나 계림군선생의 묘택을 마을지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약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마을 뒷쪽에 계림군 김균선생의 묘가 있다
마을은 탈렌트 백일섭씨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마을은 비교적 조용하고 깨끗하다 오르쪽 끝으로 묘가 보인다
묘가 있는 언덕배기는 겨울에는 아이들이 눈썰매를 한다는 소리를 주민들로 부터 들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반측 절반 이상이 잔디가 헐어 있어서 토사가 흘러 내렸다, 괸리가 필요하다
묘역은 곡담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은 앞부분에 장대석으로 호석(護石)을 쌓아 놓았으며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長明燈)이 있다. 상석과 장명등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문인석 2쌍, 석양(石羊)과 망주석이 1쌍씩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의 비문은 송병선(宋秉璿)이 찬(撰)하고 윤용구(尹用求)가 글을 쓰고 김영한(金寧漢)이 전액(篆額)을 썼다고 한다.
이 신도 비문에 의하면, 묘역이 실전(失傳)되었다가 이 묘역이 있던 고을 유수(留守)로 온 후손 김사목(金思穆)이 수소문해서
찾았다고 하며, 현재 묘역의 건립시기는 18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김균선생의 묘 윗쪽에 있는 봉분이 하나 더 있는데
아마도 선대(부친)인 듯 하다
석물 중 상석·향로석·장명등은 근래에 새로 설치한 것이다. 상석의 왼쪽에는 묘비가 있으며, 묘역 앞 약 80m 지점에는
1905년 건립한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김균선생의 묘에서 약 3키로 떨어진 불곡산 기슭에 김자수선생의 묘가 같은 능선에 있으며 한 파트 떨어진 곳에는 정몽주선생의 묘가 있다
고려가 망했다고 김자수선생은 자결했다하여 忠을 김균선생은 이성계의 개국공신으로 배신이라고 하는데
과연 누가 옳은 일은 했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계림군 김균(1341 - 1398)
경주김씨 계림군파의 파조로서 고려초 대장군인 휘 순웅(장군공파)의 13세손이며, 경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43세손이다.
고려 공민왕 9년(1360년)에 성균시에 합격하였고, 친구인 조준의 천거로 입조하여 공양왕 때에 전법판서를 지냈고
조선이 개국한 뒤 태조 이성계를 추대한 공로로 개국공신 3등 15명 중 제2인으로 정해져
중추원부사, 익대개국공신, 계림군에 봉해졌으며
벼슬은 보국숭록 좌찬성에 이르렀고, 돌아가신 뒤는 제숙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는데, 공의 가족 중에 조선의 개국공신이 많아
조선조 건국과정에서 많은 공을 세웠으며, 그 후손이 번성하여 경주김씨 중 중요한 파보를 이루었다.
묘소 아래쪽으로 보이는 마을이 고급전원 주택단지 계림마을이다
참고로 筆者는 植자 돌림으로 경주김씨 계림군파 21세손이다
찾아가는 방법
분당 서현역 2번출구 건너편에서 522번 능평1리 마을회관앞 종점하차
또는 서울역 -> 외국어대 1150, 강남역에서 1150번를 타고 오포 수레실전원 교회앞에서 하차 (약 45분 소요) 후
522번 환승하거니 김균선생 이정표(1.5키로) 를 따라 30여분 도보를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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