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시호에 태종으로 불리워지는 이유
는 '대왕의 꿈' 에서 주인공 김춘추는 태종 무열왕으로 불리워지는데
여기서 태종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왕에게 붙이는 종,조와는 분명 틀린 의미인 것 같다
.
태종이라는 시호는 나라의 기틀을 다진 왕에게 주로 붙습니다.
그래서 태종이라는 시호는 주로 2, 3대 왕에게 많이 붙는다.
.
무열왕의 업적을 보자면, 당과의 동맹을 성사시키고(왕이 되기 전이지만), 백제를 멸망 시켰으며,
왕권을 강화시키고, 무열왕계의 왕통을 새로 세웠다.
무열왕계 왕통을 새로 세웠다는 것은, 사실 그 전까지 신라의 왕은 세습이긴 하지만
강한 힘은 없었다. 그러니까 왕위가 세습되긴 했지만,
왕이 자기 맘대로 자기 아들에게 계속 이어주지는 못했다는 뜻으로 그 전의 계보를 보면
아들에게 이어졌다 해도 다른 왕족의 힘이 강하거나 왕비의 힘으로 세워진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무열왕 이후에는 아들대로 왕위가 문제없이 세습되었다.
법흥왕이나 진흥왕이 왕권을 강화시켰다고는 하지만, 무열왕은 이런 의미에서 왕권을 다시 강화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업적은 당시까지 신라의 왕들 중에서는 최고의 업적이라고 할수 있다.
그래서 무열왕에게는 무열이라는 시호 외에 태종 이라는 묘호가 붙여진 것
고려나 조선 건국왕에는 태조 왕건, 태조 이성계라고 부르는데
태종 이방원과 다른 태종이 아니라 같은 의미에서의 태종이죠.전혀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태종이방원이 친인척 공신들 형제들까지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을 중심으로 권력에 입성하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때문이다.
권력을 쫓아가는 불나방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 한다면 얼마든지 몰려 들어도 대환영이겠지만 문제는 오로지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온갖 술책이 동원되어 국가의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 대신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인사권이 이루어졌는데 친인척과 공신들을 중심으로 파벌을 만들고 그 주변에 아첨하는 인사들이 벼슬을 독차지하는 폐단이 발생했다. 이는 곧 거대한 세력이 되어 왕권마저 무력화시키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친인척과 형제들 심지어는 자신의 부인까지 과감히 문책하지 않으면 왕권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임금은 어쩔수 없이 극약처방인줄 알면서도 극단적이고 강력한 처벌을 택하게 된 것이다. 왕은 울면서 자신의 친인척을 내칠 수밖에 없었고 왕의 과감한 정책은 공평한 정치와 연결된 것이다.
역대 왕들을 살펴보면 친인척에게 농락당한 왕중 과연 제대로된 정치를 펼친 임금이 어디 있었던가,
현대사의 대통령제도에서 친인척비리를 보면 쉽게 이해 할수 있다
오늘날 역사가들이 태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인물들을 과감히 배척하며 백성은 곧 하늘이라는 생각으로 올바른 정치를 펼치는데 사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이끌어 나갈 시대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시대보단 더 안정된 시대이길 바랬던 것이다
태종이 없었다면, 행여나 태종이 유약하고 영향력 없는 임금이었다면 세종의 태평치세는 결단코 이루어 질수 없었을 것이라 한다. 태종은 그 자신의 시대에 왕조의 불안요소인 공신들과 권신들의 철저한 척결과 숙청, 사회의 불안해소와 기본 제도 정비에 혼신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안정적인 왕조의 토대위에서 곧 세종의 태평치세 업적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난다고 그런 태종의 뜻을 받들어 그 아들인 세종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태종(太)이란 시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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