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경주김씨

판윤공휘 인민 약사와 묘

시인김남식 2008. 12. 18. 14:10

한성판윤공 휘 인민의 약사 

한성판윤공(휘 인민:仁民)은 경주김씨 계림군 후 한성판윤공파의 파조로써

고려초에 응양군과 용호군의 이군을 거치고 좌우위, 신호위, 흥오위, 금오위, 천우위, 감문위등

육위의 장군을 거쳐 대장군이 되어 안서홀성주, 지금의 황해도병마사를 지내신

순웅(順雄)장군의 15세 손이며,

 

고려말 밀직부사를 역임하다가 1392년(공양왕 임신) 7월 개성 수창궁에서 조준, 정도전, 배극렴등

중신들과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자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역성혁명을 이룩하고

조선 개국공신 계림군(雞林君)으로 녹훈(錄勳)되고

보국숭록대부에 승게하여 문하찬성사 의정부 좌찬성에 제수되고 태상사(太常寺)에서

집심극장왈제(執心克莊曰齊) 강덕극취왈숙(剛德克就曰肅)이라 제숙공(齊肅公)이라 시호가 선법되신 조선조

개국공신 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 계림군(휘 균)의 3세손으로,

부(父)는 계림군(휘 균)의 둘째 아드님이신  병조판서공(휘 중성:仲誠)이시다,

  
공의 장형(長兄)은 세종 정축년에 문과에 급제하시어 통정대부 판사제 감사를 지내신 감사공(휘 안민:安民)이시며,

공의 둘째형은 태조 7년(서기 1398년)에 탄생하시어 세종 5년(1423년)에 문과에 급제하시고

역검관 대사성 부제학을 지내신 부제학공(휘 신민:新民)이시다.

  
공은 셋째 아드님 으로서 초휘(初諱)는 천민(天民) 이시며

태종 원년(서기 1401년)신사년 11월 26일 출생하시어 천성이 인자하시며 문필이 뛰어나시어

세종 17년(서기 1435년) 진사시에 급제하시고 동 18년(서기 1436년)에 문과에 급제하시어

자헌대부예문관 대제학겸 한성판윤으로 재임중 세조의 실정으로 단종복위의 부당성을 직언(直言)하여

불의(不意)에 승복치 아니하고 항시 정의에 앞장서서 검소를 생활신조로하며

목민정치에 노력하여 만백성들의 추앙을 받던중,

세조의 미움을 받고 간신들의 모략으로 삭탈관직하여 유배까지 거론되었으나 평소 청렴결백한

청백리로서의 공(公)의 공적으로 유배를 면하고 심산유곡인 상주목사로 좌천되시었다.

 

만약에 불응(不應)하였다가는 언제 세조에 의하여 극형을 받을 처지에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데는

서울과 지방이 어디있겠느냐 하시면서 임지인 상주에 부임하시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기아(饑餓)에 헤매일 때 조세를 감하여 주는등 혈민 선정으로 정사(政事)를 하시다가

과만(瓜滿)를 못채우시고 세조 1년(1456년) 임지인 상주에서 향년 56세를 일기로

타계(他界)하시었다.

 


공의 타계(他界)로 상주 고을에서는 경천대노(驚天大怒)하여 동헌(東軒)뜰에는 조문객이 십리는

뻣쳣다하며 재직중에 안민선정(安民善政)하였으므로 고향 선영하(先塋下)로 안장하려 하였으나

많은 백성들이 생전의 은덕에 감사하여 시신이라도 상주땅에 영면(永眠)하시도록 간청하므로

 묘택을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이소리 애전동(쑥밭골)에 안장하였으며

슬하에는 6남2녀를 두었는데 초비(初妣) 남양홍씨(南陽洪는氏) 직장(直長) 홍우성(洪禹成) 녀(女)로써

 

4남 1녀를 두셨으니 첫째는 효경(孝卿)으로 훈련원(訓練院) 정(正)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정삼품:正三品)을 지내시고

작고하신후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증직(贈職)받으셨으며

둘째는 춘경(春卿)으로 신사년(서기1461년) 문과에 급제하시고 경인년(서기 1407년) 예조정랑 (정오품)을 지내시고

갑진년 (서기 1484년)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으로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정삼품:正三品)를 지내셨으며

 

 

셋째는 정경(正卿)으로 충살교위(忠殺校尉)(정오품:正五品)을 거쳐 사직(司直)(정오품:正五品)을

지내시다가 작고하신후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증직(贈職)받으셨으며

째는 하경(夏卿)으로 숭록대부(종일품)좌찬성(左贊城)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종일품:從一品)를 지내시고

세자시강원(世子侍 講院 이사(貳師)(종일품:從一品)을 지내셨으며

 

다섯째는 제경(悌卿)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교서관판교(校書館判校)(정삼품:正三品)을 지내셨으며

여째는 서경(恕卿)으로 계미년 (서기 1463년) 문과에 급제하시어

어모장군(御侮將軍)(정삼품:正三品)을 지내시다가 작고하신후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증직(贈職)되시었으니

다섯째 여섯째는 후실(後室) 장수황씨(長水黃氏)에게서 출생하였으며,

공의 후손들은 대대로 명문가의 정통을 이여왔다. 

그후 공의 묘소는 536년간의 상주 애전동(艾田洞) 안장되었다가 1990년 6월 28일 6파 문중의

결정으로 지금의 충북 청원군 미원면 미원리로 이장하여 영세시령토록 했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 미원리 40-24 경주김씨 계림군 한성판윤공파 제실  

 

 

 

 

 

 

미원면 미원리 산14-1  한성판윤공(仁民) 묘소  

 

 

 

위치=  미원삼거리 미동산 수목원부근

 

 

균 후손 계통도

 

 

 

 

 

                                     균 (계림군파 파조)        계림군파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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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성                                   중성                        계성                - 계림군파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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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영부     영길          안민       신민      인민     종순     종효    종우      - 계림군파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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