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일반상식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

시인김남식 2010. 3. 21. 14:47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

 

엄밀히 따져, 한(韓)민족은 한 핏줄이 아니며 우리나라의 성씨는 275성이고, 본관은 3349본이다.

유사 종족, 동일 언어권을 갖고 있는 민족 연합. 한반도에는 옛부터 130 성씨는 귀화 성씨이다
특히, 고려시대에 가장 많은 외국인들이 귀화. 외국인이 귀화하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시대초
그 당시는 주로 수(隋), 당(唐)의 중국인이었다.
고려시대 귀화인은 송나라 사람을 비롯 여진, 거란, 베트남,몽골, 위구르, 아랍
이조시대에는 명나라와 일본인 등 많은 외국인이 귀화하는데 동기는 대체로 정치적 망명,

표착(漂着), 종교홍포(宗敎弘布), 투항(投降), 구원(救援), 상사(商事), 전란피란, 범법도피,

정략결혼, 왕실 시종관계(侍從關係) 등 귀화인들은 대개 당시 조정으로부터 융숭한 대우 왕으로 부터

성명을 하사 받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 외래 귀화 성씨를 크게 나누면 중국계, 몽골계, 여진계, 위구르계, 아랍계,
베트남계, 일본계의 등으로 분류 할 수 있다.

삼국시대 이전 귀화성씨
柳(문화 유씨.고조선) 車(연안 차씨.고조선) 全(천안 전씨 등 28본.고조선)
趙(평양 조씨 등 5본. 고조선)  南宮(함열 남궁씨. 기자조선) 景(태인 경씨.기자조선)
琴(봉화 금씨.기자조선)  强(충주 강씨.기자조선)  魯(밀양 노씨등 9본.기자조선)
弓(토산궁씨.기자조선) 韓(청주 한씨.마한)  奇(행주 기씨.마한)
鮮于(태원 선우씨. 마한) 徐(달성 서씨 등 10본.마한)  余(의령 여씨.마한)
徐(남양 서씨.당에서 신라) 徐(당성 서씨.신라) 徐(절강 서씨.명나라-정유재란) 
李(고성 이씨.BC108년) 羅(금성 나씨 등 15본.BC 200) 張(울진 장씨.전한) 蘇(진주 소씨. 원삼국) 

삼국시대 귀화성씨
都(성주도씨.고구려) 黃(평해황씨 등4본.28년) 姜(진주강씨 등 3본.598)
金(진도김씨.265년) 庾(무송유씨.4세기) 孫(안동손씨.5세기) 

통일신라 귀화성씨
李(연안이씨.660년) 丘(평해구씨.663년)  嚴(영월엄씨.750년께)  盧(광산노씨 등 9본.755년)
白(수원백씨.780년)  周(상주주씨 등 2본. 786년)  南(의령남씨 등 17본.786년)
皇甫(영천황보씨.신라말) 安(죽산안씨 등 5본.807년)
張(안동장씨 등 48본.8세기)  呂(함양여씨 등 4본.877년)  孟(신창맹씨 등 2본)
崔(충주최씨.889년) 廉(파주염씨.907년)  李(성주이씨.미상)  辛(영산신씨 등 2본.미상)
成(창녕성씨.미상) 吳(해주오씨 등 14본.950년께) 

당나라 8학사 귀화성씨.
元(원주원씨.643년) 魏(장흥위씨.649년) 洪(남양홍씨.649년) 房(남양방씨.649년)
徐(남양서씨.649년) 邢(진주형씨.649년) 方(온양방씨.669년) 卞(초계변씨.743년)
公(김포공씨.763년) 諸葛(남양제갈씨.836년) 林(평택임씨 등 8본.840년) 殷(행주은씨.850년)
司公(효령사공씨.897년) 宋(남양송씨.926년) 陸(옥천육씨.927년) 玉(의령옥씨. ?)
吉(해평길씨 등 2본. ?) 田(남양전씨 등 2본. ?) 

고려시대 귀화성씨
李(태안이씨.927년) 尹(무송윤씨.960년께) 韋(강화위씨.960년께) 表(신창표씨.960년)
連(전주연씨.고려 초) 禹(단양우씨.고려 초) 任(장흥임씨.정종) 池(충주지씨.960년)
劉(거창유씨 등 4본.고려 초) 杜(두릉두씨.1004년) 牟(함평모씨.현종 때)
李(안성.문종 때) 愼(거창신씨.1068년) 蔣(아산장씨. 예종 때) 鄭(서산정씨.예종 때)
沈(풍산심씨.1110년) 余(의령여씨.1120년) 毛(함평모씨(광주).인종때)

郭(현풍곽씨.인종 때) 具(능성구씨 등 18본.인종 때) 鞠(담양국씨.인종때)
夏(달성하씨. 인종 때) 宋(여산등4본.인종때) 魚(함종어씨.고려 중엽)
閔(여흥민씨.고려 중엽) 簡(가평간씨.의종)

于(목천우씨. 고려중엽) 桂(수안계씨.고려중엽) 章(창녕장씨.고려 중엽)
李(태원이씨.고려 중엽) 伊(은천이씨.고려 중엽) 陳(여양진씨 등 6본.고려중엽)
葉(경주섭씨.고종) 賓(수성빈씨.충렬왕 때)

朱(신안주씨 등 4본.1213년) 宣(보성선씨.1382년) 唐(밀양당씨.고려 말)
李(상산.고려 말)  明(연안명씨.1371년) 昇(창평승씨.1371년) 睦(사천목씨.고려) 墨(광령묵씨.고려)
凡(안주범씨.우왕 때) 燕(곡산연씨.고려) 芮(의흥예씨.고려) 陳(양산진씨등2본.공민왕)
秦(진주진씨.고려) 溫(금구온씨 등 2본.고려 말엽) 尙(목천상씨.미상) 


몽골계 

연안 인씨(延安 印氏)
시조 인후는 1275년 제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귀화. 평양군, 자의도첨의사사를 거쳐 검교정승을 지냈다.
아들 인승단이 충목왕 때 좌정승으로 연안부원군에 봉 

여진계 : 청해 이씨(淸海 李氏)
일본계 : 우록 김씨(友鹿 金氏 : 사성 김해 김씨)
위그루계 : 경주 설씨(慶州)
원효대사 아들 설총이 시조로 되어있는 경주 설씨. 신라 왕실에서 경주 설씨를 하사받은 위구르 귀화인. 

아랍계

덕수 장씨(德水 張氏)
평택시 팽성읍은 600년전 고려에 귀화한 아랍인 마을. 고려말 의랑 벼슬을 지냈던 덕수 장씨의 중시조 장우

아직까지도 팽성읍의 주민 70%는 덕수 장씨인 집성촌. 이조로 정권이 바뀌어도 고려를 향한 충절을 지킨 가문. 

베트남계

화산 이씨(花山 李氏)
13세기 초 고려 고종 때 안남국(安南國. 현 베트남)의 왕 이천조가 트란 왕조에게 권력을 빼앗기자

둘째 왕자 이용상 1226년(고려 고종 13년) 배타고 황해도 옹진군 화산으로 피난.
고종은 이를 가상히 여겨 화산군에 봉하고 그곳을 식읍으로 하사하여 화산 이씨가 유래.
국수, 쌈, 목기.등 한반도 문화에 큰 영향력. 
밀양 대씨는 패망 발해 후손들이 밀양에 정착. 

희귀 귀화성씨 대부분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있는 성씨로 천녕 견씨(川寧 堅氏)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왕건이 후백제 견훤의 아들 신검을 토벌할 때 고려 대상(大相) 견권을 시조로 모시고 있었다.
아자개를 시조로 모시는 견씨 견훤을 시조로 모시는 견씨 등.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녹동서원 옆 김충선 기념관(임진왜란 당시 귀화한 왜장).
희귀 성씨 중에는 옛 외국 왕족의 성씨도 많다.
개성 내씨(開城 乃氏)는 원래 개성 왕씨였는데, 이조 개국후 탄압을 피해 개성 내씨로 바꾼 성씨.
밀양 대씨(密陽 大氏)는 발해의 국성(國姓)에서 유래. 시조 대중상(大仲象)은 그 아들이 대조영(大祚榮)이다.
발해가 망한 후 그 후손이 경남 밀양에 정착한 귀화성씨.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 있는 귀화 성씨로 개성 노씨 시조 노은경(路誾儆)은 원나라 한림 학자
고려 공민왕 때 노국대장 공주를 따라와 개성에 정착했다
강음 단씨(江陰 段氏)의 시조 단희상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병으로 왔다가
이조에 귀화해 강음에 정착한 귀화 성씨.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加藤淸正)의 부장 김충선(金忠善) 사야가는 귀화 후 선조로부터 김충선이란

이름을 하사받고 '진주 목사' 장춘점(張春點)의 딸을 아내로 맞아 들였다.
연안 인씨(延安 印氏) 시조 인후는 몽골인 아들 인승단이 충목왕 때 연안 부원군에 봉.

온양 방씨(溫陽 方氏) 중간 시조로 알려진 방운 고려 성종 때 온수(온양)군에 봉해지자 온양을 본관
남양 방씨는 고려 때 벽상공신을 역임한 방계홍을 1세 개성 방씨도 고려 때 원나라 노국 공주를 따라 온 방두현
각각 방씨 시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천계는 아니다.
지씨의 대표격인 충주 지씨(忠州 池氏) 지용수(池龍壽)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일등공신 책록

두 글자 이상을 쓰는 복성(複姓) 중 남궁(南宮) 독고, 사공(司空), 선우(鮮于) 제갈(諸葛) 황보(皇甫)
그 외 51명의 연안 단(單)씨와 36명의 한산 단(端)씨 등 교동 뇌씨(喬桐 雷氏)는 강화도 교동이 연산군을 비롯해
여러 선비들의 귀양지였다는 점에서 귀양 갔던 선비의 후예.

고구려 고씨(高句麗 高氏)· 백제 여씨(百濟 餘氏) · 신라 김씨(新羅 金氏) 주류.
고구려는 을(乙)·예(禮)·송(松)·목(穆)·우(于)·주(周)· 마(馬)·손(孫)·동(董)·예(芮)·연(淵)·명림(明臨)·을지
백제는 사(沙) · 연(燕)·협(협)·해(解)·진(眞)·국(國)·목(木) 묘(苗)·왕(王)·장(張)·사마·수미(首彌)·고니(古이)·흑치(黑齒) 

조선시대 초기에만 만해도 성씨가 있는 양반은 10%조선시대 중기에 들어와 양반이 족보를 가지게 되면서

평민들도 구전 자료에 의하여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토착민들은 지역 별 동일 씨족으로 족보를 가지게 되었다.
집성촌을 이루지 못하고 생활한 유랑민이거나 원래 천민은 성씨없이 돌쇠,떡쇠, 개똥이, 삼돌이 등
성씨 없이 이름만 불리웠는데 조선후기에 양반 도움으로  성 하나 만은 가지게 되었고. 1909년 일제가 민적법 시행시
성씨가 없던 천민들에게 원하는 성씨의 호적을 일제가 주었다.
그 때 가장 인기 있던 성씨가  "김이박 등.  그래서, 유명한 성이 더욱 흔해지게 된 것.
일제가 성이 없던 밑바닥 천민(노비)계층에게 유명 성씨의 호적을 준 것은 조선 양반성씨들이
씨족별로 단결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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