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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밀이 수건 최승호

시인김남식 2010. 5. 11. 11:06

 

때밀이 수건 - 최승호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무명(無明)은 또 얼마나 질긴지

돌비누 같은 경(經)으로 문질러도

무명(無明)에 거품 일지 않는다.

주일(主日)이면

꿍쳐둔 속옷 같은 죄들을 안고

멋진 옷차림으로 간편한 세탁기 같은 교회에

속죄하러 몰려가는 양(羊)들.

세탁비를 받으라, 성직자여

때 밀어 달라고 밀려드는 게으른 양(羊)떼에게

말하라, 너희 때를 이젠 너희가 씻고

속옷도 좀 손수 빨아 입으라고.

제 몸 씻을 새 없는 성자(聖者)들이 불쌍하다.

그들의 때 묻은 성의(聖衣)는 누가 빠는지.

 

죽음이 우리들 때를 밀러 온다.

발빠지는 진흙 수렁 늪에서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진탕 놀다온 탕아를

씻어 주는 밤의 어머니,

죽음이 눈썹 없이, 아무 말 없이

우리들 알몸을 기다리신다.

때 한 점 없을 때까지

몸이 뭉그러져도

말끔하게 때를 문지르고 또 문지르는 죽음,

죽음은 때를 미워해

청정한 중의 해골도 씻고 또 씻고

샅샅이 씻어 몸을 깨끗이 없애 버린다.

그렇다면 죽음의 눈엔 온몸이 다 때란 말인가?

 

- 시집 <얼음의 자서전> (세계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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