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카페가요

슬픈인연 나미

시인김남식 2020. 4. 27. 09:52

슬픈인연 - 나미 

 

멀어져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 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달콤했었지 그 수 많았던 추억속에서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리 어떻게 잊을까
아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거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달콤했었지 그 수 많았던 추억속에서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리 어떻게 잊을까
아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거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슬픈인연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박건호

 

1984년쯤이다

가수 나미의 매니저 이영달 씨가 멜로디 하나를 들고 왔다.

가사를 붙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건네준 카세트에는 이미 반주 음악이 담겨 있었고 악보도 깨끗이 베껴져 있었다.
"이 노래는 일본 K레코드사와 2개 국어로 동시에 발매 될 계획이니까 신경 좀 써주세요.”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빈 악보를 받아든 내 심정은 막막하기만 했다.

멋진 가사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세트에 담긴 반주 음악을 들어보면 근사한 내용이 떠오를 것 같은데

오선지 위에 연필을 갖다대면 생각이 날라가 버린다.

더구나 작곡가들은 가사 쓰는 사람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우리 말의 흐름을 무시할 경우가 많은데 그런 멜로디에 자연스러운 구절을 붙이기란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아,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거야
― ‘슬픈 인연’ 중간, 브릿지 부분

첫 마디 ‘아’ 부분이 네 박자고 네 마디 후에 음이 또 네 박자자다.

이 네 박자가 각기 한 음으로 독립적 단어로 떨어지는 것이 노래의 흐름상 자연스러운데

우리나라 말 중에 한 자로 떨어지는 단어가 몇 개인가.

바로 이 구절에서 나는 내가 쓰려고 하는 단어와 멜로디의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시켜야만 했다.

우선 한 자로 떨어지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고작 ‘나’ ‘너’ ‘저’ ‘그’…… 등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말을 붙여 보았자 문장 흐름이 연결되지 않았다

 

억지로 문장 흐름을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멜로디에서 주는 음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 할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작곡가가 멜로디를 조금만 바꾸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곳이

멜로디의 클라이막스라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고민을 더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감탄사였다.

감탄사는 잘만 사용하면 문장 흐름과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 더욱 감흥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나의 곁으로 다시 올거야

이 밋밋한 문장 앞에 ‘아’를 붙이게 된 것은 훨씬 많은 고통을 느끼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였다.

그까짓 것 생각하느라고 시간을 소모했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사실 나는 이 가사를 쓰기 위해 시도 여러편 읽어보고 영화도 여러 편 보았다.

그러나 좀체로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청계천 4가에 있는 B극장에서 ‘파리의 야화(夜話)’를 보았다.

마피아 두목이 미인계를 쓰기 위해 한 여자를 고용한다.

그러나 일을 하는 동안 그는 여인에게 사랑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여인에게 고백하지만 거절 당한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임무를 수행하고 떠나려는 여인과 그 여인에게 사랑에 빠진

마피아 두목의 이별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꼭 돌아올 것이다. 아직 우리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니까.”
세월의 길고 짧은 차이가 있을 뿐 사랑하는 것이 진실인 것을 알면 여인은 돌아온다는 것이

영화 속 마피아 두목의 생각이자 곧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했다. 

사랑이 진실인 줄 안다면 여인은 돌아온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흘러간 그 세월 속에서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나는 이미 한 편의 가사가 다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사의 주제가 결정되었으니

거기에 살을 붙이기란 식은 죽 먹기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이별 장면을 그려보았다.

충분히 한 편의 짧은 드라마가 되었다.
나는 앞에서 인용했던 클라이막스 부분을 생각하고 스토리를 전개 시켰다.

멀어져 가는 저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달콤했었지 그 수많았던 추억 속에서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린 어떻게 잊을까
아,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거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는 강물 풀리듯 술술 풀려나갔다.

그러나 다음 구절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는

곧 바로 연결 된 것이 아니었다.

멜로디를 확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움이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될텐데……
우리는 그 사랑을 다시 또 그렇게 불태울 수가 있으려나

그러나 어떤 멜로디를 갖다 놓아도 멜로디의 절실함을 돋보이게 할 수 없었다.

 

환장할 지경이었다. 애꿎은 멜로디 탓만 했다. 불필요한 예비 음들은 왜 붙였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멜로디 뿐이 아니었다. 그 시절 내가 들아온 멜로디들은 거의가

싱코페이숀(엇박자)이 들어 있는 악보여서

그 놈의 예비 음들이 문장을 만드는데 여간 불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음 하나에 두 개의 발음이 붙거나, 두 음에 한 개의 발음이 붙거나 상관없었다.

그러나 멜로디 보다는 리듬이 중요시 되고부터는 꼭 필요한 발음과 악센트가 요구 되었다.

난 그대 눈을 보면서 꿈을 알았죠
그 눈빛 속에 흐르는 나를 보았죠
― 김희갑 작곡 ‘물보라’에서

어젯 밤엔 난 네가 미워졌어
어젯 밤에 난 네가 싫어졌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면
나 혼자 가슴 아팠어
― 이호준 작곡 ‘어젯 밤 이야기’에서

앞의 노래 ‘물보라’에서 ‘난 그대’를 ‘나는 그대’라고 한다든지 ‘그 눈빛 속에’를 ‘그대 눈빛 속에'라고 하면

절대로 안된다.

‘난’이라고 한다든지 ‘그’라고 하는 것은 이 멜로디에 탄력을 주어 가사 내용

이상의 매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뒤의 노래 ‘어젯 밤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발음상으로 잘 들리지 않는 음 ‘난’이 새로움 감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다.

'어젯밤엔’ ‘난 네가’의 개념이 아니라 ‘어젯 밤엔 난’ ‘네가’ 개념으로 끊길 듯 이어지는

리듬의 매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슬픈 인연’의 마지막 구절을 연결하기 위하여

몇날 밤을 고생한 나는 아주 오랫만에 우연히 어떤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의 지나온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한 마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찌뜨러지고 변해버린 인상에서 그가 걸어온 20여년의 세월을 보는 듯했다.
(그래.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은 이야기 하지 않는 거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다음 구절을 연결했다.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사랑을 다시 또 그렇게 불태울 수가 없어서)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괄호 친 부분을 생략하고 연결했을 때 나미,

아니 그 이후에 015B, 조관우 등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을 울린 <슬픈 인연>은 탄생한 것이다.
노래 가사는 결코 멜로디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멜로디가 하지 못하는 부분은 가사가 보강해 주고,

가사가 하지 못하는 부분은 멜로디가 보강해 주면서 하나의 노래는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노래 가사를 백안시하는 시인들이 섭섭할 때가 많다.
노래 가사는 결코 진화하지 못한 시가 아니다.

                           => 박건호作 '노래 얽힌 엣세이에서' 정리 솔새김남식

 

슬픈 인연의 작사가 박건호님은

2007년 12월에 고인이 되었고 시인으로써 수많은 시집을 냈다

나미의 슬픈인연은 1985는 일본 작곡가가 오자키류도우(宇崎竜童)가 나미에게 주었고

이 곡을 작곡자 김명곤과 작사가 박건호의 합작으로 만들어젔다

김명곡은 2001년에 타계했으며 그는 락그룹 사랑과 평화의 보컬리스트 출신으로 많은 앨법을 냈다

 

나미(김명옥, 1957년~)는 1980년대 빙글빙글, 인디언 인형처럼을 불러 힛트하였다

1967년엔 영화 "엘레지의 여왕"에서 이미자의 아역을 그리고

윤복희의 일대기를 다룬 "미니 아가씨'에서 윤복희 아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주로 미군부대에서 활동하다가 나미라는 예명으로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그 아들도 2002년 힙합 그룹의 보컬 리스트로 데뷔하였다

 

나미의 슬픈인연은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려진 명곡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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