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해외여행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기

시인김남식 2019. 10. 22. 20:07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기

                                                                                                                                                          김남식 

일시 2019925~ 1071213

이번 여행은 햇살을 파는 도시 스페인 유라시아 세상의 땅 끝 포르투갈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천년을 간직한 숨은 도시 모로코이다. 늘 그랬듯이 여행을 떠나는 날은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젠 체력에 한계를 느끼는 나이 이기에 늘 언제나 마지막 여행이라는 생각으로 무거운 캐리어를 끓고 집을 나셨다.

무려 16시간의 긴 밤 비행기로 떠나는 길이기에 체력이 따라 줄까 조심이 앞선다. 저녁을 먹고 다른 사람보다 공항에 일찍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꿈과 이상을 갖고 어딘가로 떠나는 곳이 공항이고 다시 내 쉼터로 돌아오는 곳이 공항이다.

모두들 어디를 떠나고 돌아오는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항은 인산인해이다. 그래도 어딘가를 떠나는 것은 누구나 신나는 일이다. 티켓 한 시간 전에 도착해서 여행사로부터 주의 사항을 전달 받고 곧 바로 비행수속을 밟고 탑승구내에 들어왔지만 서너 시간의 기다림이 좀 지루했다.


2019926일 목요일 여행 1일째

오전 새벽 1시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10시간 비행 후 새벽 5시에 카타르 도하에 도착 했다. 연결 항공편을 타기 위해서 도하공항에서 쇼핑을 하며 두어 시간 머물렀다. 그리고 이어서 오전 830분 출발해서 마드리드 바라하스국제공항에 오후 330분 도착을 했다.

공항은 마드리드 시내서 약 13km 떨어져 있으며 입국 수속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페인의 축구 명문인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있는 도시이다.

또한 마드리드는 스페인 국토의 중앙에 해당되는 곳으로 유럽 대부분의 수도(首都)가 평지에 있는 데 비해 마드리는 해발이 660m 메세타 고원에 위치하고 있는 350만의 도시다. 지중해성 기후 영향을 받아서 10월부터 5월 사이에 비가 오는데 강수량이 500미리가 체 되지 않는 건조한 곳이다. 또한 기온은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하기는 하지만 겨울에는 영하로 내려가기도 하고 여름은 30도 가 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마드리드 중심으로 아래지역은 땅이 건조한 매마른 평야지대가 지중해 연안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스페인은 세계에서 세 번째 관광대국으로 년 간 6.500만 명이 찾는다고 한다. 전 세계가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관광 대국은 1위는 프랑스, 2위는 미국, 3위는 스페인, 4위는 중국, 5워는 이탈리아, 6위 터키, 7위 독일, 그리고 영국, 러시아, 멕시코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관광자원이 매우 부족한 나라이다.

여하튼 거의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도착했다. 이제부터 12일간의 일정이 시작이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 대합실에 나오면 '화장실 어딘지 아세요?' 그러면 '아세요 Aseo' 를 가리켜 준다고 가이드가 화장실이 스페인 어로 아세요라고 하여 일행들이 모두 웃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926일 오후 4시 해는 아직 한낮으로 마드리드의 햇살은 서울보다 더 따가웠다.

우선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나 오후 일정으로 유럽 3대 미술관의 하나인 프라도미술관 내부 관람하기로 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함께 세계의 3대 미술관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은 바티칸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에 속한다.

프라도 미술관은 에스파냐 왕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1819년 페르난도 7세 때 건립되어 왕립미술관이 되었으며, 1868년 혁명 후에 국유화되어 프라도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세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에스파냐 및 유럽 여러 나라의 회화에 중점을 두고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 등 3대 거장의 유명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미술관을 돌면서 어떤 그림을 유심히 봐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지만 전문가가 아니므로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로 지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 시간 가량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복사 그림을 파는 사람들과 스케치하는 무명화가들이 투어 맨 사람들 시선을 끌게 하였다.

이어서 간 곳은 마드리드 중심지 푸에르타 델 솔 광장과 펠리페 3세가 1619년에 완성한 마요르 광장이다. 솔 광장을 들어가는 길에는 각종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과 춤을 추며 노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넘쳐 났다. 광장 중앙에는 카를로스 3세의 동상이 서 있고 한 쪽에는 마드리드 시의 상징물인 곰과 마드로뇨 나무 동상이 있는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수차례 화재를 겪었던 마요르(Mayor) 광장은 왕실 의식 등 온갖 볼거리를 제공하는 야외 행사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광장 둘레를 싸고 있는 5층 건물은 공동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1층은 기념품점, 카페, 레스토랑 그리고 광장 중앙에는 필리페 3세 동상이 서 있다.

스페인의 역사는 유럽에서 로마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나라이다. 스페인의 역사를 모르면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기 곤란하며 유럽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페인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세의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당시 에스파니아 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카스티야왕국의 수도가 톨레도였으니 근대 스페인을 건설하면서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스페인은 기원전 900년경 유럽 중부에서 남하한 켈트족과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이베리아인의 혼혈인 켈트이베리아인(Celtibero)이다. 기원전 200년경 이베리아 반도의 패권 다툼에서 승리한 로마제국에 약 600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서기 400년경에는 서고트 왕국을 건국했고, 711년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멸망한다.

1469년 카스티야의 이사벨 왕녀와 아라곤의 국왕 페르난도가 결혼하면서 연합왕국이 성립되어 이를 계기로 최후까지 이슬람의 지배권에 있던 그라나다 왕국을 함락시키면서 기독교 세력들이 이슬람 왕국을 몰아내는데 781년이 걸려 스페인은 1492년에 통일이 된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세력이 왕국이 건설한 것이 지금의 포르투갈이다. 스페인은 이슬람 시대에 문화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했으며 오늘날 이 시대에 많은 건축물이 남아 있다.

한편 콜럼버스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여기서 나온 막대한 재화를 이용하여 16세기에서 17세기 중반까지 150년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이자 가장 넓은 해외 영토를 갖는 세계 제국이 되었다. 회화, 건축과 같은 문화가 발전하고, 문학과 철학이 융성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프랑스, 잉글랜드, 스웨덴 등과 전쟁을 벌이고 유럽 각국 정치에 간섭을 벌이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 스페인의 경제 사정은 왕위전쟁으로 스페인의 영향력은 약화되면서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혼미의 시대를 맞았지만 1812년 카디스 의회에서 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를 내세운 정치 체제가 기틀을 잡았다.

1939년 프랑코 정권이 수립되어 1975년까지 36년간 군부 독재가 지속되었다. 이후 독재정권이 물러난 스페인은 고도의 경제 성장과 사회적 안정을 이루었으며 1986년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하면서 1992년 하계 올림픽이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다.

스페인 영토는 이베리아 반도에 걸쳐져 있으며 아프리카 모나코 서사하라에 위치한 카나리아 제도와 지중해에 위치한 발레아레스 제도까지이다.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 끝에 있는 지브롤터는 현재 영국령이다. 그리고 지중해 연안 모나코에 있는 세우타 역시 모로코와 영유권 주장하고 있으며 국경 지대에 있는 올리벤사 역시 포르투갈과 영토 분쟁이 있다.

또한 바로셀로나의 카탈루나 지방 역시 오래전부터 스페인에서 독립을 주장하지만 스페인은 허락하지 않고 있다. 저녁 6시 쯤 식당에 들려서 저녁을 먹고 8시에 호텔에 들어섰다. 간단히 세면을 마치고 9시에 잠을 청했다.


  

2019927일 금요일 여행 2일째

마드리드에서 아침 8시 호텔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여행은 즐거운 것이다. 호텔을 출발하여 두 시간 달려 콘수에그라 마을 라만차 평원에 있는 풍차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들판에 서 있는 풍차를 보고 괴물이라 착각하고 달려들었다가 풍차 날개에 맞아 나가 떨어져버린 에피소드가 있는 소설의 무대이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고원에 풍차들만 서 있는 것이 마치 멀리서 보면 괴물 같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풍차를 곡식 찧는 기구로 사용 했지만 지금은 관광 상품으로

언덕에서 내려 보이는 아름다운 콘수에그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 언덕위에 있는 10여개의 풍차와 옛 성은 모두 그 자리에서 지금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미세먼지가 없는 맑고 푸른 하늘아래 동화처럼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차 마을에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40여분 투어로 마무리 하고 스페인의 대표적인 천년고도 톨레도에 1130분 도착하여 대성당 관광했다.

톨레도 인구는 10만 명으로 마드리드 남서쪽으로 약 67km에 있는 고대도시로 세르반테스 언덕을 타호 강이 둘러싸고 있어서 로마시대부터 요새(要塞)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발전해 온 곳이다. 8세기에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10세기에 무어인(아프리카)이 세운 코르도바 칼리프국(이슬람)의 북부 전진기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후 레콩키스트 운동으로 1085년 레온-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가 이슬람 왕국으로부터 톨레도를 탈환하여 스페인 통일 왕국의 발판이 된 곳이다.

특히 이곳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유적지가 모두 남아있으며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중세 가톨릭 성당, 이슬람 왕궁 등 여러 문화의 유적이 공존하는 역사가 깊은 도시로서 1986년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언덕위에 있는 오래된 톨레도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5()으로 되어 있는 긴 에스컬레이트를 타야 톨레도 대성당에 들어갈 수 있다.

대성당은 자그마치 266년 동안 지은 역작으로 본당의 보물 실에 있는 '성체 현시대(Custodia)'5,000여개 부품 전체가 금과 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본당 중앙에 있는 성가대실의 의자 하나하나에 새겨진 정교한 목각 역시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며 대사원의 성가대 실은 미술관으로 되어 있어 엘 그레코와 고야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한 시간정도 구경을 하고 1230분에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꼬마열차를 탑승하여 한 시간 가량 시가지 투어를 하는데 열차 타는 곳까지는 가는 길목에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구시가지에서 출발하여 톨레도 성 아래로 내려와서 타구스 강을 끼고 반대쪽 톨레도 성을 한 바퀴 돌아 원점 회기를 하는 코스로 중간에 톨레도 전망대(Mirador Toledo)에서 보는 톨레도 구시가지 전체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투어 일정을 마쳤다.

3시 똘레도를 출발해서 도심을 벗어나자 차장 밖으로 보이는 스페인의 모습은 모두 신기하게 들어왔다. 그런데 보이는 지형들이 건조한 척박한 땅이었다. 9월이라 아직은 푸른 들판이 보여야 할 때이지만 이곳은 왠지 땅이 메마르고 푸석한 들판에 곡식이나 채소는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더구나 산 이라곤 보이지 않고 넓은 고원으로 올리브 나무 밭이 끝이 보이지않게 차가 지나는 길목으로 무수히 많이 보였다. 그리고 간혹 수확을 이미 마친 옥수수들이 누렇게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겨울철에만 비가 내리는데 그것도 강수량이 작아 땅이 건조해서 일반 농산물 재배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베리아 반도는 국토의 대부분이 척박하여 농축 산업에 항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점점 사막화되어 간다는 특이한 지형적 땅이라는 것이다. 어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상공에서 바라다 본 스페인의 모습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9월말 스페인 날씨는 우리나라 8월말 날씨처럼 반팔을 입어야 하는 따갑고 뜨거웠다.

파티마 가는 도중 어느 낯선 주유소가 있는 휴게소에 잠시 들렸다. 그런데 휴게소 뒷편 너른 들판 산등이에 수많은 돌무데기 마치 우리나라 고인돌처럼 쌓여 있었다. 어떤 석조공원을 만들려고 일부러 조성한 것처럼 보였는데 주위에서 출토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곳에서 출토되어 이동하기에는 돌의 크기로 봐서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이곳은 카스텔루 브랑쿠라는 지역으로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휴게소이다. 30분을 정차해서 신기한 돌 모습을 찍을수 있었다.

우리는 저녁 930분 파티마호텔에 도착 했다. 파티마는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로,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하는 도시라고 하는데 너무 늦게 도착을 했지만 호텔과 이웃하고 있는 바실리카 성당을 어둠속에서 관람하였다. 100년 전 1917513일로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 돌담을 쌓는 놀이를 하던 세 명의 어린 양치기 소년들에게 강렬한 빛과 함께 나타난 성모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3가지 비밀을 알려주고 떠났는데 아이들은 그 후 스스로 고행을 하며 기도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지만 아이들은 그 비밀이 무엇인지 끝내 이야기 하지 않았으나 이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한 루머라고 판단한 포르투갈의 행정관은 아이들을 감옥에 넣었는데 이들은 감옥에서 재소자들까지 교화하여 함께 찬송을 부르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이곳을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라고 하며 가톨릭에서도 공식적인 기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넓은광장에 있는 바실리카 성당을 찾아 기도 한다고 한다.


  

2019928일 토요일 여행 3일째

엊그제 스페인에 도착하여 지금은 포르투갈에 와 있다.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새벽 6시 파티마 호텔을 출발하여 8시쯤 유럽 대륙의 끝이라는 까보다로까에 도착했다. 유럽은 해 뜨는 시간은 오전 730분 지금 막 떠오르는 아침 해가 눈부시게 비추이고 대서양 바닷바람이 날아갈듯이 세차게 불어온다.

유럽의 땅 끝이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는 기막힌 경치를 자랑하는 인기 코스라고 하지만 불과 20여분의 짧은 시간을 주는 탓에 제대로 느낌을 얻지 못 하였다. 더구나 아침에는 역광이라서 사진도 검게 나왔다. 이것은 바로 고객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여행사 편의 주의적 발상이다. 프랑스 파리여행에서 에펠탑에 갔을 때는 역광이라서 인증 샷이 검게 나왔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장기간의 여행일정에서 상징성 있는 곳은 배려 해주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러하지가 않다. 가이드가 가자고 하면 그냥 가야하는 것 그러데 문제는 별로 필요 없는 곳에서는 넉넉한 시간을 주고 있으니 여행사의 횡포라고 하면 나쁜 것일까? 하여튼 8시 반에 출발하여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으로 들어왔다.

리스본은 항해 시대의 꿈과 낭만을 간직하고 있는 포르투갈 최대 도시로 로마의 지배하에 있다가 서기 704년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 등 유럽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이다.

리스본에 도착해서 우선 타호강 하류 해안가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흰색의 4층짜리 벨렘 탑을 구경했다. 1500년대 3번에 걸쳐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유명한 항해자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탑으로 등대 역할까지 한다. 물에 잠기는 1층은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되었으며, 2층은 포대, 3층은 망루 및 세관 역할로 사용되었다는데 198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해안가 공원에는 많은 관광객들과 놀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이어서 간 곳은 부근에 있는 흰색 건물의 제로니모스 수도원이다. 1502년에 세워져 포르투갈 건축 예술의 가장 아름다운 완성품이라는 칭호를 받는 걸작이라는데 수도원 안에는 예배당과 교회는 물론 포르투갈 군주들의 묘까지 있다고 하는데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공원에서 외부 구경으로 투어를 마쳤다. 이어서 시내로 들어와서 툭툭이를 타고 리스본 시내를 한 시간 가량 돌았다.. 마침 주말이라 그런지 투어는 벼룩시장 골목길을 돌아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작은 언덕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왔다. 붉은 지붕들이 있는 도시와 멀리 타오강 대교가 보였지만 역광이라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1250분에 점심을 먹고 1시 반에 리스본을 출발하였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고원에는 초목은 보이지 않고 건조한 지평선 위에는 이미 고목이 된 올리브 나무들이 즐비하다.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지역으로 땅이 메말라 사막과 별 다름이 없다. 그리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축복받은 땅이다. 저녁 6시에 세비야에 도착했다


 

20190929일 일요일 여행 4일째

세비야 호텔에서 8시 출발해서 처음 찾아간 곳은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히는 마리아 루이사 공원에 있는 스페인광장이다. 1893년 마리아 루이사 공주가 궁전의 정원을 시에 기증하면서 공원으로 만들어졌으며 스페인광장은 1929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되었다는데 반 타워형의 커다란 건축물 아래층은 화려한 채색 타일 벽과 앉을 수 있는 타일벤치들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는 스페인 모든 도시의 문장과 지도, 역사적인 사건들을 그림으로 장식하고 있다. 따라서 그럴듯한 옷만 입고 있으면 대항해 시대의 한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당시 본부 건물로 지어진 건물은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되어 있고, 건물 양쪽의 탑은 대성당에 있는 히랄다 탑을 본 따 만들었다. 그리고 건물 주위를 따라서 타원형으로 된 호수가 있고 중앙에는 커다란 분수대가 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러지 우리 여행객뿐이었다. 이어서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스페인광장을 출발하여 미세먼지가 없는 상쾌한 도심의 공기를 마시며 고대도시 건축물들 사이사이로 발굽소리 들으면서 스쳐가는 주변 건축물들이 새롭게 보였다. 마차의 종착지는 세비야 대성당이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며 스페인에서는 가장 큰 성당으로 100년이 넘게 걸린 역작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아름다움에 탄성을 내뱉게 되고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각 도시에서 만나는 성당을 수없이 보아왔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했다.

원래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였는데 가톨릭이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이를 허물고 고딕양식의 대성당으로 다시 지었는데 모스크의 흔적도 일부 남아 있다고 하며 특히 신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 출신의 항해가 콜럼버스 묘가 있다. 당시 이탈리아 출신의 콜럼버스는 신대륙 발견에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나라 왕들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다. 그러나 스페인의 이사벨 1세 여왕과 남편 페르난도 2세 왕이 콜럼버스와 유명한 협약 산타페 협약을 맺는다. 당시 스페인은 정치, 지리, 종교적 통일을 이룩하고 국가의 비상을 꾀하던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해외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콜럼버스가 그는 1492년 신대륙 발견 이후 4번에 걸쳐 항해를 하면서 약탈, 살해, 노예로 변질되어 콜럼버스의 황금을 믿고 떠났던 사람들이 차츰 등을 돌리게 되자 잔혹한 정복자로 인식되었다. 그를 끝까지 후원했던 이사벨 1세 여왕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남편인 페르난도 2세 왕은 끝내 콜럼버스를 멀리했다. 콜럼버스가 원주민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정부는 콜럼버스를 본국으로 강제 소환하였다.

그 뒤 콜럼버스는 다시 항해에 올랐으나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지 못한 채 되돌아 왔으며, 결국 그는 스페인 정부로부터 버림받고 병으로 고생하다가 1506년에 죽었다. 그의 시신은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묻혔다가 1542년 서인도제도 인근 히스파니올라의 산토도밍고 대성당에 묻혔다가 다시 1902년 스페인 세비야로 돌아온다.

콜럼버스는 나의 몸을 스페인 땅에 묻지 말라는 유언대로 스페인 땅에 묻히지 않고 지금은 땅 위에 있다. 바로 성당에 안치된 그의 관은 스페인의 역대 4명의 왕이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데 그를 후원했던 왕들은 콜럼버스의 관을 앞에서 고개를 들고 있고, 후원하지 않았던 왕들은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상이다. 생각해보면 참 재밌게 조각을 하였다.

세비야는 플라멩코와 오페라 피델리오, 피가로의 결혼, 세빌리아의 이발사, 카르멘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며 무려 120개의 오페라가 세비야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고 한다.

1140분 점심식사를 하고 1시쯤 세비아를 출발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계속 보이는 것은 지평선 끝으로 올리브나무가 메마른 땅위에 즐비하게 보였다. 어디를 보아도 푸른 풀포기 하나 보이지 않은 황량한 땅 이었다. 이곳은 벼. 옥수수, 목화, 해바라기 등을 건기가 시작되는 4월쯤 농작물을 모두 수확한다고 한다.

3시에 스페인 항구도시 타리파에 도착해서 우선 승선 수속을 하였다. 출국 수속은 대합실에서 모로코 입국 수속은 배안에서 이루어졌다. 아직 여행 비수기라 그런지 배안은 좀 한산했지만 다들 어디에서 왔는지 각색의 사람들이 가득하였다. 출발 얼마 후 선상에 올라서니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아프리카 대륙이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스페인과는 27밖에 안 떨어져 있는 지브롤터 해협은 전략상의 요충지로 강대국의 쟁탈 지역이었다. 스페인 땅에 있는 해안도시 지브롤터는 영국령이다. 170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가했던 영국군이 지브롤터를 점령하였고, 이후 계속 영국령이 되었다.

배는 지브롤터 해협을 약 40여분 항해하여 4시 반에 모로코의 항구도시 탕헤르에 도착했다.

탕헤르는 1956년 모로코 독립과 함께 모로코에 반환되었고 이후 무역이 줄어들어 다소 쇠퇴했으나 다시 자유무역항으로 지정되어 유럽과의 무역으로 크게 성장하는 도시이다. 시가지는 이슬람식의 구시가와 유럽인이 건설한 신시가로 나뉘어 이슬람 문화와 유럽 문화가 잘 조화가 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에 대하여 좀 이상한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탕헤르에 도착해보니 도시는 비교적 깨끗한 도시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모로코 현지 가이드는 버스에서 우리를 만나자 대뜸 후진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한국말인사말을 건 냈지만 막상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도시답고 깨끗하였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6. 대서양 바닷가에 인접하여 좀 습한 냄새가 있는 아주 오래된 2층 건물로 안쪽에는 수영장이 있다. 가이드가 모로코로 들어가기 전 먹거리와 잠자리에 대해서 잔뜩 겁을 주었다.

좀 습한 냄새가 나긴 했어도 예전의 우리 모습을 생각하며 하룻밤 묵어가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모닝콜은 직원이 일일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노크를 하기 때문에 안에서 반드시 대답을 해줘야 다른 방으로 이동할 것이라니 투박하지만 아주 확실한 모닝콜이다. 호텔 뒤쪽으로 대서양 바다가 인접해 있었다. 바닷가는 낙타며 말들이 간혹 보였고 배설물이 있어서 모래가 아닌 진흙이어서 바닷가에 들어 갈 수 없었다.


 

20190930일 월요일 여행 5일째



오늘도 먼 길을 가야 한다고 새벽6시 어둠속에서 호텔을 출발했다. 기온차가 큰지 안개속에 차는 대서양을 끼고 달리면서 한동안 펼쳐지는 색다른 풍경에 대서양을 이렇게 보리라곤 미처 예상을 못했다. 차를 타고 지나오는 길 아랍 문화권이 있는 처음 첩하는 아프리카 땅, 지형적으로 스페인과 별 다름없이 척박한 땅에 올리브나무가 보였고 간간히 푸른 들판도 보였다. 스페인과 모로코는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많이 얽혀 있는 나라지만 스페인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기는 모로코의 도시 풍경에 눈을 떼지 못 했다. 도시를 지날 때마다 교회처럼 깨끗한 건물은 모스크가 자리하고 있다. 휴게소에 들렸는데 석유회사와 커다란 슈퍼마켓 체인점도 모로코 국왕의 소유라고 한다. 시설은 좀 미약해서 우리나라의 60년대 시골처럼 느껴졌지만 도시로 들어오자 시원한 야자수 가로수가 반긴다. 10시 페스에 도착해서 먼저 금빛 왕궁을 찾아갔다. 천년 고도 페스에 위치한 호화롭고 장대한 페스 왕궁의 문이 순금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황금색 문 녹색 타일의 지붕 화려하게 장식된 페스 왕궁은 모로코의 국왕 모하메드 6세의 별궁으로 햇살을 받을 때면 금빛이 번쩍이어 호화롭고 장대하게 보이지만 내부 관람은 불가능하여 외부에서 사진만 찍었다

페스는 8세기에 조성된 고대도시로 모로코 제3의 도시이다. 무역과 전통 공예의 중심지로 인구는 93만이다. 또한 세계 최대의 미로라고 알려져 있는 메디나시장은 좁은 골목이 9,000 개나 된다고 한다. 워낙 길이 복잡해서 길을 잃으면 찾을 수 없다고 하며 만약 일행을 놓치면 그냥 그 자리에 있어야 찾기 쉽다고 한다. 정말 좁은 골목의 좌우에는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고 관광객들은 그 사이로 지나가는데 골목이 워낙 좁고 사람들이 많다가 보니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소지품에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재래시장처럼 온갖 물품이 거래되고 있었다. 구시가지는 이슬람 세계의 독특한 건물 양식으로서의 가치가 있어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페스하면 천년의 전통을 그대로 있고 있는 가죽염색 작업장 태너리(Tannery). 오래전 옛날 그대로의 방법을 지켜오고 있는데 여러 가지 천연 재료에 염색원료가 커다란 둥근 통에 담겨 있다. 그것을 위에서 보면 미술시간에 쓰는 팔레트같이 보인다. 태너리 작업장은 고약한 가죽냄새와 천연염료가 코를 찌르지만 5층 건물이 다닥다닥 사방으로 둘러 쌓여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여행자들은 건물 옥상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어있다.

가죽제품 가게를 통해서 들어가도록 되어 있으며 입구에서 박하 잎을 나누어주며 코를 막게 한다. 예전 TV에서 보았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냄새 때문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구경하고 나올 때는 피혁제품이 진열된 가게를 층층이 구경하면서 내려오도록 구조가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구경하게 되는데 다양한 제품들이 많기도 하여 사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런데 골목에서부터 관광객에게 다양한 지갑 등을 파는 사람들이 졸졸 따라 붙는데 타고 갈 차량이 가까워질수록 가격이 떨어진다.

페스에서 1140분 점심식사를 하고 12시 반에 출발해서 3시에 리바트에 도착했다. Rabat 리바트는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은 모로코 수도로서 인구 약 150만의 행정도시이다. 또한 정치의 중심지로서 국왕이 거처하는 왕궁, 의회, 정부기관, 외국공관 등의 공공건물이 많고, 녹음이 짙은 거리들은 전원도시로서 차분한 분위기를 띠고 있으며 행인들 상당수가 세련된 차림새이다.

모하메드 5세 묘(Mausolée Mohammed V)는 현 국왕의 조부로써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다. 그는 1912년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의 선두에서 싸우고, 19563월 독립을 성취하자, 왕위에 올라 모하메드 5세가 되었다. 그 후 모로코 근대국가 건설에 힘쓰다가 1961년에 죽었는데, 이 묘는 1962년부터 1969년까지 7 년간 400 여명의 장인들이 모여 완공했고 묘 속에 석관이 안치되어 있으며, 실내장식이 매우 훌륭하다고 한다.

이곳에는 조부 외 부친과 남동생 묘가 함게 있으며 들어가는 입구에는 기마병이 지키고 있고 외부 건축물만 구경을 하게 되어 있다.

그 앞쪽에는 리바트의 명물 하산 탑이 있다. 하산 탑(Tour Hassan)은 모하드 왕조의 Yacoub Al Mansour 국왕이 1187년 장대한 건설을 시도했으나 서거함으로써 1199년에 공사가 중단된 미완성의 모스크이다. 현재 기초공사인 300개 이상의 돌기둥이 남아 있는데 116m의 정사각형으로 높이 44m까지 올라가다 중단되었다. 만약 완성되었더라면 아프리카 최대의 모스크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모하드 왕조는 코르도바, 세비야, 그라나다 등 스페인 남부지역을 포함하여 튀니지, 서부사하라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모하드 왕조는 라바트를 스페인 코르도바처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고 1212년 스페인 전투에서 패배해 왕조는 내리막길을 걷다가 1248년 결국 멸망하여 이때부터 모스크는 미완성된 상태로 남아있고 이후 누구도 재건축이나 복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라바트 시내중심가를 모하메드 5세거리라 하는데 레스토랑이나 카페들이 있었고 주위환경과 어우러진 커다란 종려나무(대추야자)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거리로 꼽힐 만 했다. 히잡을 쓴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은 듯 그냥 보통 사람들이었다.

4시 리바트를 출발해서 영화 Casablanca로 알려진 모로코 최대의 상업도시 카사블랑카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아직 해는 많이 남아 있었다. 모로코 제 1도시 인구 300만의 카사블랑카는 흰 집이라는 뜻으로 1575년 이 도시를 건설한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붙여졌다고 한다. 건물들은 20세기에 서구 풍으로 개조되면서 고층건물들이 많아지고, 거리에는 차와 사람들로 번잡하다. 해안에 즐비한 호텔과,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카사블랑카가 상업도시이면서 휴양지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제일 먼저 찾아 간 곳은 모하메드 5세 광장. 카사블랑카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광장은 프랑스 식민지 당시 지어진 건물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현재는 고등법원과 전화국, 중앙은행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고, 나무들이 많아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 속의 휴양지로 비둘기가 사람들 속에서 마침 저녁 무렵이라서 함께 어울려 놀고 있었다. 특히 분수대 광장을 비둘기가 점령을 하고 있어서 비들기 광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모하메드 5세는 모로코 인들에게 국부로 추앙을 받고 있어서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광장들이 모로코의 여러 곳에 있다고 한다.

이어서 간곳은 대서양 바닷가에 있는 핫산 모스크(Hassan Mosquee).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있는 알카아바 모스크에 이어 세계 2번째로 큰 모스크로, 핫산 2세 국왕이 국민의 성금을 모아 1987년부터 1993년까지 7년에 걸쳐 완성했다. 10만명 수용이 가능한 규모로 실내 장식 면에서 세계 제1의 회교성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모스크에 첨탑은 높이가 200m로 세계 모스크 중 가장 높다. 카사블랑카 어디서든지 한눈에 보이는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의 관광명소라고 하는데 코란에서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구절을 따라 해안가 절벽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대리석이 깔려 있는 넓은 광장과 화려한 건물들을 보면 사원보다는 궁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의 기둥과 외벽 등은 모로코 전통문양과 아랍 전통문양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예술품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새벽 어둠속에 탕헤르 호텔을 나와서 페스를 거쳐 라바트를 지나서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푸른 도시 카사블랑카에 와 있다. 저녁 740, 이제 막 해가 대서양 바닷가로 지려고 한다. 대서양 저 멀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파도가 출렁이고 모스크 광장에는 투어 사람들로 가득하다.

호텔로 들어오는 찻 속에서 생각해보니 그냥 수박 겉핥기로 대충 가이드 꽁무니를 따라서 여기까지 왔다. 멀리 사하라 사막까지 다녀와야 하는데 다시는 올 수 없는 모르코를 아프리카 대륙이라서 호기심에 찾았다. 특별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4성급 Oum Palace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일찍 수면에 들었다.


20191001일 화요일 여행 6일째

오늘은 모르코를 출발해서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새벽 6시 반 카사블랑카를 출발해서 엊그제 묵었던 탕헤르 호텔에 점심을 먹기 위해서 11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어서 오후 1시 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 출국수속을 밟고 230분 출발하는 FERRY 탑승했다. 그리고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타리파에 도착해서 길게 줄을 서서 다시 입국수속을 마치니 시간은 오후 430분이었다. 타리파(Tarifa)는 이베리아 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로 인구는 약 2만 명

스페인과 모로코를 연결하는 항구도시이다.

다른 사람은 스페인을 한 번 가기도 어려운데 우리는 벌써 스페인을 두세 번 들어갔다 나오는 셈이라며 가이드가 설명을 하여 일행은 웃었다. 그리고 론다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였다. 론다는 해발 780m 타오협곡 위에 세워진 인구 35천의 작은 도시로 투우(鬪牛) 발상지라고 한다. 또한 마을 전체가 가파른 협곡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데 버스에서 내려 론다 시가지를 한참 걸어 내려와서 맞이한 투우경기장은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

1785년에 만들어진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경기장 주위는 투우사의 형상과 소의 형상들이 있다. 다시 조금 더 내려가면 따호강 절벽에 시가지와 시가지를 연결하는 누에보 다리가 있다. 길이 80m 깊이 약 130m 협곡 위에 지어진 다리 양쪽으로 아찔한 협곡과 새하얀 집들과 누에보 다리와 어울려서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협곡사이 난간에는 카페들이 있고 산책길과 전망대 시설이 있고 공원에는 이 지역 인사들의 형상들이 있다.

당시 협곡을 사이에 둔 두 지역의 소통에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한 3개의 다리 중 하나로 천재 건축가였던 마르틴 데 알데후엘라(Martín de Aldehuela)40여 년 공사 끝에 1793년 완성했는데, 3개의 다리 중 가장 늦게 완공이 되어 누에보(새로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는 포로들을 떨어뜨려 죽였고, 다리 중간 아치에 있는 공간은 감옥으로 사용했었다는 슬픈 역사를 지닌 장소이다.

건너편 마을 주택에서 거주했다는 헤밍웨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 말했다며 그는 이곳에서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썼다고 한다. 론다에서 긴 시간을 갖지 못하고 해가 질 무렵에 그곳을 출발했다. 론다에서 미하스로 나오는 길목은 산악지대였다. 이날 저녁 미하스 호텔은 지중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해발 700m 산위에 있는 4성급 호텔 Marbella Hills9시쯤 여장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밤하늘에 별을 보기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아련하게 보이는 별들이 밤바람 추위에 떨고 있어서 오래 있지 못하고 방으로 들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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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2일 수요일 여행 7일째 [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와 보니 주위는 산으로 앞쪽으로는 지중해가 멀리 보였다. 미하스 호텔 조식 후 8시 반 출발하여 9시 반에 뒤쪽으로 높은 산 아래 아기자기하게 하얀 집들로 이루어진 예쁜 미하스 마을로 이동하였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우리들밖에 없었다. 산중턱에 빼곡하게 자리한 집들이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마을들은 모두 하나같이 흰색 벽과 빨간 지붕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뽐내고 있다.

안달루시아의 전통 양식의 주택이 산기슭부터 중턱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모습이 장관이었다.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들이 있고 동화처럼 꾸며진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 곳이다. 거리에는 꽃들이 장식되어 있고 탈 것을 찾는 사람을 당나귀와 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야트막한 한쪽 언덕위에는 돌로 쌓아올린 작은 바위 성모 은둔 지 동굴 성당이 있다. 이곳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던 무어왕조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800여년 동안 성당이 있던 성벽 동굴 속에 성모마리아상이 숨겨져 오다 1548년 한 수도사에 의해 발견되어 성모마리아상을 모시기 위해 그 자리에 성당을 지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40여분을 머물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론다에서 테스 산맥을 넘어오면서 평야지대가 시작이다. 버스는 지중해 해안가를 끼고 북쪽으로 하염없이 달리는데 보이는 풍경들이 모로코에서 보던 풍경들과는 너무 다르다. 바닷가를 바라보는 언덕에 있는 집들은 별장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나다.

집들도 모로코 쪽에서 본 집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서 이곳이 유럽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아직도 간간히 붉은 메마른 황토흙속에 보이는 것은 넓은 들판의 건조한 지역에서 끝없이 보이는 것은 올리브 나무와 간혹 수확을 마친 옥수수 밭이 여전히 보였다. 올리브나무 열매를 수확할 때는 모로코 사람들이 와서 한다고 한다. 모로코와 스페인의 국민소득은 열배나 차이가 나고 국민총생산도 열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아무튼 스페인은 올리브 최대 생산국으로 차창가로 수많은 올리브 나무를 질리도록 봤다.

미하스 마을을 출발한 버스는 이슬람 왕궁의 수도였던 코르도바로 이동해서 점심식사를 먼저 했다. 식사를 마치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하얀 건축물 창가에 내걸린 꽃길을 거닐었다. 마을에 꽃이 많은 것은 타종교에 대해서 관대했던 코르도바의 이슬람왕국은 유대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면서 세금을 내고 집을 예쁘게 꾸밀 것을 조건으로 꽃을 가꾸게 되었다고 하는데 예쁜 화분들로 꾸며진 꼬불꼬불한 주택가 골목길에 붉은 꽃들이 흰색과 어울려서 조화를 이루었고 카페와 음식점,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2번째 규모인 카톨릭과 이슬람의 문화가 혼합된 이슬람 사원인 메스카타 회교 사원에 들렸다. 메스키타 사원은 스페인어로 이슬람교의 사원인 '모스크'라는 뜻이라고 한다. 스페인을 지배한 이슬람 문화가 남긴 독특한 유산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번갈아가며 점령한 탓에 두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즉 원래 모스크 건축물이었으나 13세기에 코르도바를 회복한 가톨릭 왕국에 의해 성당으로 바뀌었다. 기존 모스크를 그대로 두고 그 중앙 부분만 르네상스 양식의 대성당으로 바꾸었다. 모스크의 규모가 워낙 크고 화려해서 헐기가 아까웠던 모양이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 공간에 두 개의 종교 사원이 공존하는 건축물로, 세계에서 단 하나뿐이며 메스키타는 코르도바의 모스크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오렌지 정원은 메스키타의 안뜰을 말하며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아랍식 정원이라고 한다. 모스크로 사용될 때에는 사이프러스 나무, 월계수, 올리브 나무가 있었고 이슬람교도들이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는 연못이 있었으나 성당으로 바뀌면서 연못은 메워지고 오렌지 나무가 심어졌다고 한다.

내부 입장료는 10유로 안에 들어서면 웅장한 시설물이 반긴다. 내부에는 줄무늬 석영, 벽옥, 대리석, 화강암 등으로 만들어진 850개에 이르는 둥근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서 있어 미궁 속을 연상 하였고 천장의 정교한 모자이크는 비잔틴 제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사원 중심부에는 예수의 상과 함께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주 예배당의 제단 장식 중앙 위에 성모 승천이 그려져 있고 좌우 아래로 성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원의 넓이는 남북 180m, 동서 130m의 거대한 규모로 25천의 신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일정을 마치고 이슬람 문화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그라나다로 이동했다. 코르도바로 출발하자 넓은 들판의 건조한 지역에서 끝없이 보이는 것은 역시 올리브 나무이다. 저녁 일찍 호텔에 도착했다. 지난 봄 이태리 여행 때를 생각해보면 현재까지 우리 부부는 건강한 상태로 여행을 즐기고 있다. 가는 곳마다 쎌카 봉으로 연출 하며 재밌게 사진도 찍었다. 늘 생각한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겠는가하며 최선으로 즐기고 있다. 옛날과 달리 휴대폰으로 국내와 통화를 할 수 있고 국내뉴스도 볼 수 있으니 지금은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20191003일 목요일 여행 8일째

어느덧 여행 8일째로 접어들었다. 아직도 일주일 이상 더 이곳에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앞선 것은 다음이라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라나다에서 15키로 덜어진 3성급 호텔 Reyes Ziríes 에서 조식 후 이슬람 건축의 최고 걸작이자 그라나다의 상징인 Alhambra 궁전과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출발했다.

스페인 땅에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가장 뚜렷이 남아있는 곳 중 하나가 그라나다이고 집시의 춤 플라밍고의 본 고장이기도 하다. 781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스페인 땅을 지배한 이슬람의 세력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라틴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충돌했던 현장이 바로 그라나다. 세계에는 알람브라궁전보다 더 화려한 건물들이 수없이 많지만 알람브라 궁전하나가 스페인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으로 이 거대한 성채를 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슬람 문화의 결정체로 일컬어지는 알람브라 궁전은 아름다움만큼이나 비극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다. 스페인에서 800여년을 내려온 이슬람 문화의 찬란함을 간직했던 알람브라 궁전은 에스파냐에 존재했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드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중반에 세우기 시작해서 14세기에 완성한 것으로 왕조가 멸망하기 전 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당시 스페인의 페르난드 2세의 공격을 막지 못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은 1492년 이 궁전을 평화적으로 내어주고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스페인은 비로소 근대 국가로의 이행을 걷게 된다.

알람브라궁전은 입장객이 한정되기 때문에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는데 매표소를 지나면 사이프러스나무숲 사이로 난 인도를 따라 5분쯤 걷다보면 알람브라 궁전의 정문이 나온다. 다시 약간 비탈진 헤네랄리페 여름 정원을 지나서면 거대한 사각 건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과 나스르궁전 그리고 마지막 알카사바 궁전을 만나게 된다. 붉은 성이라는 뜻의 알람브라 궁전은 여러 궁전이 합쳐진 복합체로 이슬람 건축의 최고 걸작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전쟁을 하지 않고 나라를 넘겨 준 덕이 아닐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볼 수 없는 단점이기에 세계문화유산 알람브라 궁전을 한 시간 정도 관람하고 걸어서 시내로 내려와서 그라나다 대성당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이사벨 1세 여왕 부부의 유해를 모신 왕실예배당이 같이 있다. 그라나다는 스페인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도시로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 및 신고전주의 양식의 아름다운 교회와 수녀원 · 수도원 · 병원 · 궁전 등이 무수히 많다. 그래도 어느 마을이나 제일 큰 건물은 종교시설이다.

여행이라는 게 사실 이곳이 어떤 역사적인 사연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가이드가 설명 해주지만 생소한 내용들이 더 많아 별 관심이 없기에 인증 샷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사실이다. 사실 돌아와서 보면 어딜 다녀왔는지 아득히 기억에서 멀어지는게 보통이다.

'알람브라궁전의 추억' 이라는 기타 연주는 스페인의 기타 작곡가인 Francisco Tarrega 가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그 느낌을 기타로 옮긴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1896년 그의 제자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의 사랑을 거부했고 실의에 빠진 Francisco Tarrega는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달빛이 드리워진 궁전의 아름다움을 따라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며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연주곡은 알람브라 궁전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음악으로서 많은 사람들에 심금을 울렸던 명곡을 평가받고 있다. 시내로 내려와서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서너 시간을 가야한다. 시내를 벗어나자 이제까지 보아왔던 황페한 모습이 아닌 푸른 들판이 보이고 오렌지 나무들이 즐비하다. 스페인의 기름진 옥토 까다루지역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오렌지나무 밭농사가 보인 것이다. 오렌지와 파파야의 해안도시 발렌시아 도착해서 여장을 풀었다

 


20191004일 금요일 여행 9일째

8시 출발하여 11시 해안가 도착하여 관람후 1230분 식사 경기장 그리고 스페인에서 세번째로 큰 인구 100만의 발렌시아는 오늘날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휴가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다. 매년 수십 만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발렌시아는 무역과 생산의 중심지로 특히 세라믹 공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다양한 페어와 컨벤션이 열린다. 호텔에서 8시 출발하여 해안가를 달리는 고속도로 주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푸른 들판으로 오렌지와 포도밭이 보였다

해마다 가을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제가 열리는 아름다운 해변 휴양도시 시체스에는

활기찬 분위기의 해변은 10월에도 수영을 하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부럽다.

스페인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도시로 여름에는 35도를 넘기는 날이 많다고 하는데 10월초인 지금도 영상 30도를 따가운 햇볕이다. 다행이 습도가 20% 이내라서 그늘에 있으면 그렇게 덥지 않다. 그래서 일까 긴팔을 입었는데도 그냥 햇볕이 따갑다는 것을 느낄 뿐 우리나라처럼 덥다는 느낌은 없다. 해안가 카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바로셀로나로 출발해서 1992년 올림픽이 열렸던 곳을 찾아갔다.

당시 황영조 선수가 뛰어서 올라왔던 언덕길은 해발 213미터의 나지막한 곳으로 경기도와 바르셀로나가 협의하여 2001년도에 세운 황영조 동상도 있는데 패키지로 오는 관광객들은 반드시 들리는 곳이다.

이곳은 바르셀로나 시내가 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으로 올림픽 스타디움이 아니라도 관광코스로 손색이 없는 곳으로 잠깐 스타디움을 한 번 둘러보고 황영조 동상이 있는 곳에서 인증 샷을 찍고 내려왔다. 그리고 프라타나스 가로수 길인 람블라스 거리(Les Ramblas)로 내려와서 3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런데 자유 여행자들에게는 걸어 볼만한 거리일지는 모르지만 바쁜 패키지 여행객들이라면 굳이 돌아볼 만한 곳은 아니다. 람블라스 거리는 명동처럼 수많은 사람들로 예쁜 카페와 기념품점들이 즐비하고 1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 곳곳에는 거리공연을 하는 행위예술가들도 있고 하몽과 과일, 빵 파는 가게도 있다. 가이드가 소지품에 주의하라고 한다. 20분 정도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항구가 있었고 광장에는 컬럼버스 동상이 있었다. 항구에는 커다란 유람선과 오락시설 그리고 대형쇼핑몰이 있었다.

그런데 스페인은 어디를 가나 독특하게 눈에 띄는 것은 아주 커다란 쓰레기통이다. 우리나라에서 작은 쓰레기통만 보다가 이곳에 와서 사방 1m의 커다란 쓰레기통을 보니 좀 신기했다. 그래서 인지 거리는 깨끗하다. 결국 오늘은 특별한 투어 없이 거리를 배화하다가 돌아왔다


 


20191005일 토요일 여행 10일째

7시 반 호텔을 출발해서 8시 구엘 공원에 도착하였다. 구엘 공원은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있는데 패키지로 오는 관광객들은 중요한 코스를 따라서 한 바퀴 돌아가며 사진을 찍는 것으로 관광이 이루어지게 된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공원의 모습들이 아닌 독특하게 구성 되었기에 야자수 숲 길을 따라 들어가면 가우디가 살았던 박물관이 보이고 좀 더 들어가면 광장이 나온다. 광장은 건물의 지붕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타일이 붙어 있는 구불구불한 벤치가 가장 유명하다. 성가족 성당을 창안한 가우디와 구엘 가문의 엄청난 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던 구엘 공원이다.

산티에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서 스페인에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여행객들은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성가족성당과 구엘공원은 반드시 보고 가는 곳이다. 공원 정상에 오르면 멀리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신비로움을 대표하는 공원이다.

곧은 직선과 완벽한 원이 거의 없이 자연 그대로의 곡선을 살린 가우디 특유의 개성 넘치는 건축양식을 볼 수가 있다. 계단 열은 왕관처럼 생겼으며 건축물 산책로와 산책로를 받치고 있는 기둥들 모습에서 독특한 건축물을 보는데 감상하기 보다는 사진찍는데 시간을 허비하게된다.

이어서 버스를 타고 가우디 작품이 있다는 람블라스 거리 어느 건축물을 구경하고 해안가로 내려왔다. 그리고 쇼핑몰 안에 있는 식당에서 새우와 홍합을 밥과 후라이팬에 볶은 빠에야라는 음식을 먹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 사그라다 성가족 성당으로 출발 했다. 31살의 건축가 가우디(Gaudi)는 스승이 포기한 성당을 1883년에 맡게 되는데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40년간 인생을 바쳐서 설계하고 감독한 최대의 프로젝트 성당이다.

()가족은 예수와 마리아, 요셉을 뜻하는데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 공사가 진행형으로 사후 100주년 되는 2026년 완공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거대한 성당에는 직선이 없는 모든 선이 자연 모습 그대로의 곡선이며 일반적인 건축양식의 예측을 벗어난 역작으로 불리는데 규모나 크기 면에서 압도적이다.

성당 정면에는 3개의 파사드가 있는데, 각각 예수 탄생’, ‘예수 수난’, ‘예수 영광을 주제로 설계되었고, 이 중 예수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생전에 직접 완성시킨 것이다. ‘예수 수난파사드는 1976년에 완공되었고, 마지막 남은 예수 영광파사드는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3개의 파사드 위에는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이 세워지고, 중앙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이 세워지게 되는데, 현재 8개의 종탑만 완공되었다.

외부의 각 파사드마다 그 주제에 맞는 성서의 내용을 조각하여 놓았다. 성당 내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장엄하여 기둥과 천정의 모양이 커다란 나무가 있는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스테인 글라스로 들어오는 햇빛이 아침에는 녹색의 스태인 글라스를 통해서 오후에는 붉은 빛과 오랜지 스테인 글라스를 통해서 들어오게 되어 있다. 내부에 주기도문이 전 세계의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한글도 한몫을 끼고 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들 모두가 성당보다도 건물 그 자체를 보러 오는 것이다.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수천 명의 관광객이 15유로 입장료를 내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실내로 들어오게 되어있다. 유럽은 어딜 가나 종교시설의 크기는 우리의 종교 건축물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성당을 한 시간 가량 구경하고 430분 몬세라트 수도원에 도착 했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산티아고 성당, 필라르 성당과 함께 스페인의 3대 순례지로 몬세라트는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이다. 수도원은 해발 1,200미터의 날카로운 봉우리 사이로 난 깊은 협곡과 기암절벽위에 있어서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승용차와 케이블카 그리고 궤도열차가 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괴석의 산 능성에서 태양이 구름에 가려 있는 모습은 수도원의 이름을 하는 것 같았다. 수도원보다는 주위 풍경에 현혹되어 찾아오는 관광객이 더 많을 것 같다. 20여분 후 725m 위치에 있는 수도원에 도착하면 주위 풍경을 더 가까이서 볼 수가 있다.

전망대가 여러 곳이 있다는데 시간상 어렵고 수도원에 있는 성당과 주위 시설을 둘러보았다

성당 2층에 자리한 성모상은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앉히고 지구를 뜻하는 큰 구슬을 오른손에 들고 있고 전쟁으로 동굴 속에 숨겨놓았던 성모상을 1천년전 이곳을 지나던 어린 양치기가 밝은 빛에 이끌려 찾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수도원에서 산의 정상까지 500여 미터 여기저기 암석과 함께 등산하기에는 정말 좋은 코스 같다. 그냥 아쉬운 듯 시간에 쫓겨 30여분정도 구경을 하고 궤도열차를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셀로나로 곧바로 돌아왔다.

    

20191006일 일요일 여행 11일째

여행의 마지막 날 아쉽지만 오늘밤에 떠나야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호텔 조식 후 지로나로 출발했다. 저녁에 스페인을 떠나야 하기에 마음이 바쁘다. 스페인의 피렌체라고 하는 도시로서 연인과 함께 걷기 좋은 로맨틱한 길로 소개된 오냐르(Onyar) 강변의 아름다운 파스텔한 집들이 관광코스이다. 중세시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소박하지만 그렇다고 심심하지는 않은,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멋을 간직한 근교의 작은 도시로 마을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다. 주차장에서 10여분 걸어서 가는 길에 가을축제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로나의 과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아기자기한 상점과 카페, 식당 등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는 강과 양옆으로 서 있는 알록달록 예쁜 건물들은 지로나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

에펠탑의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이 에펠탑을 짓기 전 미리 만들었다고 하는 붉은 에펠다리가 중세분위기 느낌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의 지로나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도시 뒷골목은 카페거리와 작은 가게들이 인상적이었고 유럽풍냄새가 가득했다.

이어서 간곳은 한없이 푸른 하늘과 에메랄드 빛 지중해 바다가 반겨주는 토사 데 마르로 이동했다. 지중해와 중세마을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 카탈루냐의 숨은 보석이라 불리 우는 아름다운 도시의 아기자기한 골목과 아름다운 해안풍경 그리고 해변가에 있는 古城이 풍치를 더해 주었다. 성 위로 올라 성벽을 따라 산책하듯 올라가면 토사 데 마르의 아름다운 풍경이 지중해 바다와 함께 낭만을 안겨주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투어를 모두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오후 3시 바르셀로나를 출발해서 약 6시간 30분을 날아서 새벽1시에 도하에 도착했다. 그리고 연결 편을 이용하여 새벽 230분 도하를 출발하여 8시간 30분을 날아서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다음날 오후 5시로 1013일의 여행이 끝났다.

여행은 출발의 시작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떠나고 돌아 올 때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비행기를 오래 타면 기내식을 몇 번씩 먹게 되는데 비행기를 오래 타지 못해서 유럽을 가지 못한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잘 먹을 수 있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이다. 여행이란 때가 되면 밥 주고 재워주고, 또 깨워주고 낮에는 어딘가를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주고 차에서 내리면 또 다른 차가 대기하여 있고 그래서 패키지여행은 참 편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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