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려조선

고려의 멸망배경

시인김남식 2015. 12. 1. 20:30

고려의 멸망                                         솔새김남식

 

1) 고려왕조 멸망의 배경

⑴ 이인임 정권의 한계와 무장세력의 대두
⑵ 이인임 정권 내부의 갈등과 최영의 집권
⑶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

 

2) 이성계의 집권과 고려왕조의 멸망
(1) 이성계 집성체제 강화를 위한 개혁
(2) 공양왕 옹립과 이성계의 실권 장악
(3) 정몽주 살해와 이성계의 왕위찬탈


고려 왕조는 우왕 14년(1388) 5월, 위화도회군을 계기로 멸망위기에 더한층 다달았다.
그런데 반란을 주도한 이성계와 그의 추종세력들에 의해 왕권이 탈취되어 조선왕조가 건국되기까지는
만 4년의 기간을 거쳐야 했고 고려 왕조의 멸망 배경은 고려말의 정치·군사·경제적 측면의 변질과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이 실패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388년(우왕 14) 고려는 이성계를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 삼아 그에게 요동정벌에 나서게 하였는데
이때 이성계는 요동정벌(遼東征伐)을 반대하고 위화도(威化島)에서 군대를 이끌고 개성으로 돌아왔다(위화도 회군).
이어 반대파인 최영(崔瑩) 등을 제거한 후 우왕을 폐위시키고 아들 창(昌)을 창왕으로 즉위시켜
자기 세력을 키운 끝에 1392년(공양왕 4) 마침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웠다.

 

고려는 처음부터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으나 항상 북방 민족의 침입으로 국난이 어려웟다
한때는 그들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러한 북방민족과의 갈등은 이성계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되는
간접적 원인을 제공하였다. 즉 왜구·홍건적 등 잦은 외적의 침입은 무신의 세력을 키워
마침내 고려 멸망의 원인을 만들었던 것이다.

 

고려는 숭불정책,북진정책,민생안정정책을 실시했고 광종때는 과거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다
거란의 침입을 3차례나 받았지만 오히려 막아내고 더 찬란한 문화를 피우지만 1100년대부터 고려가
기울기 시작하는데 이는 이자겸이라는 귀족 가문이 있었는데, 세력이 강성해지자 왕도 함부로 넘볼수 없는
세력이 되서 왕은 척준경으로 하여금 그를 제거하라고 시켰는데 더큰 문제는 당시 고려의 왕인 의종은
문신들만 지나치게 우대했던 결과로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새로 무신들의 정권을 세우는데
이것을 무신정권이라고 한다

 

즉 정중부,경대승,이의민,최충헌 등의 세습들이 차례로 90여년간 다스리게 되는데 이때부터 혼란기가
시작되면서 무신들은 지나치게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몽고가 여러차례 침입함으로써
고려는 몽고의 신하국가가 되면서 몽고가 직접 고려를 통치함으로써 무신정권이 몰락하게 되고
그후 공민왕때에는 선정을 베풀어 어느정도 국력을 회복했으나 공민왕이 피살된후 다시 혼란기에 몰입하면서
홍건적,여진족,왜구등에게 시달리면서 국력이 크게 약화됬고 홍건적이 명나라라는 대국으로 성장하자
정치계에서도 친원파,친명파등으로 나뉘어 크게 혼란하게 된다
그리고 후에 최영이 요동정벌을 주장했는데 이성계는 이에 반대하며 위화도 회군을 하여 정권을 장악한 후에
천천히 고려를 허물어 버리고 고려는 공양왕을 막으로 475년의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1392년) 

 

 

최영장군 묘소

 

고려 후기의 명장이며 충신으로 고려를 끝까지 받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처형된 최영(1316∼1388) 장군의 묘소이다.
부인 문화 유씨와의 합장묘로 벽제를 지나서 필리핀 참전비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그는 공민왕 1년(1352) 조일신의 난과 공민왕 3년(1354) 장사성의 난을 평정한 것을 비롯하여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는 큰 공을 세웠다. 전국 각처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하고 수십 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는 등 흔들리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 잡는 역할을 했다.

 

 

명나라가 철령 이북의 영토를 빼앗으려 하자 요동정벌 계획을 세워 우왕과 함께 압록강까지 진군하였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우왕 14년(1388) 이성계 등의 신진세력에 의해 처형되어
선친인 최원직의 묘소 앞에 안장되었다.

 

이성계는 왕조를 세우고 나서 6년 만에 무민(武愍)이라는 시호를 내려 넋을 위로하였는데
그의 무덤에는 풀이 돋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정리 김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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