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여행일기

김영삼 대통령 생가와 대통령기록전시관

시인김남식 2015. 10. 14. 10:09

김영삼대통령 생가 & 대통령기록 전시관   솔새김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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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1372 번지는 김영삼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고 초년시절을 보냈던 고향이

마을앞으로 작은 몽돌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는 어촌마을이다.

이곳에서 대통령이 나올수 있는 것은 아버지와 본인의 노력이 있지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목조 기와건물로 지어진 생가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김영삼대통령 내외의 초상화가 걸려 있으며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부친 김홍조옹이 거제시에 기증을 하는 형식으로 하여 거제시에서 증건하여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생가 앞에는 주차장이 자리하고 멸치를 판매하는 가게가 몇 곳이 더 있었다

기록전시관은 생가와 옆으로 마주하고 있다

 

 

 

 

 

 

 

 

 

 

 

시식용 멸치를 한줌 집어서 먹었더니 맛이 고소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다리는 부산에서 거제대교를 지나 거제시로 들어가는 자동차 전용도로이다 

 

 

 

 

 

 

기록 전시관으로 출생에서 대통령이 되어 퇴임하기까지 최연소 및 최다선 국회의원으로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영삼대통령의 일대기와 역사적 기록물을 전시해 놓았다

 

그 당시 대통령선거에서 정주영.박찬종이 대선에 나오게 되면서 선거 막바지에 표가 분산 되었고 특히 경남에서

정주영 때문에 당선에 위험을 않고 있었으며 당선 후 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14대 대통령선거 득표수=>  김영삼 9,977,332  김대중 8,041,284 정주영 3,880,067

 

그는 1961년 윤보선 대통령의 퇴진 이후 32년만의 문민정부를 세웠다.

 

 

김영삼(金泳三, 1927. 12.20 ~ 2015.11.22)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 본관은 김녕(金寧)이다.

1954년 28세의 나이에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기록과 9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유신정권의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당 원내총무, 민정당 대변인, 신민당 원내총무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초산 테러 사건 등의 탄압을 받았으며 1979년 10월에는 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 이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여 충격을 주기도 했다.

 

유신정권은 이 발언을 문제삼아 의원직 제명 파동을 일으켜 부마항쟁을 촉발했으며 1983년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기해

23일 동안 단식투쟁을 했으며 6월 민주 항쟁 이후 통일민주당 총재로 민주화추진협의회을 구성해 민주진영을 구축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타협없는 투쟁으로 인망을 얻었으나 1990년에 3당합당을 하여

1993년에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31년만에 군사 정권의 종지부를 찍었다.

 

예술인과 작가들의 반정부와 사회비판을 전면 허용하였고 군사 정권에 의해 수감된 박노해, 김남주 등의 문학가와 마광수 등

예술가를 석방하여 표현의 자유를 대폭 허용하였다.

웅변과 단편 연설에 능하였으며,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 도입, 차명 부정 계좌단속 및 처벌, 공직자 재산등록실시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명문화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 등의 일환으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철거하였으며

전국 곳곳에 일제가 박았던 쇠말뚝을 뽑았으며,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명했다.

또한 신군부, 하나회와 관련단체 해체, 국군 내 사조직을 해산하고 정치 군인들을 제재하여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처벌,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 및 5.18 민주화 운동 진압의 책임을 물어 군사정권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하였다.

 

재임 말년에 발생한 차남 김현철 등과 홍인길 등 측근들이 연루되 권력형 비리사건등으로 IMF 구제금융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일으킨 것을

김영삼 대통령의 최대 실정으로 뽐고 있으나 어찌보며 우리나라가 급속한 고속 성장과정에서 한번은 겪어야 하는 과제였는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한 점을 놓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것 또한 그 이전에 실시한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단일화를 하지 못 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사료되며 두사람 모두의 실책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당시 이인제를 출마케 하여 50만표도 아닌 500만표를 가져가게 하여 김대중대통령을 만들게한 영광을 있게 한 공로도 YS 이다.

그 당시 이인제의 500만표 중 10분의 1인 50만표만 당시 후보 이회창에게 왔어도 김대중 당선이 어려웠을 것인데

그 공로를 모르고 있는 지금의 사람들이 있다.

아뭏튼 그 누가 뭐래도 YS는 한 시대를 풍미했고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냈고 대한민국 역사속의 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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