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댐 가는 길 솔새김남식
평화의 댐 이야기는 1986년 전두환 5공 정부에서 부터 시작이 된다.
북한이 200억 톤 가량의 물을 담을 수 있는 금강산댐을 짓고 있으며 만약 이 댐이 붕괴되면 서울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언론 매체에서 보도 했다.
그러자 대응 할 댐 건설을 위한 대대적인 성금 모금이 시작되어 총 661억원 모금으로 1988년 5월 북한강 물길이 지나는 수어구(水於口)에 평화의 댐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북한은 갑자기 금강산댐 공사를 중단하자 코흘리게 성금까지 했던 열성적인 국민의 김을 쏙 빼버리 된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청문회와 특별 감사가 시작되었고 정권 안보용이라는 낙인까지 찍히게 되면서
사기극이라고 5공 정권을 질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2002년에 추가로 45m를 더 올려 높이 125m, 길이 601m, 최대 저수량 26억 3천만 톤의 댐으로 증축을
시작하여 2005년에 완공을 하게 되는데 금강산 댐이 붕괴해도 이제는 막을수 있도록 충분하게 만들었다
이유는 1996년과 1999년 두번의 800mm 대폭우가 쏟아 졌을때 평화의 댐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연쇄적으로
북한강 수계(水系)가 올라서 화천땜에 위험이 있었다고 한다 (아래설명)
아뭏튼 우여곡절 끝에 완공을 하게된 평화의 댐은 훗날 남북평화가 찾아 오고 통일이 된다면 평화의 댐은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되라고 명판에 새겨저 댐 위에 붙혀 있었다.
남과북의 물 전쟁은 예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서로 댐을 세우면서
흐르는 하천이 아닌 물이 멈춰 선 곳 흐르지 않는 강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전두환 대통령이 욕 먹으면서 까지 만든 평화의 댐 주위를 둘러 봐도 공사 연혁(沿革) 이력에도
그의 이름은 완전히 배제된 채 흔적이 없지만 고 김대중 대통령은 있었다.
생전에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기에 와본 적은 없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때 댐높이 80m 에서 40m를 더 높여서 120 m 준공식 때도 국무총리도 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2009년 평화의 댐을 구경하면서 그의 흔적은 없었지만
"내가 잘못 만든 댐이 아니구먼"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평화의 댐은 다른 댐과 좀 다른게 있다면 수문이 없다는 것과 발전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즉 북한의 수공에 대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력 발전용이 아닌 담수 기능과 홍수 조절 기능만 있는 것이다
댐 상부에는 하얀 페인트로 쓴 '80m' '125m'가 보였다. 높이 표시는 알겠지만,
댐에서 윗쪽으로 산아래 회벽을 쌓았고(아래사진참조) 번호를 1,2.3,4 의 숫자가 있는데 숨은 뜻은 몰랐다.
즉 댐의 옆기둥처럼 서 있는 산의 발치에는 터널 4개를 뚫어 놓고서 북뽁에서 뭉이 물밀듯 물이 밀려 내려 오다가
댐에서 일단 막힌 물들이 빠져 나가는 배수로의 표지였다. (그림참조)
댐에는 수문이 설치된 게 아니고 윗쪽 산속 밑으로 北水路를 만들어서 물이 흐르기 때문에
댐에 물을 담수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댐의 정상에는 사람들이 올라 갈수 없지만 이곳은 화천에서 양구로 통과하는 460번 지방도이다
댐 전망대는 '비목공원'과 '세계평화의 종'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서 연일 대형버스가 드나 들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탄피를 녹여 만든 '세계평화의 종(鐘)'은 종 머리의 비둘기상(像) 한쪽 날개는 남북 통일이 되는 날
붙이기 위해서 특별히 잘라 놓았다고 한다. 즉 날지 못하는 새가 된 것이다
다른 쪽에도 평화에 초점을 맞춰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동판 사진과 핸드 프린팅이 전시돼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2001년 유엔이 수상자로 선정됐을 당시 유엔총회 의장이었던 한승수 총리도 있었다
화천군에서는 '전쟁으로 부터의 평화, 종교로 부터의 평화, 인종으로 부터의 평화' 를 상징하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이루자는 큰 뜻으로써 종을 세번치는 타종 행사를 새해 첫날 한다고 한다
서울서 댐까지 약 170 km 거리고 1000m가 넘는 강원도의 준령을 넘고 넘어서
6.25의 흔적이 있는 여러개의 터널도 지나서 마지막 해산터널과 대붕터널을 빠저 나오면 바로 평화의 댐이다.
화천 꺼먹다리 = 화천군 간동면(看東面) 구만리(九萬里)에 있는 다리이다
이곳 해산령은 재안산과 해산 그리고 비수구미를 연결하는 1100m의 고산 지역으로써 6시간 이상
오지 산행하는 즐기는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특히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서 mtb 자전거로 준령을 힘들게
올라 와서 내려가는 묘비를 줄기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고 있다.
비수구미는 오지속의 섬으로 불리우는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오지마을 파로호 마을이다
해산터널을 나오면 바로 해산령 쉼터가 있는데 댐에는 식사할 마땅한 장소가 없기에 여기서 점심을 해결을 한다.
모두가 자연에서 나오는 웰빙 재료들로 특히 산양삼이 들어간 도구리 산채 비빔밥을 별미로 먹어 본다.
고추장은 맛이 강해 산채 고유의 향을 맡으며 음식을 먹을수 없어 간장을 시용하는데 자연에서 가져온
산약채들이라 그런지 그 향이 더욱 강해 너무 좋았는데 해산의 정기를 받아 자란 건강 보양식이라고 한다
세상이 복잡하여 사는게 힘들어서 마음의 평화가 필요하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
힐링이 필요한데 어딜 가면 좋냐고 물어보는 이가 있다면 평화의 댐으로 가는 푸른 물길을 추천하고 싶다.
파란 옷을 입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파로호 풍경속을 거닐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마음에 여휴가 있다면 며칠 쉬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저 나가면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와 병풍같은 산야로 둘러 있어서 한없이 조용한 곳이다
그리고 60년전 피의 전쟁이 시작 되었던 곳 그 아품을 되새기며 조국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비가 오거나 안개 짙은 날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의 여정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용히 비목이라는 가곡을 부르며 선인들에 희생에 감사 드리며 이곳을 떠난다
겨울엔 산천어로 유명한 화천이 요즘 평화의 랜드 마크로 부각되어 있는 그 중심에는 평화의 댐이 있다.
평화의 댐은 누구의 작품인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곳으로 그동안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댐이었지만
평화의 염원을 가지고 많은 분들이 찾아 오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부실한 금강산 댐의 붕괴가 우려되어서 2차 증축공사에 이어서 다시 3차 보강 공사와
다양한 관광 시설물 설치 공사가 2014년 05월 현재 까지도 한창이었다.
해산령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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