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김영이(金令貽)는 신라 신문왕의 넷째 아들 김익광의 후손이다
고려 때 전객사령을 지냈다.
그의 아들 김길원(金吉元)이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 토벌에 공을 세워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진다.
그래서 후손들이 영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영산은 충청북도 영동의 옛 이름이다.
김길원의 아들 김종경은 고려 정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우찬성 겸 판의금부사를 거쳐 도총관을 지냈다.
김종경의 손자 김수온(金守溫)은 세종과 세조 때의 명신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는 세종 때 "치평요람"과 "의방유취(醫方類聚)"의 편찬에 참여하고 "석가보"를 증수했다.
문장에 뛰어나 서거정. 강희맹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김수온의 형 김수성은 신미(信眉)라는 불명으로 탈속하여 웅문거필(雄文巨筆)로 명성을 떨쳤다.
속리산 성불사 복천암에 사리(舍利)를 남기고 있다.
김재두(1794~1868)는 통정대부로 낭천현감을 거쳐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을 지냈다.
문장이 출중하였고 도학군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의금부도사에 천거되었던 김곤과 감찰에 증직된 김언건도 유명하다.
광해군 때 용궁현감을 지낸 김각 은 수군절도사 김득진, 부호군 김염근, 김호덕 등과 함께 가문을 더욱 빛냈다.
충북 영동군 용산면, 보은군 일원, 충남 서산군, 당진읍 일원, 예산군 오가면 분천리,
경북 상주군. 청도군 일원, 전북 장수군 일원, 전남 영광군. 함평군 일원이 집성촌이다.
2000년 현재 17,120명이 있다.
주요파는
▲보은파 ▲문의파 ▲장수파 ▲대덕파 ▲황간파 ▲옥천파 ▲온양파 ▲해미파 ▲태안파 ▲예산파 ▲당진파
▲홍주파 ▲서산파 ▲송산파 ▲금산파 ▲영동파 ▲홍성파 ▲상주파 ▲대구파 ▲청도파 ▲청산파 ▲자산파 ▲참봉공파
▲이천공파 ▲영광파 등이다.
지금 충청북도 영동의 이름은 신라시대에 길동이라 했고
고려때는 계산 계주 영산으로 불리어 오다
조선에 와서 이두문으로 된 "길동"을 길영(永)자에 한가지동(同)자를 써서
영동(永同)이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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